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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병자호란기의 전세계적 소빙하기
게시물ID : humorbest_111194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alvarez
추천 : 16
조회수 : 3959회
댓글수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8/23 22:01:46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19 11:4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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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병자호란 기간이 이 소빙하기안에 겹쳐있습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GnZ5&articleno=5756334
이 당시 지중해의 마르세이유항이 얼고 영국에서는 포도재배가 불가능했다. 불과 1도씨의 변화가 엄청난 결과를 낳은 것이다.
기후상황이 악화되자 가장 심했던 1650년을 전후해서는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의 농민반란인 프롱드의난(1648-1653), 영국의 청교도 혁명(1640-1660), 러시아의 스텐가라진의 난(1670-1671), 독일의 30년전쟁(1618-1648 ), 중국의 이자성의 난(1630)등이 그것이다.
 
히데요시 개인의 야욕으로만 치부되는 임진왜란도 이 소빙하기로 인한 흉작 및 민심이반과 결부되어 있을거란 설이 있습니다.
( 자료가 부족하여 증명은 못합니다 --; )
 
다만 임란이 7년씩이나 장기화되는데에는 이러한 전지구적 흉작으로 인한 보급상황 악화도 상당한 기여를 했을거라고 봅니다.
http://egloos.zum.com/Idealist/v/5855271
갑자기 전투 의지가 사라졌을까요? 아니면 선조의 전횡으로 의병들이 죄다 싸움할 가치를 못 느꼈을까요? 사실 이건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요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군량의 부족, 전염병의 확산 같은 일들이죠.
 
조선에 들어왔던 왜군 이외에 조선군이나 명나라 또한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야기 하겠지만 명군도 왜군이 남쪽으로 물러난 뒤 1593년 8월부터 본진을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합니다. 명군 내부에서 오랜 전쟁으로 전쟁 혐오증이 퍼져있던 가운데 1593년 가을의 대흉으로 인한 군량 부족도 심각한 원인이었죠.
 
식량 문제 때문에 조선은 명나라에 청량사를 파견해 군량을 원조해 달라는 이야기를 건내 봤습니다만 명나라도 요동 등지의 대흉년으로 원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달했으며 실제로 동지사로 파견된 허진의 보고에 따르면 흉년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명나라도 대흉, 조선도 대흉, 사실 일본도 작황은 불황이었습니다. 왜였을까요? 때마침 이때가 전 지구적 소빙기 현상을 겪던 시절이라 환경적으로 작물의 작황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다 조선은 전 국토가 전장터가 되었고 농사를 지어야 할 장정들이 전투원으로 빠져나가 버렸죠. 명나라도 잦은 반란과 환경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특히나 조선은 명나라 군대에 보낼 군량과 마초를 최우선으로 여겼기에 조선군이 먹을 식량이 그리로 전해져 정작 조선군은 싸움할 상황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GnZ5&articleno=5756334 / 1도씨가 바꾼 바이킹의 운명
http://egloos.zum.com/Idealist/v/5855271 / 임진왜란의 전반적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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