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초반부입니다만 처음부터 흥미로운 주제를 던지는지라 함께 얘기해 보고자 글을 씁니다.
책은 몇가지 예시를 보여줍니다.
'일가족이 애지중지 키운 개가 있다. 이 개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가족은 슬퍼했지만 문득, 이대로 개를 묻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족들은 개를 요리해 먹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이는 가족 말고는 없다.'
'여자는 집안을 정리하다 낡은 성조기를 발견했다. 버리려다가 적합한 사용처를 떠올린 여자는 낡은 성조기를 잘라 욕실 청소용 걸레로 썼다.
역시 여자의 이 행동을 본 사람은 없다.'
'남매는 함께 여행을 떠났다. 밤이 되었고, 남매는 서로 섹스를 한다면 어떨지 호기심이 일었다. 여자는 피임약을 먹었고 남자는 콘돔을 사용했다.
둘은 섹스를 했고 이 일을 비밀로 할 것이며 다시는 섹스를 하지 않기로 했다.'
문화마다 다른 도덕률이 있습니다.
형제가 한 아내를 공유하는 곳도 있고, 돼지나 소의 섭취를 금지하는 문화권도 있죠.
그러나 살인이나 절도를 금하는 도덕률은 보편적으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사회 자체를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덕의 가장 기본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의 세 예시를 읽고 혐오감을 느끼고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 또한 그럴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들을 비도덕적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거든요. 내가 혐오감이 든다고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없구요.
우리는 우리가 가진 도덕률을 절대적인 양 생각하고 이를 어긋나는 사람에게 비난을 쏟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죠. 예를들어, 우리 사회에서 근친을 저지른 자는 비난의 대상이지만 근친이 허용되는 문화권의 먼나라 사람들에게 우리가 손가락질 하진 않는 것처럼요.
여기서 우리의 도덕은 상대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시대나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는 거죠.
그렇다면 같은 문화권에 산다는 이유로 사회의 도덕을 위반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지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최근 불거지는 논쟁들, 근친이나 성매매, 동성애 등 우리 사회에서는 터부되고 논란의 거리지만 이것들이 자연스러운 문화권도 있고
우리 역사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진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동성애의 경우 십 수년 전만해도
거론도 못할 금기였죠.
이런 경우들을 보면서 도덕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