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분노를 느낀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처음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날이 갈 수록 그것은 정도를 더해갔고, 스트레스는 점점 그의 안에 축적되어갔다. 그것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였고, 실제로도 견딜 수 있었지만, 가슴속에 쌓여 사라지지 않는 스트레스였다.
"여러분,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 한계가 왔기 때문이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박어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불만이 많은 사람이죠. 제가 민감하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발언에 그는 떨렸지만 용기를 내었다. 그러자 곧 웅성웅성대던 군중은 반응을 보였다.
"먼데요?"
군중중의 한 사람이 대답한 내용, 바로 그 내용 때문에 그는 자신이 올바르다고 확신했다. 자신이 용기를 내어 하고 있는 이 이야기! 이 이야기는 틀린것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네, 바로 그 점입니다. 먼데요? 라니 최소한의 맞춤법은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뭐 아주 어려운 걸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맞춤법이 헷갈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최소한의 기본적인 맞춤법은 맞춰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의 발언은 군중 사이에서의 큰 파문을 불러왔다.
"헐... 완전 어의없네요. 제가 맞춤법을 틀려도 알아는 들으시잖아요."
"아니죠... 저 사람에 말에 일리는 있어요. 분명히 우리에 언어생할은 고쳐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몰라요."
"구지 우리에 언어생활을 고칠 필요가 있나요? 그렇게 과도하게 문법을 지적하는 사람을 문법나치라고 한다던데... 저 사람이 그런 사람이 아닌가요?"
"하여튼 폭팔적인 반응이네요. 아, 저 사람에 말을 좀 들어보죠. 뭔가 말하려 하네요."
그는 군중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리고는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약간 잠긴 목소리로 쥐어짜듯 말했다.
"먼저, 여러분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교육의 중요성을 알려주신 은인이에요. 저는 오늘 국어교육을 해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군요."
그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했다.
"여러분, 제가 뭐 어려운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개기다가 아닌 개개다가 맞는 표현이라거나, 간간히가 아니라 간간이가 맞는 표현이라던가를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것은 저도 자주 틀리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어의와 어이의 구분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굳이와 구지의 구분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도를 넘어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는 그동안의 설움을 가슴에 품고는 목청에 힘을 주고는 말했다.
"게임에 스킨을 사도 돼나요? 라면을 이런 식으로 끓여도 되요? 이런게 헷갈릴 문장입니까? 그래요, 당신이 초등학생이라면, 말하기 듣기 쓰기를 아직 배우는 도중이라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아니잖아요! 대다수의 당신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의 비통하고, 또 애통한 외침에 공감하는 사람은 없었다. 군중들에게서는 '저 사람이 우리를 가리키려든다! 와 같은 분노에 찬 외침만이 들려왔다.
"여러분, 저는 믿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어를 바르게 구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 우리 교육에 필요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에는 땀이 흘렀다. 그것은 더워서도 아니었고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말에 대한 순수한 확신에 의한 열정! 그것이 그의 얼굴에서 땀이 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군중들의 분노를 식히기에 그 땀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당신이 아르켜주지 않아도 되!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가리키려들어!"
분노에 찬 군중중의 한 명이 외쳤다. 뒤이어 옯소! 옯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르켜주는 것이 아닙니다! 알려주는 것입니다! 되가 아닙니다! 돼입니다!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와중애도 지적질이냐!"
"저놈이 바로 문법나치다! 저놈을 잡아서 줄이를 틀어라!"
그는 깊이 실망했다. 사람들에게 문법이 맞고 틀리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그저 말이 통하면 다 좋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분노한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을 기다리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는 갑자기 뭔가를 발견하고는 미친듯이 달려갔다. '저놈 잡아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그는 무시하고 내달렸다.
"이보세요, 괜찬으십니까? 정신이 들어요?"
그가 발견한 것은 한 쓰러진 젊은 남성이었다. 그 남자는 거품을 물고 경련하며 바닥에 누워있었다. 아무래도 방금 쓰러진 듯 했다. 그래서 그는 황급히 그를 업고 성난 사람들로부터 도망갔다. 약 십분간을 죽어라고 달린 결과 그는 쓰러진 사람을 업고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으으, 여기가 어디요?"
남자가 정신을 차리자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병원은 아닙니다만, 안심하세요. 제 방입니다. 바로 구급차를 부르겠습니다."
"뭐요? 아니야, 지금 당장 벗어나야겠어."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간신히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갔다.
"이보세요,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나는 지나가던 국문학도로 이름은 김국전이라 하오."
쓰러졌던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삐 되돌아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김국전이라 이름을 밝힌 남자를 붙잡았기에 김국전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었다.
"이보시오, 나는 당신이 쓰러진 이유를 알 것 같소."
"어허, 나는 더 견딜수가 없소. 제발 내가 그냥 가도록 놔 주시오."
"안 됩니다.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더 늘어나야 제 꿈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아니되오. 이미 나도 시도는 해 보았지만 다 소용 없는 일이오."
"후후, 그렇게 포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닌 법이지요."
"아니, 들어오는 것도 내 마음이 아니었잖아!"
"괜찮소. 우리의 일이 처음에는 고통스럽겠지만 나중에는 점점 기분좋은 일이 될 것이오."
"안돼,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하지만 국전은 빠져나가는 데 실패하였다. 결국 그들은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단체를 이루게 되었고, 많은 국민들을 계몽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단체의 이름은 원래 없었으나 후에 세간의 평에 의해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국어사전이라 하게 되었다.
이들은 많은 이들을 계몽하였으며, 후에 이들이 정리한 옳은 말들을 묶은 책이 나왔고, 이 또한 그 당시 불리던 단체의 명을 따 국어사전이 되었다. 국어사전이 나온 이후 많은 이들이 올바른 언어생활을 즐기게 되었으며, 언제라도 올바른 단어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신도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길 바란다. 아직 국어사전의 영향을 받지 않아 올바르지 못한 단어를 구사하는 불쌍한 영혼이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