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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양반이다!-200명의 부산시민, 희망버스 저지(딴지일보)
게시물ID : sisa_11054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피터제길슨
추천 : 6/2
조회수 : 635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1/08/01 15:16:35
2011.08.01.월요일
아외로워
3차 희망버스를 영도다리에 주둔한 부산시민 200여명이 막아섰다. 레오니다스왕과 그 친위부대가 연상되는 최정예 부산시민들은 약 3천에서 1만여명으로 추산되어 페르시아군 만큼이나 위세등등하던 희망버스를 막아냈다. 물론 레오니다스에게 수천명의 동맹국 군인들이 있었듯 이들에게도 수천의 전경대가 있긴 했다.
쪽수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던 이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부산시민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은 한진을 원하지 않는다.

한진중공업은 대내외적으로 조선분야를 필리핀 수빅으로 이전할 것을 천명해 왔다. 그에 따라 부산 영도조선소의 모든 노동자를 정리해고하고, 그 부지에는 아파트단지가 세워진다는 소문이 분분한 실정이다. 영도조선소의 한진 노동자들은 한진의 이런 정책에 완강하게 반대해 왔다. 타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한진의 주장에 이 노동자들은 저임금-고효율 노동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그때부터 영도조선소의 수주실적을 0건으로 유지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의 조선업계는 2008년 이래로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오직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만은 단 한 척의 배도 수주하지 못했다. 사상 최악의 경영실적이지만 한진중공업의 주가는 끄떡없다. 한진중공업의 임원들은 봉급이 1억씩 올랐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가 호황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몇 년치 일감을 쌓아놓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물론 다른 보도를 보면 수빅의 노동자들은 다른 의미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시위에 나선 필리핀 수빅 조선소의 노동자들. 이들은 현지 경찰이 한진중공업의 편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편집부 주, 사진출처 : 시사인)
한진중공업이 아직 부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에까지 소개되며 온갖 쌩쇼를 하고 있는 영도조선소의 노동자들을 아직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이 노동자들을 못 짜르게 하니 한진중공업의 해외이전 계획을 차질을 빚는다. 이들만 입 다물고 순순히 짤려준다면 이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영도조선소를 떠날 수 있다.
한진중공업은 명실상부한 부산 최대의 기업이다. 연관 업체 포함해서 3만명에 가까운 고용을 창출하고 있었고, 그 기업 노동자들에 기대어 먹고사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포함하면 수십만 부산시민들이 한진중공업에 기대어 먹고살았다.
그러나 부산시민들은 맥없이 잘려나가는 한진중공업 근로자들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다. 심지어 자기들이 사는 도시를 지댕하는 기업 바짓가랑이 붙잡으러 오는 타지역 사람들 까지도 이들은 매몰차게 쫓아냈다. 평화로운 도시에 분란을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 부산시민들은 경제가 아니라 평화를 원한다. 경제적 호황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분란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돈을 잘 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생겨나고, 이익집단이 생겨나고, 어쩌면 시위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경제적 성장과 번영이 가져오는 일종의 반대급부라 할 수 있다.
7월 30일, 부산 시민들과 영도의 시민들은 부산의 민심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들은 한진이 나가든 말든 자기 고장은 안정과 평화를 구가하길 원한다.

남이야 짤리든 말든, 우리고장 경제가 아작이 나든 말든 상관 없이 초지일관하게 지역의 평온만을 걱정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태도에 나는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전주에서 태어났다. 전주는 조선왕조를 배출한 양반도시로, 조선왕조는 태조 이성계를 모시기 위해 일종의 유교사당인 '경기전'을 전주에 세우기도 했다. 이 양반도시의 양반들은 덜컹거리는 철 수레가 도시의 평안을 깨뜨린다며, 호남선 철도를 전주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이게 했다(물론 여기에는 당시 시골마을이었던 익산을 키워서 전주의 정통성을 저해하려는 일제의 의도도 있었다).

덕분에 조선 3대 도시였던 전주는 지금까지 백년동안의 불황에 빠지며 그저 그런 중소 지방도시로 전락했다. 비록 경제는 망했지만 전주의 양반들은 도시의 평온과 안정을 일궈냈다.
나는 부산시민들이 모든 분란의 씨앗이 되는 경제성장을 자신들의 평안을 위해 초개와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적잖이 감동했다. 돈에 눈이 먼줄 알았던 대한민국에서, 적어도 제 2의 도시인 부산만은 딸깍발이의 기개를 지켜가고 있었다. 마치 100년 전 전주의 양반들처럼 말이다!! 이 양반고을의 평안을 어찌 감히 근본 없는 타지의 쌍것들이 깨뜨린단 말인가.
부산지역 경제성장의 주범(?)이었던 한진중공업이 부산을 떠나려 했던 것도 이런 부산의 민심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부산지역의 기업가들과 정치가들은 부산의 양반정신을 깊이 유념하여, 쌍스러운 경제성장을 막는데 전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평화로운 항구도시 부산, 그리고 부산시민들. 웰컴투더 양반월드.
아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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