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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천만금(千萬金)의 목
게시물ID : readers_2207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유어른유
추천 : 2
조회수 : 27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09 18: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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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이었다. 쉴 새 없이 달려드는 창들은 나의 목을 노리는 이리떼들과 같았다. 피와 땀이 섞여들었지만 땀 특유의 질적질적함이 내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하지만 간만에 느끼는 이 짜릿짜릿함에 나는 매도된 듯 정신없이 창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초천검을 고쳐 잡고 적의 부장의 목을 가르자, 군사들은 이제야 주춤주춤 물러섰다.
 
끈적 하구만.”
 
굳은살로 배 긴 손으로 이마의 피땀을 훔쳐내고 나니 시야가 좀 트이는 듯했다. 저벅 저벅 걸어가는 와중에도 적병들은 움찔움찔 거렸다. 전체가 극도의 긴장상태임에도 나는 한결 편했다.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는 넓적바위를 발견하자 한손엔 초천검을 한손엔 장창을 들고 그곳을 향했다. 그런 나의 발걸음을 그들은 막지 못했다. 바위에 털썩 주저앉자 비로소 적 병사들의 얼굴과 장수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어이! 거기 내 휘하에 있던 자가 아니었던가?”
 
피로 얼룩진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내며 묻자, 과연 그 장수는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누군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골이 울렸다. 워낙 넘어간 장수들이 한 둘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아부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참 웃긴 일이었다. 아부가 있을 때는 후회란 것을 모르고 전장을 누볐는데, 아부의 사후 꽤나 후회란 것을 많이 하게 되었다. 문뜩 보니 저 군중에서 아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날 보고 있음일까.’
 
찬찬히 둘러보다 다시 그 장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왜 대답이 없는가!”
 
쩌렁쩌렁 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다시금 전장의 병사들을 저릿저릿하게 만들었다. 쾌감이 일었다. 그 장수는 덜덜 떨며 더듬기 시작했지만,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 가 없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그 옆의 장수가 나섰다.
 
, 왕예라고 하옵니다.”
 
으하하, 말이 좀 통하는 놈이겠구나.”
 
나의 농에도 그는 긴장한 듯 팔다리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애쓰는 것이 안타까워 보였다.
 
폐하의 말씀대로 이 장수는 폐하의 휘하에 있던 여마동이라 하옵니다.”
 
웃기는 자였다. 다 죽어가는 마당에 폐하라니, 나를 놀리는 것인지, 아니면 위로하려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가당찮은 자식이었지만 놀랍게도 나는 의연했다.
 
구색을 맞출 줄 아는구나, 혼자 남은 외로운 자에게 폐하라니.”
 
마지막 존경을 표한 것 뿐 이옵니다.”
 
나는 잠시 그 여마동이란 자의 얼굴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그리고 피 묻은 전갑을 보며 중얼거렸다.
 
많이도 죽였구나......’
 
왕예라고 했던가!”
 
.”
 
내 목의 값어치가 얼마나 한다고 생각하나!”
 
왕예는 당황한 듯 입을 굳게 다문채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 내 눈빛에 기가 지린 탓이었을까. 나는 아직 죽지 않았구나 싶었다. 여마동을 돌아보며 나는 다시금 외쳤다.
 
으하하! 거기 너!”
 
여마동은 다시 움찔했다. 도대체 이자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만의 병사들에게 둘려 쌓여서는 혼자서 농락을 하고 있었다. 분명 덮치면 죽긴 죽겠지만 어느 누구도 발걸음을 떼지 않았다.
 
말이없구나! 벙어리더냐? 내 답답해서 살겠는가!”
 
“........”
 
듣자하니 패현의 건달 놈이 내 목에 천금과 만호후를 걸었다지?”
 
그 말에 병사들의 목젖이 꿀떡 넘어가는 소리가 이 귀에도 들려왔다. 하여간 세월이 지난들 나의 가치는 변함이 없음을 느꼈다. 아니 오히려 만호후면 적은 것 같아 적잖이 불쾌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거, 주마.”
 
나는 있는 힘껏 나의 목에 초천검을 꽂아 넣었고, 선혈이 사방팔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잠시 멍하니 보더니 이내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경관이 사실임을 인지하자 미친 듯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리보다 못한 흡사 굶주린 개떼들 같았다.
 
우희가......’
 
흐릿하게 사라져가는 내 몸을 탐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스스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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