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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장문주의)
게시물ID : gomin_153605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Tendo
추천 : 0
조회수 : 527회
댓글수 : 3개
등록시간 : 2015/10/18 17:48:08

아침에 일어나면 늘 머리가 아픔니다. 누적된 피로감은 차곡차곡 쌓여서 저를 지치게 만들죠.

그럼에도 저는 내리 5시간만 더 자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옷을 추스리고 현관문을 나섭니다.

제 직장은 버스를 타고 걷는 시간 포함해서 40분 가량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무슨일을 하냐면... 한국으로 치면 홈플러스 같은 대형매장에서 운영하는 스시바 같은 곳에서 

김초밥을 만들고 가끔은 니기리(밥위에 생선을 얹이는 흔히 먹는 초밥)를 만듭니다.

아직 신입이다보니 그럴 기회는 많지 않지만요..


사실.. 주된 업무는 비네가(식초와 설탕을 혼합한 초밥용 밥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섞은 밥을 휘젓고, 다시 밥을 짓고.

내일 쓸 재료를 손질하고, 제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사용한 모든 물건을 깨끗하게 설겆이함은 물론 손님이 오면 세일즈를 위해

유창하진 않지만 어설픈 영어로 고객에게 제품을 설명해야합니다. 

하고싶냐고요? 전혀요. 어설픈영어를 쥐어짜내며 말도안되는 설명을 하며 억지 미소를 3시간 동안 짓는다면 안면과

 대뇌부의 통증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요.


사실 신입이다보니 해야하는 일은 선배(선배라지만 다 같은 워홀러이며 길어야 4~6개월 차이)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습니다.  

아침은 늘 호소롤(한가지 재료만 넣어서 밥을 마는 김초밥으로, 살몬, 치킨데리야끼, 비프 데리야끼, 튜나, 베지터블등 8가지정도가 있음. 한번에 두개씩말아야함.)을 마는데...

이 호소롤은 작은 주제에 펴야하는 김의 양도 많고 밥도 피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시간이 오레 걸릴 수 밖에 없는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가 호소롤을 말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저는 밥을 비벼야하고, 밥을 짓고, 손님이오면 세일즈 또 설겆이가

 밀리면 설겆이를 어느정도는 해놔야 합니다.

하지만 선배조리사들은 그런 것을 신경써주지 않아요.

-왜이렇게 느려요? 

-손이 느리네요.

-여기서 일 할 수 있겠어요?

-집에가라고 하고 싶네요.

-호소롤 만드는데 무슨 30분이나 걸려요? 밥다하고, 설겆이하는 시간 포함해서 20분이면 해야죠. 


이런 개줫같은 소리를 매일 하더라고요. 허허허... 

그래도 언제나 짓는 미소로 일관하며, 다음엔 핸드롤(재료와 추가재료를 넣고 마는 롤, 이것도 8가지 종류가 있다)을 마는데...

-(정색하며)핸드롤이 무슨 15분이나 걸려요? 포장까지 5분이면 해야지??(이말한 당사자의 핸드롤 마는 시간을 몰래 재봤는데 정확히 15분이 걸렸음.)

-핸드롤도 제대로 못하네...

투덜투덜..


사실 이것들은 시작에 불과해요. 일은 일대로 힘들고 정신은 정신대로 피폐해지는 상황. 신입이니까 라는 

이유로 정당화 시키면서 하루를 보네야하며 마감시간이 되어 그들이 남기고간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명제가 붙은 온갖 설겆이와 드라이품목(쌀을 포함한 포장지. 사실상 내일 써야하는 모든 것들++)을 채워놓고, 제품진열대를 닦고 

냉장고 청소.. 냉동고에있는 물품을 미리 해동해놓고 포션(완두콩이나, 만두같은 조리된 식품을 미리 포장해놓는 작업)해놔야 하고

바닥청소까지 ... 40분을 줍니다. 거대 매장이다 보니 혼자 남아서 그것을 전부해야하는데. 40분은 어림도 없죠. 둘이해야 40분일겁니다... 

