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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6
게시물ID : freeboard_111821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싱
추천 : 0
조회수 : 64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1 21:23:00

21시궁창 집안

 

201412일부터 로토루아에 위치한 그분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원래의 계획은3~4개월정도 로토루아 공장에서 일을 배운 후 오클랜드에 올라가서 나와 그녀의 회사를 차린 후 그곳에서 일하는 것 이었다. 물론 그 이후엔 우리 부모님께서 집을 사주시기로 되어있었다.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갔다. 직원들과 쉽게 가까워졌다. 물론 그분 뒷땅까면서 친해짐ㅋㅋㅋㅋㅋ 모두다 50~60대 이셨다. 그래도 뒷땅은 좋아하시더라 ㅋㅋㅋ 그리고 그분께서는 여전히 지후 앞에서 담배를 편하게 태우셨다. 얼마 후 그녀가 둘째 임신을 했는데 역시나 임산부가 있던 말던 사무실에서 그냥 담배 태워댔다. 정신병자 ㅋㅋㅋ 글케 술담배쳐먹고 암까지 걸렸던 양반이 지 딸 임신 중인데 그냥 담배펴댔다. 지 손주 앞에서도 그냥 핀다. 그분 댁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지후가 있던 없던 집안에서 담배를 태우시는 건 여전했다. 좋았던 것은 그분께서 호주에도 똑 같은 사업을 하고 계셔서 출장이 잦으셨다. 한 달에 3주정도는 내 눈에 안보이셨다.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었다. 그 곳은 전쟁터였고, 똥통에서 허우적 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업계는 믿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악취가 나는 곳이었다. 배신에 배신을 하고 돈을 따라 사람이 움직이고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가차없이 버려버리는 순수하지 못한 곳이었다. 그분께서는 10년이 넘게 같은 업종에서 사업을 하셨다. 관련종사자만 200명은 될 것 같다. 10년을 넘게 일을 하셨는데 그 회사에서 5년이상 일한사람은 단 한 명이고 나머지는 그분이 싫어서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인 K사로 이직하였다. 사업 파트너는 역시나 단 한 명. 나머지는 다 K사에서 일을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회사 대 회사는 1:1 이지만 머릿수로 따지면 1:10 정도??? ㅋㅋㅋ 그리고 그분의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회사에 대한 royalty가 전혀 없다. K사에서 돈 더 줄게 라고 offer를 주면 바로 가버린다. 내가 10개월 일하면서 K사로 넘어간 직원 수만 4명이다. ㅋㅋㅋㅋㅋㅋ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분께서는 참 코트를 좋아하신다. 뻑하면 소송 질이다. 한국에는 A/S 센터를 운영했는데 그 곳 사장이 돈 먹고 쨌다 ㅋㅋㅋ 글구나서 K사에서 일하신다. 뉴질랜드에서는 K사와 소송 질이다. 알파카 수입하는 페루에 있는 직원과도 소송 중이다. 물론 호주에서도 소송질 ㅋㅋㅋ 이사람 참 피곤하게 산다. 그리고 몇 달 후엔 나랑도 법적 싸움 ㅋㅋㅋㅋ 이 정도면 어떤 식으로 사업하는지 대충 설명이 된 것 같다. 어느 나라에서 사업을 하든 개처럼 짖어대는 인간이다. 어느 나라든 그분 편은 없었다. 사업 파트너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그분을 쉽게 떠났다. 그분께서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다 일과 관련된 사람밖에 없다. 그러니 일 생각 하지 않고 간단히 소주한잔 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항상 일 이야기이고 항상 술이다. 담배는 끊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다. 식사도 배고프면 드시고 배안고프시면 안드신다. 그 뜻은 그분이 배고플때까지 직원들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ㅋㅋㅋ 이새끼 지 배 안고프면 밥 안준닼ㅋㅋㅋㅋㅋ 배려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가차없이 잘라버리고 소송 걸어버린다. 그러니 무서워서 누가 옆에 있겠나믿음이 가지않는 사람인데딸년도 똑같다. 뒤가 구리다. 항상. 뒤가 구려.

