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 영어 선생을 마주친 다음 날부터 거짓말처럼 괴롭힘이 사라졌다. 쉬는 시간마다 샌드백이 필요하다며 나를 복도로 불러내곤 했던 무리들은 더 이상 내 눈 앞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의아했다. 내가 아는 그들은 선생이 몇 마디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지루한 학교 생활의 낙을 쉽사리 포기할만큼 착실한 학생도 아니었고, 하물며 벌점을 먹인다거나, 부모님을 모셔오라는 둥의 이야기는 협박은 통하지도 않을 영악한 아이들이었다. 몇 번의 쉬는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종소리가 울릴 때마다 긴장하곤 했으나 별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의 생활을 장악하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다름 아닌 그였다. 그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나는 나의 품에 파고들었다 웃으며 거리를 두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농담이라며 미소를 짓는 그의 입가는 그린 것처럼 어색했다. 그 가느다랗게 뜬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할 뿐인 일진들보다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선생 쪽이 더 무섭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그 날 하교길에서도 아이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 그럼 수업은 여기까지 할까요? 아, 그리고 xx 학생은 방과 후에 상담실에서 개인적으로 좀 봤으면 좋겠네요. "
며칠 뒤, 영어 수업이 끝나고 그는 나의 이름을 호명했다. 그의 말에 수 십 개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남의 일에 관해 떠들기를 좋아하는 몇몇이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개인적으로라. 짐작가는 일은 단 하나 뿐이었다. 유독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나는 선고를 기다리는 어린 양과 같았다. 그의 입에서 또 어떤 예상 밖의 말이 튀어나올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마지막 교시가 끝났을 때 나는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저 잠시 질렸을 뿐이었던건가, 싶어 그들 앞에 섰을 때 무리의 우두머리가 나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 왔습니까? ...그래도 노크는 해주지 그러셨습니까? "
"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 왜, 당신이. 우스웠어요?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 웃겼냐고요! 씨x . 어떻게 선생이 ... "
" 들으셨나보군요. "
아무렇지 않게 나를 마주하는 그에게서 나는 공포를 느꼈다. 아이들의 말은 이러했다. 괴롭히던 아이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지루해하던 차에 우연히 옥상에서 그를 만났다고 했다. 다른 꼰대들과는 다르게 말이 잘 통하는데다가, 문제아인 그들을 스스럼없이 대했단다. 그러던 차에 그의 말 한 마디가 그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 반응이 재밌는 학생이라면 하나 알고 있어요.' 그 말은 그들의 관심을 나에게 돌리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괴롭힘의 이유라는 건 적당한 구실을 붙이면 그만이었으니까. 그가 아무런 생각없이 그런 말을 했을까? 아니라면 그 의도는 뭐지? 나는 발치가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여태껏 타인을 향한 나의 주된 감정은 불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 내가 느낀 감정은 그야말로 공포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는 포식자였고, 검은 속내를 감추고 다가서는 것에 익숙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휩싸인 나에게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안경을 벗어 다리를 접고는 천천히 나에게로 손을 뻗었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괴롭힘은 아이들의 것과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어른스럽고
더러우면서
잔인했다.
" 그저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당신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 아이들과 이해가 맞아 떨어진 거고. 그런데 생각만큼 잘 풀리진 않았네요. 당신은 마지막까지 내게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고, 그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비밀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를 악물고 버티는 모습은 다른 의미에서 ... "
말하지마. 더 이상 말하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의 손은 나의 눈을 가리웠고,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 흥분 되더군요. 뭐든 혼자서 알아서 하는 대단한 xx 학생. 그럼 이 다음은 어떻게 할 겁니까? "
들릴 리 없는 악의적인 웃음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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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건 대충 거르고, 얼추...통수는 이런 거..같은 느낌으로....자기 전에...횡설수설...
라면 끓여주신다는 분들이 많아서 행복했어요. 톨비쉬 쌤 망상하면서 행복했어요. ㅎㅅㅎ...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