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빼빼로데이.. 과연 '우정' 을 나누는 날일까?
게시물ID : sisa_1111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어훗
추천 : 3
조회수 : 324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04/11/11 23:21:28
 우리집은 초등학교앞 문방구이다. 빼빼로데이는 수년전부터 아이들을 술렁이게 만드는 이벤트였지만
 작년에 갑작스레 이전해와 비교도 안되게 급격히 빼빼로데이가 부상해버려 물건이 딸려 혼쭐을
 뺀 우리 가게는 올해 몇십만원어치의 빼빼로를 사다 놓고 '너무 많이 놨다' 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3일 전부터 아이들은 한개 두개 5천~ 만원 이상의 큰 통들이 빼빼로를 사모으면서
 '빼빼로데이날 가져갈께요' 하고 자기것들을 우리 가게에 맡겨 놓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부터 무섭게 몰아닥친 아이들은 물건이 너무 많이 남을거라는 걱정을 날려버리듯
 한명이 수만원어치를 사는 등 순식간에 동이 나버렸고, 하교시간에 빼빼로가 더 필요한
 아이들이 몰려들었으나 이미 우리 가게는 물론 근처의 다른 가게들, 선물매장들 역시 빼빼로가
 동이 나 수많은 아이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물건만 충분했다면 처음에 들여놓았던 만큼의 빼빼로를 더 팔 수 있을 정도...
 너무 많이 놨다고 생각했던 그 양이 수요의 절반밖에 채우지 못한 것이다. 


 어제인가 그저께 인터넷 소식에 났던 빼빼로로 만든 거대한 하트... 오늘 아이들은 실제로
 그만한 빼빼로 별이나 빼빼로 하트등을 여기저기 들고 다녔다. 

 
 과자회사의 상술에 나도 동참하여 우리집앞 초등생들에게 수십만원의 빼빼로를 팔아치웠다..
 라는 식상한 참회같은건 하지 않겠다. 초등생들이 수만원어치의 빼빼로를 사고 한명이 집에
 돌아갈 때 많이 받은 아이는 큰 쇼핑백을 우리집에서 사서 양손에 가득 담아 낑낑대며 가져가
 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이들이 무슨 돈을 저렇게 마구..' 이런 말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씁쓸했던 것은 빼빼로를 줄 아이도, 받을 아이도 없어 빼빼로를 사지도, 하교시에
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살펴본 결과 '웬만하면' 빼빼로 몇개는 다 받게 되어 있다. 한명이 워낙 빼빼로를
 많이 사고 또 그런 아이들이 많은 만큼 빼빼로는 학교에서 꼭 이성친구나 절친한 친구가
 아니고서라도 사이가 무척 나쁘거나 그렇지 않으면 한 아이가 반 전체 친구들에게 돌리고,
 또 다른 아이도 반에 돌리고 이런 식이 되어서 무난하게 몇개씩은 챙긴다. 

 그러나 그런 것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은 곧 '빼빼로 왕따'
 . 빼빼로 왕따는 곧 평소의 왕따다. 다른 아이들은 다 받는 빼빼로를 못받았다... 
 아무나 주는 빼빼로를 못받았다.... 그 아이는 학교 친구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실제로 그 아이들은 왕따인 것을 나도 잘 아는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라도
 다른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는 빼빼로도 없이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 보면 대충
 짐작이 틀리진 않을 것이다. 


 빼빼로는 과연 우정을 나누는 것일까. 오히려 '빼빼로' -> '우정' 이 아니라
 '노 빼빼로' -> '왕따' 의 의미가 더 커져버린 것 같다. 

 
 웬만하면 받을 수 있다. 이성친구, 절친한 친구등 특별한 이에게 준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는 초등학교에서 '못받는게 이상한' 것이 빼빼로가 되었다. 그리고 못받은 아이들은
 이상한 아이이다. 
 빼빼로는 '특별한 일부 친구들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주고 특별한 일부 왕따
 들에게만 주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중,고등학교 정도 들어가면 어떤지 모르겠다. 그때는 이성에 대한 감정이 더 커지고 그만큼
 조심스럽기 때문에 아직 빼빼로가 특별한 이에게만 준다는 변별력이 더 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직 남녀 아이들끼리도 서로 주먹다짐을 하며 싸우고 노는 초등학교에서는 
 빼빼로는 특별한 이성친구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철천지 원수가 아니면 반 친구들
 누구에게나 나눠주는 의미인 듯 하다. 

 
 어차피 아무에게나 주는 빼빼로는 그 의미도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 당연히 받을 것이라면
 내가 빼빼로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다지 대단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다만 받은 아이는 왕따는 아닐 것이다. 그런 표시일 뿐이다. 빼빼로가 특별한 이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못받은 아이들을 더 돋보이게 해버린 셈...

 
 특별한 일부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이젠 일부만 빼놓고 모두에게 줘야 하는 빼빼로가 되었으니
 아이들은 그만큼 더 많은 빼빼로를 사야 한다. 과자회사들은 입 찢어지게 생겼다. 나도 내년에
 큰맘먹고 엄청나게 많이 들여놔야 하겠다. 

 다만... 빼빼로의 의미가 그렇게 변질되면서 아이들, 아니 부모들의 쓸데없는 돈 소비는 그만큼
 늘어났고 정작 빼빼로는 왕따를 부각시키는 좋지않은 매개체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함을
 우리집앞 초등학생들을 보며 가져보았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