하고 싶은 말은 수없이 많지만 그냥 넘어가겠다. 나중에 욕 한 바가지 더 할 예정이다. 아니 두 바가지 정도는 더 할거다. 여튼 별 문제 없이 오클랜드에 올라가게 되었다. 잠시 머문 곳은 타카푸나였고 회사는 알바니에 차렸다. 바쁠 때는 일주일에 3번 당일치기로 로토루아에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타카푸나에 이사를 했을 때 메시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던 처남도 데려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 녀석 마약 중독은 문제이긴 하지만 그분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데리고 살았다. 역시나마약은 못 끊었었다. 뭐 집안일은 잘 도와주니 고마운 부분은 분명 있었다. 처남 데리고 살게 된지 2달 정도가 지났을 때, 이 녀석이 나에게 몰래 얘기했다. 나 학교 3fail해서 학교 짤렸어라고ㅋㅋㅋㅋ 마약쟁이 주제에 어딜 대학 졸업을 할라고 ㅋㅋㅋㅋ 그녀와 그분에게 알렸고 결국은 로토루아 공장에 강제 징용되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개나 소나 대학 졸업하는 줄 아나? 대학교는 죽어라고 공부하고 준비해야 졸업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녀석 하는 꼬라지 보면 남들 놀 때 같이 놀고 남들 공부할 때 떨핀다. 이런 말도 했다. 떨 피고 나서 공부하면 재미있다고…. 그래서 재미있게 공부하다가 대학교에서 짤렸냐. 고생했다. 그리고 처남이 처음에 대학 들어간 거는 물론 그분의 푸쉬가 있었지만 7번째 아주머니의 아들 T군에게 자리를 빼앗길까봐 그녀가 잘 타일러서 공부시킨거였다. ㅋㅋㅋㅋ 독한년 아주 그냥 유산 상속에 눈이 멀어 아무 것도 못보고 사는 여자다.

, 그리고 3월 정도에 임신한 것 같았는데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둘 째 갖자고 설득해서 가졌다. 2달동안 뉴질랜드에 돌아와서 다시 지내다보니.. 다시 사랑하기는 글러먹었구나 싶었다. 이년 성격이 어딜가겠어그래서 다시는 이혼 하자는 소리 안할 테니 둘째 갖자고 해서 가진거다. 그리고 임신했다는 사실을 그분에게 알렸을 때 그분이 그랬다. “너 이년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 임신을해? 일 안해?” 라고.. ㅋㅋㅋㅋ 축하는 못해줄망정.. 그딴 소리나 짖어댔다. 그럼 우리를 뭐 일꾼으로 써먹을라고 뉴질랜드에서 사업 물려준다고 했어? 정신병자새끼.. 당신 때문에 빡쳐서 내가 암 걸릴 뻔했다.

 

22첫 집 구매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실수한 선택이 집을 내 명의로 산 것이었다. 첫 번째 실수는 뉴질랜드로 다시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물론 지후한테 낚여서 왔지만이자식.. 나 없이도 잘 살면서 왜 같이 오자고해서.. 아무튼 5월달부터 내 친구 C군이 추천해주어서 매주 일요일 7~11시까지 볼링을 치러 다니게 되었다. 이 볼사모(볼링을 사랑하는 모임)가 나중에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 명의로 NZD50,000짜리 차도 사주었다. ? 임신 선물 겸 다시 잘해보자고 그녀 명의로 해주었다. 후회한다. 왜 사줬지??? 차를???? 내가??? 미쳐가지고이것도 내 명의로 해버렸어야 했다.

