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사랑과 전쟁 4
게시물ID : freeboard_111821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싱
추천 : 0
조회수 : 45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1 21:21:43

13타버린 가슴

 

타이밍이 조금 바꼈지만그녀가 한국에 가기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뉴질랜드에 처음 여행와서 알게 된 그녀의 친구 J양과 있었던 일화이다. 내가 얘기했듯이 이 여자도 참 정신병이 심각한 여자이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녀의 썸남이었던 D형과 함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사기게 되었고 이 형 마음고생 참 많이 했다. 옆에서 보기만해도 불쌍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나와 큰 문제는 없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나랑 그녀가 연애할 때의 일이다. J양의 생일날이 몇 일 남지 안았을 때이다. 남자친구인 D형은 깜짝 생일 파티를 해주기 위해 J양 몰래 J양의 친구 10여명에게 카톡을 하였다. 몇 일 후에 J양 생일인데 생일파티 같이 하자고 연락을 한 것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생일파티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일한 사람은 그녀? ㅋㅋㅋㅋ 유유상종이라고 인간성 더럽고 인간관계 씹쓰레기 인간 말종끼리 친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는 D형과 훨씬 친했고 1년반동안 같이 살았었기 때문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적지 않겠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는 이 둘이 헤어진 이후이다. 1~2년 동안 그녀와 J양은 연락 한번 주고 받은 적 없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고 연락처를 서로 주고 받았다. 그래서 내가 분명히 이야기 하였다. J랑 만나는 거 내키지 않는다, 만나지 말아라 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날 밤 J양과 오랜만에 늑여에서 소주 한잔 하겠다고 나에게 물었다. 안된다고 하였지만 그녀는 싸움을 걸어왔고 어쩔 수 없이 다녀오라고 하였다. 그녀의 핸드폰 배터리는 대략 10% 정도였다.

10시경 나에게 아이를 맡기고 차를 가지고 나갔다. 뭐 적당히 먹겠지 싶어서 차 가지고 가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았다. 11시경 전화를 했는데 약간 취해있었다. 11시 반경 전화를 걸었더니 배터리가 얼마 없다고 하였다. 12시경 전화를 걸었는데 핸드폰이 꺼져있었고 J양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늑여는 그때 당시 평일엔 1시경 문을 닫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1시 반이 되었는데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전화는 안되었다. 너무 걱정이 된 나머지 지후는 처남에게 부탁을 하고 플렛 친구를 깨워 늑여로 출발하였다. 도착 하였을 때는 closing 중이었고 차는 주차장에 있었다. 차에 가보니 잠겨져 있었고 술집 안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순간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분명히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사장님과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남자 두 명과 함께 나갔다고 했다. 이게 무슨 좆 같은 일인가 싶었다. 아마도 너무 취해서 집에 데려다주러 갔나 싶어서 다시 집으로 가려는데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혹시 이 차 키가 내꺼냐고 물어보셨다. 그녀는 차 키를 술집바닥에 흘릴정도로 만취 상태였던 것이다. 차 키를 받아서 운전을 해 집에 돌아왔다. 자고 있는 지후를 차에 태우고 다시 술집에 가서 여쭈어보았더니 노래방가는 것 같아 보인다고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노쇼에 있는 노래방은 다 가보았다. 브라운스베이, 올블랙스, 글랜필드까지 다 가보았는데 닫았거나 그 곳엔 없었다. 분명 시티로 갔을 것 같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D형에게 전화를 걸어 J양의 집 주소를 물어보았다. 다짜고짜 새벽 4시가 다되어서 J양의 집에 가서 초인종을 마구 눌러댔고 J양의 오빠가 나와서 J양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였다.

