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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글주의/스압주의] 저녁에는 고통받는 톨비쉬를!
게시물ID : mabinogi_13321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카야시마
추천 : 21
조회수 : 708회
댓글수 : 11개
등록시간 : 2015/10/14 19: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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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캐는 굴러아해요. 괴롭혀야해요.
수련하다가 파괴된 정신이 그대로 들어가있음 주의
급마무리는 착각이 아닐 거예요. 개연성 없음 주의 스압주의!
 
 
 
 
 
오늘도 그녀가 죽었다
 

 

 

 

 

오늘도 그녀가 죽었다. 비 내리는 센마이 평원은 얼마 전까지 있었던 큰 전투로 처참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사도와 기사들의 시체가 곳곳에 널려있고 새빨간 피는 빗물에 뒤섞여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아벨린과 알터도 쓰러져 있었지만 그들은 부상을 입은 정도였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톨비쉬는 무너지듯 무릎을 꿇었다. 부러진 다리의 아픔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도 그녀가, 죽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는 차갑게 식은 영혼 없는 껍데기에 머물러 떨어질 줄을 몰랐다.
 

- 곧 다시 돌아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망연자실한 톨비쉬에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조금만 기다리라는 말도 톨비쉬는 이제 반길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밀레시안이라는게 다행으로 여겨졌다. 수도 없이 죽어도 다시 환생해 그에게로 돌아오는 그녀였기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톨비쉬는 그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모습이 바뀌어도, 나이가 바뀌어도, 성별이 바뀌어도 톨비쉬는 그녀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래서 고맙다 했지만 톨비쉬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게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녀가 그렇게 변한다는 건 죽음을 겪었다는 것이니까.
 

무릎 위에 늘어진 톨비쉬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차갑게 식은 얼굴에 손끝이 닿았을 뿐인데 소스라치게 놀랐다. 달달 떨리는 손끝을 감추려 주먹을 말았지만 그래도 떨림은 가시질 않았다.
 

이게 죽음이다. 바로 이게. 싸늘하게 식은 껍데기로 변하는 이게 바로 죽음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맞이할 수 있는 진정한 끝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죽음 또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톨비쉬는 고개를 숙였다. 비에 짓눌린 것처럼 머리가 무거워졌다.
 

이정도로 다르다니. 그가 작은 숨을 토해냈다. 이곳에 죽어있는 수많은 병사들. 그리고 하물며 사도까지 끝을 맞이했는데 그녀 혼자 다시 시작하게 되다니. 새삼 와 닿는 밀레시안의 무한한 수명에,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톨비쉬는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꼈다.
 

 

  -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머리카락 색이 변하고, 나이 또한 바뀌었다.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것은 톨비쉬 본인과 같은 눈동자 색이었다.
 

"저 돌아왔어요."
 

부상으로 치료소에서 쉬고 있던 톨비쉬에게 그녀가 가장 처음 한 말이었다.
 

"기다렸어요."
"미안해요. 이번에는 조금 늦어졌네요."
 

나오를 만나는 것이 늦어져 소울스트림에서 혼자 심심했다며 그녀가 종알거렸다. 그와 같은 벽안이 때때로 다리에 감긴 두툼한 붕대를 걱정스레 쳐다보았지만 톨비쉬는 모르는 척했다.
 

다리가 부러져 아직도 붕대를 풀지 못하는 톨비쉬와 다르게 그녀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리 처참하게 죽어있었는데 그건 전부 꿈이라는 듯이 뒤틀려있던 사지가 멀쩡해져 있었다.
 

"많이 아픈 거예요? 미안해요. 내가 더 잘 싸웠......"
"가벼운 정도랍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뒷말을 듣기가 괴로워 톨비쉬는 그녀의 말을 쳐냈다.
 

그녀는 절대 남의 탓을 하지 않았다. 일이 잘못되면 언제나 자신의 탓이었고, 일이 잘되면 항상 남의 탓이었다. 톨비쉬는 이제 그런 그녀의 말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한 번쯤은 그의 탓을 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녀가 죽어가며 한 번이라도 그에게 당신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면,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조금만 기다려달란 말 대신 당신 때문에, 당신을 지키다가 내가 죽게 되지 않았느냔 말을 하는 게 더 견디기 편할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안색이 안 좋아요."
"괜찮습니다."
 