이럴때마다 분신술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잡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언제나 1시간 오버된 시간동안 마감을 마치고... 

당연히 1시간 오버된 돈은 받지 못 합니다.

언젠가 한번 물어봤죠.

-제가 마감을 제시간안에 하려면 본인이 사용한 도마같은건 좀 치우고. 마감전에 사용한 재료를 냉장고에 넣어줘야 한다고.(그것만이라도...)

돌아온 대답은

-원칙상 마감이 해야할 일을 누가 해주겠어요?


정말 빗자루로 한대 때리고 싶습니다.. 본인이 격는일이 아니면 신경도 쓰지 않는 그들의 작태에 지쳤고요..

뭐 다 참고 그냥 마감시간에 맞춰서 퇴근해버릴까 생각해본적도 있습니다. 뭐,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나는 정당한 돈을 받고 정당한

 시간동안 노동을 하기위해 종사하는 '노동자'니까요. 내가 1분이나 1시간 더 일한다고 돈을 받는것도 아닌데 일해야하는 이유도 없잖아요?

정확하게 초단위로 맞춰서 마감을 전부 못 하게 되더라도 그냥 퇴근해버릴까? 라고 생각해봤는데...

퇴근시간=퇴근은 자유지만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시간.

그런 공식이 떠오르더군요.

왜 출근시간은 꼬박꼬박 지키라고하면서 퇴근시간은 꼬박꼬박 넘기게 만드는지 의문이지만...


무튼 여기까지는 그냥 소소한 직장생활에 관한 것이고.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요즘들어 무언가 심각하게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가끔가다가 어떤 장르던간에 음악에 심취한다거나..

옜날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배란다를 열어두면 불어오는 바람의 알송달송한 향기를 맡는다거나 

해가진 이른 아침의 하늘을 올려보거나.

비가오는날 멍하니 안락의자에 파묻혀 창문밖의 젖은 도로를 보고있거나하면

그런 기분이 더욱더 진해진다는 거에요. 뭔가 옛추억 같기도하면서... 언젠가 있었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손에 잡힐듯 하지만 

연기처럼 사라지는 기분..


그리고 그럴때마다 느껴지는 크나큰 상실감.. 마음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기분.

뒤이어,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는 후회와 자책의 시간이 덮쳐오고. 

급우울모드발동. 거울을 보면서 이상한 표정짓기놀이 시작.

그것도 따분해지면 맛있는거 닥치는데로 찾아먹기...

그래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무언가.. 소중한것을.. 아련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을.. 잃어버렸다는 것.


그나마..떠오르는 이미지는 석양이진 바닷가 붉으스름한 하늘아래 가족도 아닌 본적도 없는 친근한 여자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다를 올려다보고 있고. 동양풍의 가옥에 매화꽃이 꽂아져있는 단아한 책상. 그리고 거기에 풍겨오는 

어지러울 정도의 매화향기...어딘가에서 울려오는 가야금같은 동양악기의 선율..가옥.. 처음보는 사람이지만 왠지 친근한 

기분이 드는 사람들과 오순도순 모여있는데 왠지 그들이 낮설지가 않다.


뭘까요?네 이게 대체 뭔가요? 영화를 너무 많이본 부작용인가요? 아니면 우울증증상이 격는 흔한 망상증인가요?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잃어버려서 가슴이 아파요. 뭘 잃어버린거죠?

저는 일이 끝나면 만날 친구도 딱히 없고(만나도 그렇게 친해지기 힘든편)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적도 없고, 만나야한다면 가면을 쓰고 일반적인

상황에 걸맞은 웃음이나 지으면서 그런저런 얘기나하다가 적당히 헤어질 시간에 헤어지는... 흔히 말하는 아싸(아웃싸이더) 기질이 다분한 사람인데.


무언가를 이렇게 갈망하고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 이미지가 사람이라니?..


무엇이 잘못 됬는지 이제는 알 수 조차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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