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 천사의 시
후드득 흩날리고 정처 없이 뒤덮이는 물감들. 목적도 방향도 잃은 듯 거칠게. 걸음마를 시작한 아가의 몸짓처럼 미숙해 보이는 선과 색들. 테크닉의 정점을 넘어선 대가의 그림과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 하지만 손끝으로 체득한 고정관념을 넘어서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던졌던 시간이 담긴 대가의 그림에는 무게감이, 선입견과 판단의 기준이 들어설 기회 없이 흥이 나야만 집중할 수 있는 아이의 그림에는 세상 무엇보다 맑고 강렬한 에너지가 담깁니다. 서로가 넘볼 수 없는 영역으로 각자의 소중한 가치를 담았지만, 어른들은 늘 아잇적 시간으로의 회귀를 꿈꾸죠. 많은 작가가 아이들 그림으로부터 영적 기교적 형상적 영향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 어른들은 그렇게 배웠어요. 훌륭한 그림이 어떤 것인지를, 칭찬받는 그림을 어떻게 그리는지를. 그렇게 아잇적 에너지를 화폭에 담는 일을 묻어버린 채 어른이 되었죠. 하지만 그것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쉬이 손닿을 수 없는 깊숙한 곳에 묻어둔 게 아닐까요? 아이의 그림을 봤을 때 터져 나온 탄식은 같은 성질의 것들만이 부딪쳐 낼 수 있는 공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이리의 작은 공방에 아이들이 한둘씩 모여 작업을 했습니다. 어떠한 가르침을 주입받지 않고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작품들을, 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리고 만든 작품들을 헤이리 논밭예술학교에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기간: 2017년 5월 5일부터 5월 21일까지.
장소: 헤이리 논밭예술 전시장.
“아이를 천사로 여기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아” - 영화 [매그놀리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