5~6월까지 매주 주말마다 집을 보러 다녔다. 적어도 50채는 가봤던 것 같다. 학군과 교통시설 편의시설, 나중에 팔았을 때를 생각해서 매우 꼼꼼하게 알아보았다. 결국 17 Laurel Oak Drive, Albany에 위치한 집을 경매로 NZD1,020,000에 구매하게 되었다. 물론 이돈은 100% 부모님의 돈이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구매를 하고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 나는 내 명의로 계약을 하려 했다. 그랬더니 그녀가 펄쩍 뛰면서 개지랄을 했다. 자신을 못 믿냐고.. 왜 공동명의로 안 해주냐고 미친년처럼 울부짖었다. 그래서 믿자.. 믿자.. 라고 내 자신을 타일러서 결국 공동명의로 집을 계약 하게 되었다. 이 때 시발 눈치 챘어야 했다. 그녀의 의도를 놓히고 말았다.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섹스가 하고싶었다. 그녀에게 졸랐다. 한번만 하자고. 그랬더니 옷 사주면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150불에 한번 하기로 얘기했다. 그전엔 그렇게 쉽게 오케이 한적 없으면서 돈준다니까 대준데.... 차라리 사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돈 내고 와이프랑 할 바엔 나가서 사먹는게 낫지. 안그래?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였는데그 이후론 나가서 사먹었다. 자주 사먹었다. 아주 ㅈㄴ게 사먹고다녔다. 매주 사먹었다. 여자들이 네일샾가는 거랑 똑 같은 마음으로 사먹고 다녔다. 어차피 같은 돈 나갈 거니 다른 곳에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잘못된 건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을 효율성 있게 사용한 것 같다. 전혀 미안하지가 않다. 하지만 윤락업소에 갔을 때마다 현자타임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때 마다 그녀가 미웠다. 어떻게보면 서로 윈윈아닌가? 어차피 내 돈 써야하는거 쓰는건 똑같고 그녀는 하고싶지 않으니까 뭐... 윈윈인 것 같다. 어느 날 내가 갑자기 섹스가 하고싶었다. 그녀에게 졸랐다. 한번만 하자고. 그랬더니 옷 사주면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150불에 한번 하기로 얘기했다. 그전엔 그렇게 쉽게 오케이 한적 없으면서 돈준다니까 대준데.... 차라리 사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돈 내고 와이프랑 할 바엔 나가서 사먹는게 낫지. 안그래? 한 달에 한번 할까 말까 였는데… 그 이후론 나가서 사먹었다. 존나 사먹었다. 아주 존나게 사먹고다녔다. 매주 사먹었다. 여자들이 네일샾가는 거랑 똑 같은 마음으로 사먹고 다녔다. 어차피 같은 돈 나갈 거니 다른 곳에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잘못된 건가?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을 효율성 있게 사용한 것 같다. 전혀 미안하지가 않다. 하지만 윤락업소에 갔을 때마다 현자타임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때 마다 그녀가 미웠다. 어떻게보면 서로 윈윈아닌가? 어차피 내 돈 써야하는거 쓰는건 똑같고 그녀는 하고싶지 않으니까 뭐... 윈윈인 것 같다.

72일 세틀을 한 후 이사하고 집 꾸미고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져갔다. 하지만 나는 큰 불만이 있었다. 그녀는 shareholder 100% 이고 나는 director 였다. 역시 회사 준다는 말은 개 뻥이었다. 회사 이름은 RNB Alpaca Ltd 였다. RNBRina and Ben 의 줄임말좀 창피한 이름이긴 한데 할게 없어서 그냥 저렇게 지어 버렸다아무튼 회사에서 나랑 일 얘기를 할 때 정말 대립이 많았다. 하나하나 일처리를 할 때마다 다퉜다. 집에서도 일 얘기를 하고 회사에서는 사적인 얘기를 했다. 나는 그게 정말 싫었다. 공과 사를 딱 구분해서 집에서는 사적인 얘기만 하고 회사에서는 공적인 얘기만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공과 사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얘기를 꺼냈다. 난 그게 정말 싫었다.