그녀의 걱정스런 말에 톨비쉬는 재빨리 감정을 갈무리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건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아직은 이런 생각과 마음을 그녀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알반 기사단 최고의 기사라는 말도 이제는 기쁘지 않았다. 주어진 능력이 방어였을 때 톨비쉬는 내심 안심했었다. 갖게 된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키겠다고 다짐해왔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서 그의 그런 다짐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녀는 톨비쉬에게 지켜지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항상 그녀 자신이 톨비쉬를 지키려했고 그 과정에서 죽은 것만 벌써 몇 번째였다. 모습은 다르지만 항상 죽는 것은 그녀였다.
 

소중한 사람이 눈앞에서 몇 번이나 죽는 걸 보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괴로운 것이었다. 사지가 뒤틀리고 찢어지는 고통을 몇 번이나 느끼며 죽으면서도 그녀는 그의 탓을 하지 않았다. 무능력함을 느끼게 되었을 때부터 톨비쉬는 그녀가 죽은 날이면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렸다. 그를 더욱 초라하고 무능력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가 꿈에서도 그의 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며칠 자리를 비웠으니, 조원들에게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많이 걱정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톨비쉬가......”
“음. 정 마음이 안 놓인다면 저녁에 다시 와주시겠습니까?”
 

톨비쉬의 말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지만 그가 한발 물러나준 것을 알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저녁에 다시 올게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돌리는 그녀에게 톨비쉬는 웃는 걸로 답해주었다. 낡은 나무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던 그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에 들면 다시 또 악몽 속으로 빠지겠지만 일단은 의식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똑같이 초라해진다면 차라리 무의식 속이 훨씬 나을 것만 같았다.
 

 

-    
 

 

벨테인 조 조원들은 최근 눈에 띄게 성장했다. 주어진 임무의 성공률도 높아졌고, 각자 한 사람의 몫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톨비쉬는 그런 그들을 보며 조금이나마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그녀가 조원들과 함께 임무 수행에 나섰을 때 다치거나 죽는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들도 본인들의 실력이 월등히 늘어난 것을 느끼며 그런 점을 다행이라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톨비쉬의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반호르에 사도와 선지자들이 출몰한다는 소식에 그곳에 가게 된 것은 벨테인 조였다. 마음이 놓이질 않았는지 그녀가 함께 가겠다 했고, 톨비쉬는 무리하지 말라했다. 죽으면 안 된다는 말은 입 안으로 꾹 눌러 삼켰다.
 

- 알겠어요.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알겠다 했기에 톨비쉬는 그저 믿고 있었다. 벨테인 조가 예정보다 닷새나 일찍 돌아왔다는 건 알터를 통해 듣게 되었다.
 

“톨비쉬 님!”
“알터?”
 

엘베드 조 훈련장까지 달려온 알터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혹 사도라도 나타나 이리 서두르나 생각했다.
 

“베, 벨테인 조가. 벨테인 조가 돌아왔어요.”
“벨테인? 하지만 아직 닷새나 남았잖아요?”
“그게, 그게......”
 

마른침을 삼키며 머뭇거리는 알터의 모습에 톨비쉬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들고 있던 무기를 던지다시피 땅에 내려놓은 그가 알터의 어깨를 세게 움켜잡았다.
 

“벨테인 조가, 왜요? 무슨 일이죠? 빨리 말해 봐요.”
“반호르 주변을 정찰하던 중에 선지자들과 사도가 나타났대요. 사도의 개체수는 많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조원들을 지키느라 그, 그분이......”
 

흐려지는 알터의 목소리에 톨비쉬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눈시울이 붉어진 알터를 뒤로한 그가 내달렸다. 치료소가 가장 가까운 게 엘베드 조여서 다행이었다.
 

“그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었는데 조장 왜 너는 나서가지고 이렇게 되냐고!”
 

디이의 고함소리가 치료소 밖까지 터져 나왔다.
 

“미안해. 그래도 너희보다는 내가 다치는 게 훨씬 낫잖아.”
“그딴 걸 말이라고 해? 너! 말은 안 해도 사실은 우리가 못미더운 거 아니야?”
“뭐? 너야말로 무슨 말을 그렇게......”
“그게 아니면 왜 나섰는데! 그대로 내가 잡게 놔뒀으면 너 이렇게 다칠 일도 없었어. 왜 나서? 가만히 보기나 하면 될 걸 왜 나서가지고 이 사단을 내? 너 대단한 거 잘 알겠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지. 한두 번도 아니고......”
 

역정 가득한 디이의 목소리 사이로 로간과 카오르의 말리는 소리가 뒤섞였다. 그때 나서지 않았다면 네가 다쳤을 거라는 그녀의 말에 디이가 악 소리를 질렀다.
 