답답한 마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오클랜드 시티에 있는 모든 노래방에 전화를 걸기 시작하였다. 이 때 J양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우리 어떻해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것이었다. 진심 머리가 하얘지며 너무 답답했다. 어디냐고 물어봤더니 알아서 가겠다며 장소를 알려주지 않았다. 계속 어디냐고 물어보았는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무슨일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우리 어떻게해.. 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지금 데리러 가겠다는 말에는 알아서 택시를 타고 가겠다며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어디냐고.. 소리를 질렀는데.. J양이 하는 말이 정말 나를 터지게 만들었다. “오빠가 그런 식으로 하면 얘 못 찾아. 얘기 안해줄꺼야.” 라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 긴 전선과 사시미 칼 죽도를 챙겨 들고 우선 시티로 향하였다. 이때 지후는 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이 년 잡히면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오클랜드 시티까지 7분만에 도착하였다. 우선 다운타운 노래방부터 하나 하나하나 들어가보려했는데 J양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하지만 또 다시 나를 화나게 하는 말뿐이었다. 찾고 싶으면 얌전히 굴라는 말이건 정말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결국 다운타운 화이트레이디 옆 벤치에서 누워있는 두 명의 여자를 발견하였다. 그녀는 땅바닥에 누워있었고, J양은 벤치에 앉아있었다. 역시나 그녀는 자신의 옷 위에 토를 한 상태였다

J양을 보자마자 쌍욕을 하였다. 미친듯이 욕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J양 남친이라며 그만하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너도 같이 죽고 싶냐고 쌍욕을 하였는데 이녀석이 어려서 그런지 아무말 못하고 듣기만 했다. 여튼 5분간 실컷 욕을 퍼부은 다음 그녀를 일으켜서 차에 태웠다. 아 이 때 옷에 묻은 토를 좀 털어내고 차에 태웠어야하는데집에 도착하고 나니 지후, 카시트 그리고 차 의자에 토가 묻어 있었다.

아이를 먼저 데리고 올라가서 대충 씻긴 후 옷을 갈아 입히고 재운 후에 다시 차에 내려왔다. 이젠 그녀를 방에 데리고 가야 할 상황.. 하지만 나와 만나면서 단 한 순간도 나보다 가벼웠던 적이 없던 그녀는 역시나 엄청나게 무거웠다. 대충 70~80키로 사이였다. 토가 묻은 잠바를 벗기고 그녀를 부축해서 안방 화장실에 데려갔다. 화장실 바닥에 대충 눕혀 두고 다시 차에 내려가 차 청소를 하였다. 다시 화장실에 올라가서 그녀를 씻겨야만 했다. 근데 이 미친년이 토 묻은 상태로 침대에서 쳐 자고 있는게 아닌가ㅎ ㅏ시발 지후 봤더니 지후 얼굴이랑 옷, 침대에 토 범벅이다다시 그녀를 화장실에 데려다 놓고 지후를 씻겼다

그녀의 옷을 하나 하나 벗기고 샤워를 싯기려하는데 기분이 찝찝하여 속옷과 그녀의 질을 보았더니 100%.... 손가락을 넣어 확인을 해보았는데 이건 분명 정액이었고, 역겨웠지만 속옷 냄새를 맡아보았더니 정액 냄새였다.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고 화가 나고 속이 상했었다. 일단은 모든 옷들과 속옷을 봉지에 담에 묶어두었고 그녀의 질을 휴지로 닦아 지퍼백에 넣었다. 잘 씻기고 침대에 눕힌 후 잠을 청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해가 떠버렸고 뜬눈으로 밤을 샜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 9시경 지후가 일어났고 아침을 먹인 후 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조금 지나고 그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나왔고 무슨 일이 있었냐며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나는 되물어보았다. “너 혹시 어제.. 딴 남자랑 무슨 일 있었어?” … 그녀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너 어제 모르는 남자랑…” 그녀는 대답하기 힘들었는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였다. 무슨 일이든 할테니 용서해 달라고다시는 술마시러 나가지 않겠다며 나에게 사과하였다.

그 날 밤 경찰 쪽에서 일하는 동생을 불러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어떤 식으로 진행하면 되는지 절차에 대해 물어 보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에게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한 달이 지난 후 봉투에 담아놨던 옷들을 다 빨아버렸다. 하룻밤의 실수 인데.. 다시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할 것이고 미안해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14나의 실수

 

그녀의 실수 이후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미안해 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고 나만 조용히 있으면 지워질 것 같아서 그녀에게 오히려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그녀가 한국에 7번째 아주머니의 선행을 막기 위해 한국에 갔을 때이다.