이 때의 하루 일과를 얘기 해야겠다. 아침에 일어나 나는 10시에 회사에 출근했다. 가끔 아주 가끔 더 일찍 출근하기도 했다. 그녀는 9시반에 지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10시에 출근했다. 2시간 후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커피를 마시고 뭐 어디 가고 싶으면 어디 가고좀 놀면서 일했다. 그래도 뭐 현상유지할 정도의 매출은 있었다. 그러다가 4~5시엔 알바니 쇼핑몰에 가서 커피 마시다가 5시쯤엔 지후 유치원 픽업하러 갔다. 물론 놀 심하게 놀았지만 할 일은 다 했다. 밀린일 없었고 새로운 거래처 뚫으러 다니기도 했고, 납품도 하러 가야했고, 퇴근 후에 미팅한적도 있고, 일주일에 최소 2번은 로토루아 당일치기 출장 다녀왔었다. 바쁠 땐 정말 바쁘고 한가할 땐 회사 안가도 괜찮았다. 뭐 내가 사장인데 어쩔 거야. 퇴근 후에 그녀는 저녁 먹고 안방에 올라가서 10시까지 잠만 쳐 잤다. 청소 한번 한적 없고 아이를 방치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더라. 그래 임산부니까 이해해준다고 쳐도 심각하게 움직이질 않았다. 저러다가 100키로 넘어갈까봐 많이 걱정했다. 같이 다니기 창피하자나씹돼지인데.. 처음에도 언급했다. 그녀는 나를 만난 이후로 나보다 가벼웠던 적이 단 한 순간도 없다. 참고로 나의 체중은 66~68키로 정도이다.

퇴근 후 나는 아이와 tv도 보고 레고 놀이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았다. 그리고 매일 밤 9시부터 30분씩 책을 읽어주었다. Tv를 틀어주곤 집 청소를 했다. 빨래도 널고 청소기도 돌리고 집 정리도 하고 아이 장난감 정리도 했다. 그 이후엔 같이 샤워를 했다. 지후가 태어난 이후로 한국에서 내가 출근할 때를 제외하고 거의 95%이상 나랑 같이 샤워했다. 생후 100일까지 내가 항상 지후 목욕시켰다. 단 한번도 그녀에게 나 귀찮으니 당신이 좀 해줘 라고 말해 본적이 없다. 그리곤 10시에 그녀에게 아이를 넘겨준다. 그럼 그녀는 아이를 재우고 방에서 안 나온다. 그녀는 집에 오면 안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퇴근하고 지후 픽업해서 집에 온 순간부터 그녀는 안 보인다. 둘째 임신했을 때 내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건 사실이다. 애가 둘이면 절대 내가 먼저 이혼하자는 얘기를 못할 것 같아서 둘째를 갖자고 했었다. 지후랑 떨어지기 싫어서, 지후가 편부모 밑에서 자라는 게 보기 싫어서 둘째를 갖자고 했다. 뉴질랜드에 돌아왔을 땐 지후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아무리 그녀가 싫고 그 집안이 막장 쓰레기였지만 내가 잘 참고 화내지 않고 양보하고 이해하려 했다. 오로지 지후를 위해서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었다. 지후를 위해 둘째를 갖자고 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절대 후회는 없다.

 

23꿀 알파카

 

그분께서 어떻게 돈을 버셨는지 간략하게 설명하겠다. 운이 많이 좋은 분이시다. 손가락질 받으며 오랫동안 사업하셨지만 한국과 중국 쇼핑객들이 호구짓을 잘 해주어 아직까지 회사가 굴러간다. 물론 내가 돈을 벌었던 것도 호구 짓을 해주신 여행객들이 계셨기에 가능했다. 알파카 카페트의 원가를 공개하겠다. 1.8m x 2.1m 크기가 medium size이다. 한 장이 들어오는 가격은 NZD600 정도이다. 이 가격은 물류배송비 + 환률 + GST포함 + 인건비 + 기타잡비 포함이 된 가격이다. NZD 600불이면 한화 50만원 정도이다. 이거 한국사람들한테 200만원에 팔아먹는다. 마진 400% ㅋㅋㅋㅋㅋ 근데 여기서 가이드, 여행사 에게 커미션을 준다. 좀 때이긴 한다. 그래도 한장 팔면 50만원 이상 남는다. ㅋㅋㅋ 아 물론, 여행객들이 살 때의 경우이다. 일반 리테일 샾에서 판매하는 금액은 대략 NZD1500 정도로 기억한다. 한국인 샾을 운영하시는 사장님들께는 950에도 팔았고 좀 착하고 많이 사주시는 분들께는 730~780불 정도에 거래하였었다. 리테일 샾에서 남겨먹는 돈도 어마어마하다. 한 장 팔면 최소 NZD500이 남는다. 다들 참고하고 알파카 카페트 구매하였으면 좋겠으나 그냥 사지마.

