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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8
게시물ID : freeboard_11182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싱
추천 : 0
조회수 : 14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1 21:23:54

29허위신고

 

현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때 시각 대략 새벽 2시였다.그녀는 역시나 드라마를 보느라 잠을 자고 있지 않았나 보다. 화장실에 가서 대충 세수를하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그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 눈물이 터졌다. 이 전까지는 한번도 그녀에게 욕을 하거나 물리적으로 힘을 가했던 적은 없었다.그녀가 나에게 호주에서 잘못한 것은 단 한가지도 없었지만 그냥 그녀가 미웠고, 그분에게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당신 딸에게 쌍욕도 할 수 있고 죽고 싶을 만큼 괴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분에게 났던 화를 그녀에게 복수했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 그녀는 2층 계단 끝에 서있었고 나는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정말미안하다며 펑펑 울었다. 그분에게 화를 내던 욕을 하던 했어야 했는데 너에게 화풀이를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정말 많이 울었다. 그녀는 나를 뿌리치며 뒷걸음질 쳤지만 나는 다시기어가서 무릎꿇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솔직히 미안한건 미안하니까 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는 부모님얘기와 이혼 얘기를 꺼내었고 나의 기분은 많이 나빠지게 되었다. 그 때에도 그녀에게 욕설을 하거나 때리거나물리적으로 고통을 주거나 때리는 척을 하거나 협박을 하거나 벽을 치거나 무서운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단 한번도 그런 행동을 한적이 없다. 심하게 자존심을 짓밟는 말과 그분을 애비새끼 라고 칭하였다. 그녀도 많이 화가 났겠지.. 그래 이해한다. 거의 나의 일방적인 하소연, 분풀이에 가까운 대화였다. 그녀가 이혼 이야기를 꺼내면서 집 반을 달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부터 그녀에게 얘기를 하고 녹음기를 켰다. 나 녹음할꺼니까 말실수 하지마. 라고 이야기 한 후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참 후 그녀가 화장실을 가겠다고하였다. 하지만 얘기가 안 끝났으니까 문을 열고 볼일을 보라고 하였다.그러자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얘기를 하였고, 나는 뭐라고 신고할건지 들어나보자 라고이야기하였다. 내 앞에서 111에 전화를 하였고 경찰에게남편이 취했는데 화장실 문을 닫지 못하게 한다고 이야기 하였다. 경찰이 그녀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때렸냐고 물어보았고, 술은 어디서 누구랑 먹었으며 집엔 어떻게 왔냐고물어보았다. 그녀에겐 내가 기억이 하나도 없다고 얘기했지만 난 다 기억한다. 그녀가 경찰과 대화하는 내용을 다 들었으나 그녀는 사실 그대로 이야기 하였었다. 그래서 의미 없는 통화라고 생각하여서 담배를 피러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담배를피고 있는데 경찰차 3대가 왔다.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길래와이프가 이혼하여서 대화 중이었다고 말하였다. 그 상황에서 누가 calmdown 할 수 있냐고 따졌고, 추우니까 집에 들어가서 잠바를 가지고 나오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경찰은 나를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고, 내가 소리를조금 질렀더니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결국 그 짭새새끼가 수갑을 체우고 나를 차안에 구겨넣었다. 진심 개 어이없었다.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는 동안이것저것 나에게 물어보았고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욕설은 하긴 했지만 그녀에 대한 욕은 없었고 그분에대한 욕은 했다고 하였다. 때린적도 없고 그녀에게 위협을 가한적도 없다고 하였다. 독방에서 자고 일어나보니 아침 7시였다. 술 다 깼으니 집에 보내달라고 하였더니 경찰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분명 핸드폰을 가지고 오지 않았지만 경찰이 나에게 핸드폰과 충전기를 주었다. 경찰이 그녀에게 달라고했나보다. 오전 7시가 조금 지나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나오자마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이 시발년아, 남편 구치소에 넣으니까 행복하냐? 당장 나 픽업하러와.” 라고 소리 질렀더니 그녀는 아무 대답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곤10분 정도를 기다렸는데 경찰이 나보고 다시 들어오라고 하였다. 다시구치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에게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전화를 하였다고 말하였다.그랬더니 경찰이 나에게 police safety order를 모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당연히 들은 적도 없고 그게 뭔지 모른다고 하였다. 어제 새벽에경찰이 48시간동안 접근 금지 명령을 내렸는데 내가 그걸 무시하고 전화를 걸었기 때문에 family court에 가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전화해서 욕했다고 경찰에 다시 신고 한 것이었다.