“끝까지 지가 잘못했다는 말은 안 하지. 그래. 잘났다. 죽지 않아서 좋겠다!”
“디이!”
 

톨비쉬가 가만히 바라보던 문이 뜯겨질 것처럼 거칠게 열렸다. 바로 앞에 선 그를 보고 디이가 잠시 굳어졌지만 그뿐이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얼굴로 톨비쉬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한 디이는 쿵쾅거리며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아. 톨비쉬.”
“알터에게 들었습니다. 어디를 얼마나 다쳤기에......”
 

그녀의 모습을 살펴본 톨비쉬는 디이가 왜 그렇게까지 화를 냈는지 이해했다. 오른쪽 팔이 팔꿈치 아래로부터 보이지를 않았다. 톨비쉬가 말을 멈추자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이건 환생하면 원래대로 돌아와요. 알고 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데 디이가 괜히 그런 거예요. 어차피 내일이면 환생할 수 있으니까 하루만 참으면 되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하는 말에 눈앞에 선 남자의 마음이 어떨지 그녀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톨비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는 걸 로간과 카오르가 가장 먼저 눈치 챘다. 디이가 화낼 때보다 더 냉랭해진 분위기에 그들은 급하게 치료소를 나섰다.
 

“임무를 마치지 못했는데 어쩌죠?”
“그건 저희 엘베드 조가 가겠다고 상부에 말하면 됩니다.”
“그럼 내일 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원래 벨테인 조 임무였으니까 저도 가야하잖아요. 그게 저도 마음이 놓이고. 혹시 톨비쉬가 위험해지면 제가 지켜줄......”
“......하세요.”
 

중얼대는 목소리에 그녀가 톨비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톨비쉬?”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동안 갈무리하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소용돌이쳤다. 디이가 했던 말은 심할 수도 있지만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다. 주위 사람을 위한다지만 사실은 그들을 조금도 위하지 않는다. 톨비쉬 본인까지도. 정말로 위한다면, 지키고 싶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다쳐도 괜찮다, 죽어도 괜찮다.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다쳐도 괜찮은 사람도, 죽어도 괜찮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이 밀레시안이고 수명이 무한하다 해서 그래도 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톨비쉬가 죽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센마이 평원에서 있었던 전투는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톨비쉬가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위험했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쉽게 죽지도 않아요.”
“그럼 톨비쉬가 다치는 걸 그냥 보기만 했어야 했다는 거예요?”
 

그동안 잃은 사람이 많아서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 톨비쉬가 위험해보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말하는 톨비쉬가 그녀는 서운했다.
 

“그럼, 저는. 저는 언제까지 당신이 그렇게 죽는 걸 봐야 합니까. 아무리 며칠 뒤에 다시 돌아오는 밀레시안인 걸 알지만. 눈앞에서 당신이 죽는 걸 아무것도 못하고 봐야만 하는 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모양이네요.”
“그게 아니라......”
“당신은 항상 그래왔죠. 저에게 당신을 지킬 기회는 주지를 않아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정말 저를 생각한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아요. 그래서 더욱 그렇다는 걸 알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주세요. 제가 지금까지 당신이 죽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아왔는지. 수없이 봐왔다 해서 적응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톨비쉬는 말을 하면서도 감정이 격해져 그녀에게 소리칠 뻔한 걸 몇 번이나 참았다. 많은 걸 바란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좀 더 그에게 의지하기를 바랐던 건데 너무 큰 욕심이었던 듯했다. 놀란 눈의 그녀를 바라보다 톨비쉬가 긴 숨을 뱉어냈다.
 

“죽는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건 절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니까요. 밀레시안은 원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절대 익숙해질 일 없을 겁니다. 저 때문에 죽었다고 한 마디만 해도 됩니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더 편할 테니까. 금방 올 테니 기다리라 말해도 그 며칠 동안 제가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압니까.”
 

톨비쉬의 말에 그녀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못 넘어갈 것 같았다. 잃는다는 게 무서운 건 그녀 혼자만이 아니다. 그 역시 잃는 게 무서웠다. 이미 몇 번이나 그녀를 잃었으니 이제는 그만 알아주기를 바랐다.
 

“벨테인 조가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은 엘베드 조가 맡아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환생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세요. 한 번 쯤은 들어주실 거라 믿습니다.”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톨비쉬가 치료소를 나왔다. 이제 정말 더는 잃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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