그분께서 이혼하시기 전에 친어머니와 함께 공xx 이라는 술집을 운영하셨다. 오클랜드 시티에서 만 18세 미만인 중 고등학생들이 가장 쉽게 술을 사먹을 수 있던 술집이었다. 생각해보면 이 때부터 범법자였네…… 몇 년 간 해서 돈 좀 벌었다고 했다. 당연히 잘 벌었겠지~ 법을 무시하는 양반인데 ㅋㅋㅋ 내가 장담하는데 이분 세금신고도 좆같이 했을 거다. 불법으로 캐쉬잡주고 어린애들 썼겠지 뭐. 아무튼 술집 운영하시다가 우연찮게 어떤 사람에게 알파카 카페트가 돈벌기 쉽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페루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카페트를 사왔다고 했다. 뭐 사기도 당하고 물에 젖어 썩어서 반 이상 버리기도 했고 뭐 어쩌구 저쩌구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알파카 카페트를 뉴질랜드에서 하던 사람은 키위였는데 그분이 알파카를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다고 했다. 결국 원래 하던 사람이 그만두게 되었고 뉴질랜드 전체에 알파카 카페트를 공급하게 되었다. 이게 2000년대 초반이라고 알고 있다. 어마어마하게 능력이 좋으셨나보다. 하지만 이때 빠짝 몇백만불 땡겨벌었고 지금은 점점 힘들어져서 현상유지나 겨우 하고 있다. 그리고 10년정도 파트너였던 K사의 사장과 틀어져서 대략 3~400만불의 손해를 입었다고 했다. 현재 코트 진행 중이며 내가 볼 땐 못이긴다 ㅋㅋㅋㅋ 증거부족으로 못 이긴다. 그리고 20136 5일 방송된 MBC 불만제로 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분의 사기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그분께선 회사 이름을 바꾸시고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아직도 장사 중이시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기자들이 좀 많은데 조만간 기사 실어달라고 글 써서 보내줘야겠다.

뭐 회사에 대해 자세히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사기치는 수법도 다양하고 세금 탈세, 현금 소득 신고 안하고 인보이스 없이 현금으로 커미션 주는 거는 그냥 당연한거고 내부거래도 하고 있고 지금 그분께선 IRD의 세무조사를 받고 계신 중인데 밥은 잘 먹고 다니나 모르겠다걱정된다. 괜히 쓰러지시는거 아닌가 싶어서.. 아 얼마전에 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받은 적도 있다. 회사 건들면 죽여 버린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나 이거 다 쓰고 갑자기 사라지면 그분이 해코지 한 거라고 알면 되겠다. 유서 써놓을 거야. 죽여바.

이제부터 모든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이혼에 관련된 일화를 적겠다. 청심환 먹고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너무너무 어마어마한 ㅆ년이다보니 깜짝 놀랄 수도 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게 참 다행이다. 몇 번 죽을라고 시도했는데 분하고 억울해서 못 죽었다.

 

24불청객

 

쓰다 보니 이거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써야겠다. 이왕 쓰기 시작한 거 다 털어버려야겠다.

