가짜 독립운동가 가족사기단의 서훈이 취소됐습니다.
그런데 남의 '후손'을 사칭해서 땅을 가로챈 사람은 가짜 독립운동가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따로 링크한 기사는 2005년에 고양시 덕양구 소재 시가 1천억 원 상당의 국유지를 가로채려다 실패한 토지 사기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04년 여름, 산림청 직원 한 사람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본래 임야였던 고양시 소재 국유지가 택지로 개발됐는데, 누가 그 땅이 자기 선친 소유였다며 국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는 겁니다. 이미 불하가 완료된 땅이라 현금으로 돌려줄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에는 액수가 너무 커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증빙 자료를 찾는다더군요.
일제강점기 원 소유자의 이름은 에도 운페이(江頭運平), 해방 후 적산으로 분류되어 국유지로 편입된 땅이었습니다. 원고는 에도 운페이가 자기 아버지의 '창씨명'이었다고 주장하며, 옛 '민적부'와 1920년대 창씨개명 서류를 증거 자료로 제출했답니다. 에도 운페이는 요행히 제가 아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러일전쟁 이후 본정통에서 장사하던 일본인이었고, 1920년대에 일제는 '조선인'의 창씨개명을 일체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주소지와 인명록 등을 대조해 본 결과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관련 자료를 산림청 직원에게 넘겨 주고, 만약 이 자료로도 패소하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후 다른 건으로 SBS 기자가 찾아왔습니다. 그에게 이 사건의 개요를 알리고, 취재해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얼마 후 SBS는 이 사건으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도했고,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에도 운페이의 아들이라고 자처한 사람은 그저 '간판'일 뿐이었고, 토지 사기단은 20년 전에 미리 '민적부'를 조작하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뒤에 소송을 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민적부가 '진본'이라고 평가한 국과수 직원은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의 필적을 감정한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군 법무관'과 과거 국유지 반환 소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유 임야 중 상당 면적이 '군용지'인데, 이런 식으로 되돌려준 땅이 적지 않았다는 겁니다. 누가 소송을 내면 군에서는 '군 법무관' 한 사람에게 사건을 맡기는 반면, 토지사기단 측은 수십 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는 거죠.
사실 '친일파 재산 환수 특별법'이 제정된 것도, 이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토지사기단이 사취한 국유지에 대해서는 재조사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과거 관련 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과 증거자료들을 전면 재검토한다면, 얼마나 많은 국유지가 허술한 '역사지식'으로 인해 토지사기단에게 넘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현재로서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이 사건으로 산림청 직원이 어떤 포상을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SBS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습니다. 저요? 포상금 20만원 받았습니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wooyong.chun/posts/2168343643237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