솔직히 어떤 사람이라도 이 상황에서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부처님도 목탁 집어 던지실 것 같다.예수님도 십자가 던지실걸…… 아무튼 나는 정말 많은 생각을 하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너무 당황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다시독방에 갇혔고 10분간 곰곰이 생각하였다. 결국 경찰에게변호사를 요청한다고 이야기 하여 변호사 리스트를 받고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2시가되어 알바니 코트로 이송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녀가 경찰에게 진술 한 내용은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젯밤 내가 주먹으로 벽을 치고 바닥을 치면서 위협을 하였고, several times 폭행이 있었다고 거짓 진술을 하였다. Few도아니고 several? 7~8번 때렸다고? 상습 가정폭행이있었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더 심각한 것은 그날 아침 9시에변호사를 찾아가 17 Laurel Oak Drive에 있는 집에 가처분 신청을 했으며, 그녀 지분 100%였던 회사의 지분을 처제에게 모두 다 넘겼다는사실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계획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실수를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다 공감할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많이 맞고 살았다면 과연 페이스북에 아무말도 안했을까? 친어머니께말씀 안드렸을까? 주변에 친한 친구나 지인들에게 맞았다고 얘기 안했을까? 만약에라도 내가 단 한번이라도 그녀를 때렸다면 나는 진심 죽어도 마땅하다. 임산부인데내가 때렸다고? 한두번도 아니고 그렇게 여러 번을? 경찰에게거짓진술을 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 나를 무슨 정신병자인 것처럼 설명을 했었다.

허위신고경찰과 판사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맞았다는 증거도 없으면서.. 아무 증거도 없었으면서.. 내 말은 듣지 않았다…..

 

30재판

 

우선 나의 주장은 두 가지였다. 첫째, police safety order의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전화하여 욕을 하고 픽업오라고 한적은 있었으나 접촉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둘째, 단 한번도 그녀를 때리거나 위협한적은 없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고, 판사는 policesafety order를 설명했다는 경찰이 휴무이므로 나에게 그 경찰이 출근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 경찰이 오늘 오냐고 물어보았더니 다음주 수요일이나 되야 그 경찰이 올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럼 나는 수요일까지 독방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래서국선 변호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오늘은 잘못을 인정하고 풀려난 이후에 변호사를 선임하여 다시 재판을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결국 모든 죄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temporaryprotection oder 90일을 명령하였다. 90일동안 내 집에 갈 수 없으며, 그녀와 아이에게 접촉을 할 시, 이유불문하고 징역 6개월 이라고 하였다.

솔직히 너무 심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의 말을 일방적으로 믿어버리는 검사와 판사가 너무 하다는 생각을 하였고, 나는 police safety order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이렇게 까지 벼랑끝으로 몰아가는 그들이 너무나도 미웠다. 또한 경찰에 2번이나 신고한 그녀가 이해가 되질 않았었지만 며칠이 지난 후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코트에서 풀려난 후 제일 처음전화를 걸었던 지인이 있다. 2012년부터 알고 지냈던 내 생명의 은인 H군이다. 그 다음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부모님과의 대화는.. 적지 않겠다.H군은 바로 코트로 와서 나를 픽업해주었다. H군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필요한 짐을싸 놓으라고 부탁하였고, 짐을 받아 H군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너무 억울했다. 너무나도 억울했다. 억울해서 눈물밖에 안 났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후가 보고싶었다. H군의 집에서 48시간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지후 사진만 보았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물도 마실 수없고 담배를 필 힘도 없었다. 무언가를 먹기만 하면 토를 했고 아무것도 소화를 시킬 수 없었다. 배신감과 억울함이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처음부터 잘생각해 보려 했으나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3일째 되던 날, 친어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너무 죄송하다고.. 더 죄송하지만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부탁 드렸다. 어머님께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다 할 테니 기다리라고 하셨다. 하지만 별 다른 소득이 없었고, 그날밤 페이스북, 싸이월드, 내 핸드폰 안에 있는 모든 사진을한 장 한 장 지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2014년 사진을지우기 시작했다. 지후가 너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내가여기까지 버티며 살아온 이유는 단 하나, 지후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에서 였는데 더이상 지후를 볼 수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2013년 사진도 지웠다.20122011201020092008년까지.. 모두다 지웠다담벼락에 있는 글도 모두 다 지웠다. 싸이월드에있는 사진도 하나하나 지우기 시작했다. 사진첩을 통째로 지워버리면 지후를 볼 수 없었기에 한 장 한장 다 보고 댓글도 읽으며 지웠다. 그리고 내 핸드폰에 있는 사진도 한 장씩 지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걸 지우는데 걸린 시간은 14시간…. 14시간동안 지후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사진을 한 장씩 모두 지웠다.

지후의 사진을 지운 것은 더 이상사진을 보며 ㅄ처럼 울기만 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여서이다. 지후의 모든 사진을 지운 후.. 나는 방에서 걸어 나왔다.