구속하는 그녀가 좋지 않았고 그렇다고 나와 속궁합도 잘 맞지도 않았다. 밖에도 못나가게 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섹스를 한적도 몇 번 없었다. 사귈 때부터 일주일에 1~2번 정도 밖에 안 했었다. 근데 이 시기에는 한 달에 한번? 두번? ㅋㅋㅋ 나는 좀 성욕이 왕성해서 그런지 일주일에 5번정도는….. 하고싶었.. ㅋㅋㅋㅋ 그렇다고 어쩌다가 한번 하게 되어도 좋지도 않았다. 솔직히 남자들은 모두 공감할 것 같다. 아무리 와이프라고 해도 70키로가 넘어가는 여자랑 하고 싶나…? ? 그래? 하고싶어? 그래서 난 보통 혼자 해결하곤 했다. 2728살에 와이프가 있는데 혼자 야동보는게 얼마나 기분이 좆같은지 혹시 알까? 그거 안해본사람은 정말 모른다. 얼마나 기분이 좆같은지.. 모를 거다.

그녀가 한국에 갔을 때 자유가 너무나도 좋았다. 열심히 놀았다. 여자를 만날 생각은 없었다. 근데 어쩌다 보니 여자를 만나게 되었고 여러 번 성관계를 하게 되었다. 몇 명인지, 누구였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나와 놀았던 그 여성분들께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다.

그래 나 바람폈다. 지후가 태어난 이전엔 이유가 있어서 만났고, 그 때는 아이가 있어서 헤어질 수 없었다. 어떤 이유로도 내 실수는 정당화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평생 70키로가 넘는 여자랑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다. 뭐 다이어트 안해봤겠어? ㅋㅋㅋ 이 여자 참 독특한 여자다. 3일 후부터 다이어트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후 다이어트 직전까지 죽어라고 쳐먹는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다이어트해서 다이어트 3일전 몸무게로 돌아간다. 그리곤 다이어트 GG. 대단한 여자다. ㅋㅋㅋㅋㅋㅋ 여튼 그녀의 생활습관, 식습관은 나랑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돼지새끼마냥 게으르고 추잡하다.

 

15졸업

 

201211월 마지막 final exam이 끝났다. 몇 달 후 졸업이 확정되었고 양가 부모님들께 알렸다. 물론 전화는 3. 이제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모두들 축하해 주셨고 뉴질랜드를 정리하고 20133월초에 한국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였다.

이제 그녀와 7번째 아주머니의 관계, 그분과 친어머니와의 관계를 좀 얘기해야겠다. 그녀와 동생들은 7번째 아주머니를 미친년이라 불렀다. 7번째 아주머니는 그분과 그분의 자식들간의 관계를 어떻게든 나쁘게 만들어 보려고 이간질도 많이 했다. 앞에서는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뒤에서는 애들 안좋은 면을 얘기하곤 했다. 그리고 사치가 굉장히 심했다. 사업상 두분께선 해외출장이 잦았다. 그럴 때마다 몇백만원 혹은 몇천만원짜리 가방을 사재꼈으며 구두 화장품도 최고급이 아니면 안쓸 정도였다. 화장품 세트만 몇백만원을 호가하는 제품만 고집했다. 그분들께서 로토루아에서 지내실 때 간간히 그녀와 처제가 집에 간간히 가곤 했다. 그럴 때 마다 새로 산 가방, 구두, 화장품등을 침대 밑에 숨겨두거나 창고에 넣어뒀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안을 뒤지며 하나하나 다 찾아냈고, 트집을 잡아 지랄하기도 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번 돈으로 그렇게 헤프게 쓰고 다니는게 싫었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참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찌됐건 그분의 인생이고 7번째 아주머니의 인생이다. 돈을 어떻게 쓰던 그분들 마음인데 지가 왜 지랄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성격 독특하다. 항상 7번째 아주머니 얘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그녀의 외아들인 T군 이야기도 했다. 절대 상속 못받게 할 것이며, 7번째 아주머니에게 상속을 많이 해주면 어떡하냐며 걱정을 하였다.

