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죽지 마세요_
영웅이 사라졌다.
영웅의 자취를 쫓아 그녀의 숨겨진 업적과 업보마저 줄곧 꿰차고 있던 알반조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에린의 곳곳을 뒤져보아도 그녀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돌연 보이지 않다가도 다른 얼굴로, 어려지거나 좀 더 커지거나,
심지어는 성별마저 뒤죽박죽인 채로 나타나겠거니 기다렸건만, 그녀는 알반의 착각을 픽 비웃는 것마냥 존재했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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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죽지 마세요."
"으우..우..우웁..."
"부디 그대로 남아주세요."
추하게 재갈을 문 채 발버둥치던 여자의 사지는 거짓말처럼 고요했다.
그저 팔다리에 표식마냥 새겨진 커다란 흉터가 자리잡고 있었을 뿐.
배신감과 마냥 두려운 앞길에 흐르던 눈물 자욱이 선명함에, 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 번 천진하게 웃어보였다.
살며시 조금은 퀭해진 볼을 검지로 살살 쓸어내고 있노라면,
아, 비로소 그녀가 온전한 자신의 것이 되었음에 쾌감을 주체할 수 없어 부르르 떨기도 했다.
바보 같은 사람.
어떻게 당신이 멋대로 떠나버릴 수 있겠어.
'아마 앞으로도... 쭉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돌연 찾아온 당신은 씁쓸히 웃으며 내게 이별을 고했다.
아벨린은 자신이 인정했던 영웅의 상실에 좀처럼 보기 힘든 벙찐 얼굴로 말을 잇지 못했으며,
당신을 그 누구보다 동경하며 숭배하며 사랑했던 나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게이트 앞을 벗어나 스카하로 나가는 길목까지 따라가 당신의 뒷모습을 배웅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랐다.
상냥하고, 그 만큼 속여넘기기 좋은 당신은 슬프게 웃으며 내 손을 이끌었으며,
"또 우시는 거예요?"
내게 당신의 원망스러운 사지 힘줄을 잘라버릴 기회를 건내주고 말았다.
"..너무해. 너무해요. 제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
"......"
"어떻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그 초췌한 얼굴, 매마른 시선이 내게 닿아올 때면 그 마저도 얼마나 행복한지 당신은 모를 거라고 생각해.
유감이야.
이런 식으로, 이렇게 가까이까지 당신에게 닿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바보 같은 사람..
그러게 왜 떠날 거라고 떠들고 다녔어.
이젠 당신을 찾아줄 사람이 사라져버렸잖아, 감사하게도.
"저도.. 초조했어요. 너무.. 너무 급했어요.
베어버릴까 말까를 망설이는 사이에 사라져버릴까봐.. 아무것도 못하느니 차라리.."
그래서 이성을 끊고 당신의 자유마저 끊어버렸어.
그는 기도하듯 싸늘하게 널부러진 그녀의 손을 쥐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늦었어. 나를 초조하게 만든 건 당신, 내 초조함이 당신의 자유를 꺾어버렸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었다.
..떠나버릴 거잖아.
소울 스트림. 밀레시안의 영혼이 내려앉는 곳.
움직일 수도, 말 한 마디 할 수도 없는 당신의 육체로는 향할 수 없을 것이었다.
더는 '별에서 온 자'가 아니었다.
'별로 돌아갈 수 없는 자'.
응, 당신에게 훨씬 더 잘 어울려요.
"죽으면 안 돼요..."
부디 죽지 마세요, 나의 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