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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여행 계획하는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110315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50
조회수 : 4793회
댓글수 : 15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8/03 15:45:35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03 11: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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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개를 사랑한 군견병 출신의 친구 (군견), 20대이지만 40대 부장님의 연륜과 패기있는 외모를 가진 노안의 친구 (노안), 그리고 한겨울에도 
암내가 진동하는 '혹한의 암내나르' 같은 친구 (암내)가 있다. 

우리는 남자는 짬밥을 먹으면 철이 든다고 제대 후 어느 정도 철이 들어 1학기 수업을 기적에 가깝게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받은 뒤 당연히 
A 학점을 기대했으나, 학점과 시비로 점철된 인생을 사는 우리는 C와 B만 나열된 학점을 받았다. 하지만 한 학기 개근에 대한 자체 보상으로 
남자 넷이 로망을 안고 우리끼리 첫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 장소를 선정할 때부터 서로 의견 충돌이 있었다.

"한국 여행의 로망은 강원도지.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그리고 경포대 바다에는 비키니 여인... 아무튼, 강원도의 힘을 느껴 보고 오자고."
가장 먼저 노안이 강원도 젊은이들 청춘의 낭만을 훼방하며 회춘하고 싶은 마음에서인지 강원도를 제안했다. 

"강원도는 절대 안 가. 너희가 102보의 전설을 알아?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양구 보며 살지'의 전설을 알아? 
난 제대 후에 강원도 쪽으로는 발도 안 뻗고 자. 그쪽 공기도 안 마셔. 난 강원도는 절대 안 가."

암내는 강렬하게 암내 나는 두 팔을 흔들며 격렬하게 강원도행은 반대했다. 우리는 강원도를 고집했다가 녀석의 암내에 강원도 땅을 밟아
보기도 전에 질식사 할 것 같아 강원도는 포기했다. 그리고 2년 2개월 동안 녀석의 암내로 인한 삶의 질 저하로 급격한 인구감소를 겪은 강원도 
또한 녀석의 재방문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강원도 말고 어디 가고 싶은데?" 

"보트킨스크..내 삶에 영감을 주는 차이코프스키가 태어난 곳이지..."

차이코프스키가 동계올림픽에 참여해 스키 대신 바이올린을 타고 스키점프를 한 뒤 알파인 대회전을 하고 내려와 톨스토이가 구워주는
토스트 먹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여권.. 아니 일단 너 거기 갈 돈이나 있어?"

"이번 방학동안 벌어야지."

"거기는 나중에 돈 벌어서 네가 영감님 되면 미래의 할마마마 모시고 효도관광으로 다녀오시고. 좀 현실적인데 이야기해봐"

"성성이 너는 혹시 가고 싶은데 있어?"

"난 경기도 구리."

"왜? 구리에 뭐 좋은 거 있냐?"

"좋은 거 있지. 우리 집에서 가까워. 너희하고는 서울 또는 경기도를 벗어나는 자체가 인생의 모험이 될 수도 있을거 같아."

암내가 두 팔을 벌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본 뒤 강렬한 페로몬 향에 나는 실신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녀석 가슴에 쓰여 있는 'BOYS LONDON' 이라는 문구였다. 'BOY LONDON'인데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자식 짝퉁 입었구나'
하며 정신을 잃어갔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릴 무렵 가만히 있던 군견이 말했다.

"너희 맛과 멋, 그리고 선비의 고장 전주라고 들어는 봤냐?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도 맛집이고, 게다가 여인들은 아름답고 낯선 여행자들에게 친절하지."

"전주는 네 고향이잖아."

"전주가 딱히 내 고향이라 가자고 한 건 아니야. 너희가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맛과 멋을 경험 해주고 싶은 마음에..."

결국, 우리의 첫 여행지는 전주로 결정되었다. 딱히 여인들이 아름답고 낯선 이들에게 친절하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걸어서 한 번 가볼까? 우리 군대에서 기본으로 40km 행군들 했잖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데 우리도 국토대장정 한다는
생각으로 한번 해보자고."

암내가 흥분한 눈빛으로 말했다. 미친놈, 젊어서 고생은 나는 40년 할부로 할 테니 너나 일시불로 하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군견이 동조하며 말했다.

"그래 전주까지 약 200km니까 4박 5일이면 갈 수 있겠네. 우리도 깃발 같은 거 만들어서 가면 멋지겠다. 지난 학기 교양 역사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그러셨는데, 역적들은 한양에서 걸어서 유배지까지 갔데." 

역시 밤낮이나 개만 생각하는 군견답게 개와 맞먹는 지능에서 나오는 우리를 개고생시키려는 개소리로 들렸다. 그리고 우리가 무슨 역적이야? 
우리가 지은 죄라고는 타고난 못생긴 죄밖에 없는데..

"야. 누가 역적들이 걸어서 유배지를 갔데. 내가 드라마에서 봤는데 역적들 소가 끄는 수레 타고 가더라. 그것도 국영방송 KBS 드라마에서"

용의 눈물로 조선사를 배운 유동근 아저씨가 이방원이라 믿고 있는 노안이 반박했다. 녀석의 아버지께서 국영방송 KBS에 내는 수신료가 
무식한 아들의 삶에 이렇게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설마 소를 타고 전주까지 가자고 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다행히 녀석은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며 주장했다. 
하지만 깃발 만드는 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고 했다. 깃발에 꽂혀있는 녀석들이 은근히 무서웠다. 

그날 여행의 세부 계획을 짜기 위해 학교에서 나의 자취방이 있는 사가정역까지 이동 하는데, 지하철역까지 겨우 5분을 걸었음에도
암내의 양쪽 겨드랑이는 친구들과의 첫 여행을 떠나는 설렘 때문인지 겨드랑이에서 눈물 아니 정체불명의 액체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자리가 생기자 우리는 이미 얼굴에서 3차까지 회식을 마친 피곤한 부장님의 얼굴을 한 노안을 먼저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옆자리가 생겼을 때 7호선 승객들을 살리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암내를 앉혔다. 그리고 노안은 암내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야.. 너 저리가. 겨드랑이에서 똥 냄새나..." 

그렇게 늙은 것과 냄새나는 것 둘은 티격태격 싸우며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놈은 자취방에 혼자 외롭게 있을 개를 떠올리며 개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놈들과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불안이 엄습했다. 
출처 현실적인 나와 냄새나는 녀석, 개만 생각하는 개 아범, 그리고 나이 든 어르신이 함께 여행 떠나기 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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