부모님께서 집을 사주시고 대략 10만불 정도 여유가 있었다. 원래는 차 파는 친구녀석에게 연락하여 GTR, C63, M3 정도를 사려고 했었다. 내가 직접 수입해서 사면 좀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지만 힘들게 사는 친구녀석 커미션이나 주려고 일부러 친구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혼자 다 쓰기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차피 내 돈이긴 했지만 사랑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척은 해야 했고 아들이랑 추억을 더 쌓고 싶었다. 또한 여행으로 우리의 사이가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쓸 까 고민을 하다가 하와이 여행을 선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결혼 파토 나기 전에는 이나라 저나라 참 많이 돌아다녔고 재미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감정이 돌아오지 않아 오래 전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7월 말 67일 일정으로 하와이 여행을 준비하고 거래처 모든 곳에 연락을 해두었었다. 1주일간 하와이로 휴가 갈 테니 우리회사 다른 부서에 전화라고 분명 연락을 다 돌렸었다. 그분께도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처제도 같이 데려가라고 하였다. .. 처제에겐 전혀 악감정이 없다. 하지만 2013년 처제가 우리집에서 생활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와 처제는 나를 개무시했고 빠듯한 생활에 도움이 되질 않았으며 고맙다는 표현 미안하다는 표현 한번 하지 않았던 아이이다. 분명 처제도 하와이에 같이 가고 싶으니 그분과 그녀에게 얘기를 했으니 데려가라는 이야기를 했겠지 싶다.

나 그녀 지후의 비행기와 힐튼호텔의 비용은 7000불 정도였다. 그중 호텔비가 3500불 정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인 실이었고, 1인 추가비용은 100불이였다. 총 호텔비용은 4000불 정도였으나 처제는 500불만 부담하였다. 그리고 하와이에 올 때 딸랑 1000불만 가져왔다. 조금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호텔비는 1/N 해야하는 것 아니였나…. 그리고 6일중에 4일은 쇼핑만 하였다. 그녀들이 미친듯이 쇼핑에 정신이 팔려 하루에 8시간 이상 돌아다닐 때, 나는 지후를 돌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처제는 나에게 2불짜리 물 한 통, 콜라한잔 사준 적이 없다. 모든 식비와 여행비용은 내가 지불하였으며 역시나 고마움이나 미안한 따위는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쇼핑보다는 여행간 나라를 느끼고 보고 즐기고 싶었으나 쇼핑 포함 여행경비 3만불을 지출하였지만 처제의 훼방으로 여행의 반을 관심도 없는 쇼핑에 끌려 다녀야만 했다.

6일중에 단 하룻밤.. 내가 부탁하여 아이를 재운 후 그녀와 나는 간단히 칵테일을 한잔 하러 나갔다 왔다. 그건 참 고마웠다. 뭐 재운 후에 나간거라.. 그닥 크게 고맙진 않았다. 유모차에 재워서 나갔어도 충분하게 즐겼을 테니 말이다. 여행 중간에 힐튼 타임쉐어를 구매하였다. USD 40,000를 주고 구매하여야 하는데 그 땐 현금이 모자라서 USD 10,000만 주고 나머지 USD 30,00010년 할부로 구매하였다. 이 타임쉐어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겠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내가 툴툴거려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였다. 그냥 버스 타고 투어하는 거였다. 역사적인 설명도 듣고, 진주만도 가보고 세계최대규모 파인애플 농장도 가보았다. 솔직히 나는 스노클링이나 스쿠버 같은 워터 스포츠를 즐기고 싶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처제가 아이를 보는 동안 두시간정도 그녀와 함께 간단한 워터 스포츠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뭐그녀들은 쇼핑이 좋다니싸우기 싫어서 억지로 끌려 다녔다. 지후랑 바다에서 놀고 싶었는데망할 쇼핑 중독자들

이 여행은 내 인생 최악의 여행 이였다. 제일 많은 돈을 썼지만 마음도 지치고 몸도 힘들었다. 과연 지후는 쇼핑을 따라다니고 싶었을까….? 이 여행은 나의 목적이나 의미에 크게 벗어난 여행이었다. 관계개선, 즐거운 추억만들기, 혼자 10만불을 다 써버리기엔 미안하니까 같이 즐기자고 갔던 여행이었는데.. 그냥 쇼핑만 하고 돌아왔다. , 처제가 1000불 다 써버려서 내 돈으로 쇼핑을 즐겼다. 그녀들의 이기심으로 나의 여행은 최악이 되었다. 적어도 돈이라도 1/N 했어야지날 그렇게 써 먹을 거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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