 

31생명의 은인 H

 

4일째 되던 날, 변호사를 알아보기 시작하였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상담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담을 받을수 있었다. 대략적인 설명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취하려 하였다. 한국에서 부모님께서도 난리가 나셨다. 110만불 보내 준지 3달만에 모든 게 압류당하여 날아가게 생겼으니.. 어떤 사람이 멀쩡할수 있을까.. 나도 힘들었지만 부모님께서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일주일이 되었을 때 체중이 10키로정도 빠졌다.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고, 무엇 하나 하기가 힘이 들었다. 먹기만 하면 체하고 토하고 정신은멀쩡하지 않고.. 물도 마실 수 없었다. 하지만 H군은 매일 나에게 요리를 해 주었고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100% 나의편이 되어 같이 아이디어도 내고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하며 같이 고민하였다. 하루에 6시간 이상 대화했고 시간이 지나 나는 점점 활기를 되찾았다. 그가너무 고마웠다. 내가 손님이기 때문에 설거지도 못하게 했고 담배가 필요하면 가져다 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웠다. 평생 잊을 수 없는 내 은인이다.

며칠 후 로토루아의 직원에게서전화가 왔다. 축하한다는 전화였다. 딸 태어났다고 축하한다고전화가 왔다. 친어머님께 부탁드렸었다진통이 오면 연락달라고병원에 찾아가서 아이 낳고 내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오질 않았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기회가 없어져 버렸다.아이의 사진을 그 직원이 보내주었다그녀에게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며칠 후 어머니께서 뉴질랜드에오셨다. 그 때부터 차량을 장기렌트 하였다. 어머니를 공항에서만나고 식사를 한 후 바로 내 집에 갔다. 어머니를 내려드리고 멀리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얼마 안지나고 쫓겨나셨다. 그녀가 어머니께 경찰을부르기 전에 나가라고 했다고 했다. 내 집에서 나가라고.. 경찰에신고하겠다고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같이 지낼 숙소를 구하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어머니께서 집에 물건을 두고 오셨다고 하셔서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집에 도착하니 친어머니께서 와 계셨다. 역시나 친절하게 맞이하여 주셨고 나에게도 집으로들어오라고 하셨다. 너무나도 감사했다. 그녀와 나는 만나게되었고 다시 얘기를 하여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보고 결정하자고 하였다.

그녀는 어머니를 최대한 빨리 보내라고하였다. 3일 후 어머니를 보냈고 그 다음날 나는 다시 쫓겨났다.

그녀가 말했다. 이제 이건 내 집이니까 나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나가.

우리 부모님께서 사주신 100만불 짜리 집인데.. 이제 자신의 소유라며 나보고 나가라고했다. 결국 나는 다시 H군의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너무 화가 났지만, 너무 억울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저 지후에게 미안했다.

 

32복수의 이유

 

201311월에 그녀가 뉴질랜드에 몇 달간 간다고 하였을 때, 내가 그녀를 돌아오지 말라고 하였었다. 그냥 이대로 이혼하자고 하였었다. 그 때 그녀는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이혼을 하더라도나에게 뺏어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고, 오로지 지후만 데려갈 수 있었다. 이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고 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나를 엿먹이고싶어했다. 물론 우리 부모님께서도 이혼을 적극 찬성 하셨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까지도 자신의 복수극에넣어야만 했다. 그녀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마음을 바꾸어 뉴질랜드로 다시돌아가자고 하였을 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뉴질랜드는 여성의 천국이다. 그 말은 곧 남성의 지옥이다. 가정법이 죄다 여성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다. 남자에겐 선택권이 전혀 없다. 변호사 3명을 고용하였었다. 변호사 3명을모아놓고 미팅하면 한 시간에 NZD1500을 줘야 했다. 그래도정말 답이 없다. 이 정도로 여자에게 유리하게 되어있다. 그녀는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뉴질랜드에 다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든 복수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가자고 했을 때 바로 그러자고 했던 것이다.

월급을 다 뺏어간 이유도, 나에게 쓰는 돈이 아까운 이유도, 우리 부모님에게 막대했던 이유도다 똑같았다. 그분께서 나에게 좆같이 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분께서는 7번이나 여자를 바꿔댔던 분이다. 얼마나 잘 아시겠는가웬만한 변호사보다 더 잘 알 거다. 나를 구치소에 넣어두고, 내가 갇혀있을 때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막아놓고 자신은 변호사를 만나 내 집에 가처분신청을 하였다. 그 이후 자신의 집이라며 쫓아냈고, 차량도 내가 가져가려 했을 때, 자신의 명의이니 건들지 말고 꺼지라고 하였다. 그 차 내가 사준건데ㅎㅎ 잘해보자고.. 그녀 기분 풀어주려고…. 다시 행복해지자고.. 그녀가 원하는 차를 사줬는데너무했다 ㅎㅎ 그녀가 했던 이상한 행동들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일부러내가 화나서 실수를 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원치 않았던 술 때문에 기회를제공해줬고, 그녀는 이 기회를 놓히지 않았다. 바로 행동에옮겼고 모든게 다 성공적이었다. 오랫동안 계획했겠지.. 그녀는참 무서운 여자다. 그래도 애들 아빠인데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정말돈에 환장한 여자야미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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