T군에겐 아무런 악감정이 없다. 오히려 불쌍하다. 23살 때 한국 신천에서 그녀와 T군 나 이렇게 셋이서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녀는 참 돈을 좋아한다. 대화내용을 적고 싶지만 T군에게 다시 상처를 줄 것 같아 쓰지 않겠다. 그녀는 친구를 위해 10불 쓰는 것도 아까워하는 여자다. 남이 도움을 청하면 나 몰라라 하면서 정작 자신이 필요할 땐 어떻게든 도움을 받아낸다. 그 후 보상은 전혀 없다. 7 Gold street 에서 이사를 나올 때 집 청소를 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ACG에서 알고 지냈던 동생들 여럿을 불러서 같이 청소를 하였다. 2층짜리 집이었고, 건물 외벽 청소를 하는데 너무나도 고생을 많이들 하였다. 대략 6시간정도 같이 청소를 하였다. 그래서 나는 밥을 사주고 현금으로 100불씩 나누어 주려고 하였는데 그녀는 화를 내며 쓸데없이 돈 낭비 하지 말라며 나에게 반대를 하였다. 결국은 내가 몰래 돈을 주어 고마움을 표현하였다. 물론 이 동생들은 한 달에 4번이상 우리 집에 놀러 와서 같이 술 먹고 놀고 수다 떨고 여행도 같이 갔었던 사이이다. 그런데도 수고비 주는 것을 아까워했다. ‘내 친구가 아니잖아라고 말을 했었다ㅋㅋㅋ 진심 어마어마한 ㅆ년이다.

그분과 친어머니의 관계 또한 최악이다. 그녀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후 로토루아 그분 집에 갔을 때의 대화이다. 그분은 이제 채씨 가족이 되었으니 룰을 지켜달라고 하셨다. 절대 생모를 만나지 말라고 하셨다. 그녀의 생모를 만나거나 연락을 하고 지내면 연을 끊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에도 간간히 생모 이야기가 나왔었고 절대 용서를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친어머니께서 다 버리고 중국으로 가버리셨을 때 자식들에게 물어 보았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안아 다시 붙잡으러 중국에 가셨는데 결국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 오셨다고 한다. 그때 한창 싸스가 유행이어서 목숨을 걸고 붙잡으러 갔는데 만나지도 못했다며 울분을 토해내셨다. 고작 그거 때문에 평생 미워하고 지금까지도 증오하는 그분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친어머니께서는 미움 다 내려놓으시고 새 인생 정말 행복하게 지내시는데 그분은 아직도 과거에 갇혀 사시는 게 안쓰러울 정도였다.

뉴질랜드의 가구들과 차량, 팔 수 있는 모든 물건은 다 팔거나 친어머니께 드렸고 대략 4만불 정도를 챙겼다. , 맞다 그녀가 임신했을 때 그분께서 Toyota Rav4 2010년 새 차를 사주셨었다. ㅋㅋㅋ 그 차도 중고로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고 한국에 들고 왔었다. 이렇게 뉴질랜드 모든 정리를 하고 한국으로 출발 할 때엔 아무런 불안감이 없었다그 때 까진몰랐다.. 이렇게 그녀와 내가 멀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16깨어져버린 꿈

 

뉴질랜드에서 떠나올 때 서로 한국 결혼 풍습이나 예법 등을 찾아보며 공부하였었다. 너무나도 복잡하고 정식으로 하게 되면 불필요한 비용도 너무 많이 나오고 복잡했다. 그녀와 나는 이것 저것 알아보다가 일단 우리끼리 얘기해서 결정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를 했고 별 생각 없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우리 부모님께서는 방배동에 40평정도되는 아파트를 전세로 구해주셨다. 물론 내 명의였다.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 부모님 댁에 10일 정도 지냈었다. 우리도 많이 불편했지만 우리 부모님께서도 많이 불편해하셨다. 나와 떨어져서 산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느 날 띡 나타나서 같이 지내니 서로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

