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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백일장] 따뜻했던 첫 키스 이야기
게시물ID : humorbest_110648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성성2
추천 : 23
조회수 : 1929회
댓글수 : 11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8/11 15:28:17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11 10: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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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약국에서 책은 서점에서
똥은 똥게에서 책은 책게에서

~~~~~~~~~~~~~~~~~~~~~~~ 따뜻한 라면입니다. ~~~~~~~~~~~~~~~~~~~~~~~~~~~~~~~~~~

유유상종이라는 말처럼 등신 같은 내게 등신 같은 친구 한 명이 있다. 
우린 첫 만남부터 등신 같았다.
신입생 때 다른 동기들은 선배한테 물어봐서 신청하거나, 눈치껏 알아서 하든 수강신청을 했는데, 나는 고등학교 때처럼 가르쳐 주는 대로만
배우겠다는 주입식 교육의 노비 같은 수동적 자세로 등신 같이 있었다. 결국, 과사무실에서 "왜 너는 수강신청을 안하냐?"는 조교의 말에 
조교 선배가 골라주는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80명의 신입생 중 나 같은 등신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게 바로 녀석이었다.

매일 같은 수업을 받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항상 우리는 벤치에 앉아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녀석이 내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너 여자랑 키스해 본 적 있냐?"

여자 손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 두 남녀의 아밀라아제 교감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는 격렬한 작업인 키스라니.. 

"당연히 없지. 내 혀는 음식 먹을 때랑 지금 너같이 헛소리하는 사람들에게 메롱 할 때 밖에 써 본 적이 없어. 그러는 넌 있냐?"

"당연히 있지. 때는 바야흐로 18살, 그녀는 ...."

"닥치고 느낌이 어땠어?

"컵라면 면발을 혀에 휘감고 격렬하게 빨아들이는 기분이었어. 처음에는 뜨겁지만 끝에는 부드러운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야.. 우리 컵라면 먹으러 가자. 내가 살게."

혈기왕성하며 여자에 관심이 많던 약관의 청춘이었던 나는 키스하는 기분을 당장 느끼고 싶었다. 나는 녀석을 끌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항상 즐겨 먹던 육개장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은 "이래서 하수는 안돼." 하며 내게 튀김 우동 컵라면을
권했다. 

"이게 면발이 오동통해서 살아있는 여성의 달콤하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혀처럼 실감이 나."

"면발 오동통한 거 찾으려면 이거 말고 우동으로 먹으면 되잖아."

"아놔. 이 하수 새끼 안 되겠네. 우동은 후루룩하고 잘 빨리기만 하지 '착'하고 혀에 감기는 맛이 없다고, 키스의 핵심은 아나콘다가 먹이를 
휘감을 때처럼 니 혓바닥으로 상대의 혀를 휘감고 놓지 않겠다. 그런 자세가 필요해."

미친 새끼.. 서울 한복판 편의점에서 라면하고 키스하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놈에게 아마존 정글의 제왕 아나콘다 같은 자세를 
기대하다니...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뜨거운 물을 붓고 4분의 시간을 기다렸다. 내 인생에서 컵라면 익는 시간을 이렇게 초조하게 그리고 
간절히 기다려 본 적은 없었다. 녀석은 그런 나를 지켜보며 

"서두르면 안 돼. 여자도 라면도 서두르면 딱딱하게 굳어 버려. 설익은 상태에서는 사랑도 라면도 실패하는 거야. 그러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해."

병신처럼 들리는 녀석의 말이 왠지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리고 적어도 키스를 해 본 선배의 말이니까 믿음이 갔다.

그리고 라면이 다 익었을 때 나는 마치 여자친구의 사랑스러운 두 볼을 잡는 것처럼 컵라면을 양손으로 잡았다.
나처럼 컵라면, 그녀도 첫 경험인지, 온몸이 후끈하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내 손이 떨고 있는 건지 아니면 컵라면이 떠는 건지
국물에는 은은한 파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너도... 나처럼 처음이구나..."

젓가락으로 살짝 그녀의 면발을 휘저었다. 사랑에 빠진 여인이 웅크린 몸을 사랑하는 남자에게 맡기듯, 뭉쳐있던 면발은 나의 젓가락질에
면발을 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젓가락에 몸을 맡긴 수줍게 축 늘어진 면발을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혀로 감기 시작했다.

"와. 뜨으으.. 뜨거.."

"참아. 사랑은 고통이야. 참어 키스가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았어? 뜨거워도 참아. 머릿속에 '고진감래'를 생각해."

키스란 이런 기분이었구나. 뜨거운 고통 속에 느껴지는 부드러움....
나는 단무지로 혀를 식히며 녀석에게 물었다.

"그런데. 좀 식힌 다음에 하면 안 될까?"

"너 키스 한 번 했다고 벌써 애정이 식은 거냐? 이런 인스턴스 사랑을 하는 자식..."

인스턴스는 지금 내가 먹고 아니 키스하고 있는 거고.. 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녀석의 표정은 너무 진지했다. 

그날 난 나에게 뜨거운 사랑을 보내고 있는 튀김 우동과 몇 번의 격정적인 키스를 나눴다. 그리고 그녀, 아니 면발이 격정적 키스를 마치고
내 몸에 흡수되었을 때 '데인 혀'라는 첫키스의 잊지 못할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 뒤 난 짜파게티를 먹으며 자금성 앞에서 중국 여인과 키스하는 상상을 스파게티를 먹으며 베네치아 광장에서 이태리 여인과 키스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년간 다양한 라면과 키스를 즐긴 나는 위염에 걸렸다.

역시 사랑은 고통이다. 


~~~~~~~~~~~~~~~~~~~~~~이미 식어버린 라면 입니다.~~~~~~~~~~~~~~~~~~~~~~~~~~~~~~~~~~~~~~~

나는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출처 첫 키스라고 꼭 사람하고 하라는 법이 있으면 그 법전을 내게 펼쳐보시오!!

가발만을 노리는 탈모 남의 순수한 첫 키스 이야기입니다.

사회 비판적인 글을 쓰고 싶었지만, 택배와 마티즈가 두려운 저는 아무래도 등신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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