부모님 댁에서 잠시 지낼 때 그분과 7번째 아주머니께서도 한국에 들어오셨다. 우리의 결혼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우선 집과 차는 우리 부모님께서 해주셨으니 혼수는 상대편이 해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생겼다. 예물 예단 등 선물이 문제였다. 우리 집에서는 5억 정도를 들여서 준비를 해주셨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혼수만 하겠다는 생각을 밝혔다. 혼수는 6,500만원 어치를 사왔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서운하시다는 표현을 하셨고 결국 우리의 결혼식은 파토가 났다. 이 때부터 우리의 결혼생활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싸우기 시작했고 우리 부모님이 맞네 니네가 틀렸네 하며 부모님을 걸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맞지 않는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양가 60명씩 불러서 조촐하게 하기를 원하셨고 그분께서는 300명 정도를 부르겠다고 하셨다. 결혼비용은 아버지께서 내시겠다고 하셨는데 300명을 부르겟덴다. ㅋㅋㅋㅋ 양아치새끼 ㅋㅋ 그리고 예물 대신 현물로 하기로 하였는데 5000만원을 받고 2500을 돌려주겠다고 얘기 했더니 그럼 그냥 2500만 주겠다고 했다. 현금이 왔다 갔다 하는 의미를 모르나보다. 예단은 우리 친척들 챙길 필요없이 어머니께 코트 가방 보석세트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거 해봐야 5000만원이면 떡을 친다. 그분도 30여년전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셨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양아치 같은 발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친어머니께서 예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다. 어머님쪽에는 300명 정도 왔었는데 그분 인간관계가 좋지 않아서 반도 못 채웠다고 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인맥이 없어서 60명만 하기로 한건 줄 착각했나보다. 아버지 위치가 있다 보니 사람들 부르다보면 수백명이 올 것이고 그 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조촐히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분은 아들 하나 있는 걸로 장사를 해먹냐고, 아들이 변호사나 의사도 아닌데 무슨 선물을 원하냐고 말씀하시며 나와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는 발언을 쉽게 했다. 뭐 맞는 말이긴한데그분께서는 예전에 나를 불러 앉혀놓으시곤 5억짜리 통장 여러 개를 보여주시며 돈으로 날 무시하시더니 이제 예물 예단 꼴랑 7500만원정도가 아깝다고 결혼 못 시키겠다고 하셨다. 뭐야 돈 많다고 자랑할 땐 언제고 꼴랑 7500만원 해달라는데 그게 아깝다고 딸 결혼식을 파토내버리셨다. 우리 부모님께선 그분이 돈이 없거나 중산층 이하였다면 이런 선물을 바라지도 않으셨다. 돈 많다고 자랑할 땐 언제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뉴질랜드에서 가져온 돈 중에 NZD 30,000을 드리며 말씀 드렸다. 아버님 이 돈 보태서 저희 결혼식 하게 해주세요. 그 말씀을 드린 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집도 이정도 했으면 한국 결혼 풍습으론 저희 부모님께 선물을 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도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누가 이런 집 해달라고 했냐고 반문하셨다. 아마도 반지하 또는 10평짜리 원룸에서 시작하기를 원하셨나 보다.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양반이 꼴랑 7500만원이 아까워서 이 지랄 하는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5000만원어치 선물을 하면 우리집에서도 그녀에게 3천만원 정도는 해주겠다고도 말씀하셨다. 하지만 대화는 결국 끝이 났다. 결론은 예물예단 할 필요 없이 결혼은 안 하기로하였다.

며칠 후 그분께서는 우리가 드렸던 NZD 30,000을 그냥 들고 뉴질랜드로 가버렸다. 아무 말 없이어떻게 하겠다는 말도 없었고 돌려주지도 않고.. 그냥 가져가버렸다. 아직도 못 받았다 ㅋㅋㅋ 이유는 사줬던 차 팔았으니 이제 다시 돌려받겠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이 딴 새끼가 사업을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ㅋㅋㅋㅋ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