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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형 기사: 국정교과서 이후 - 2040, 올바른 신세계
게시물ID : sisa_6195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잠룡815
추천 : 1
조회수 : 634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0/26 15: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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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화+극단적인사회양극화++ 해서
우울한 미래네요..



http://www.ddanzi.com/ddanziNews/47776109

[역사]본격 타임머신형 기사: 국정교과서 이후 - 2040, 올바른 신세계 2015.10.2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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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의의 주제는 ‘1945년 이후 최근 100여 년의 근현대사 서술’에 관한 부분이었다. 회의 자료로 배포된 국사교과서 초안을 가볍게 읽어보았다.


1945년 우리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맞이하였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일본에 승리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국을 움직인 이승만의 외교력과 비밀 독립군이었던 박정희의 맹활약 또한 큰 역할을 했다.


1948년 좌파 세력의 방해를 뚫고 UN이 승인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이를 주도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국부로 존경받고 있다.


1950년 북한 공산집단이 기습적인 남침을 감행했다. 그들은 민간인 학살, 납치, 포로학대 등 숱한 전쟁범죄로 전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대한민국은 자유우방 16개국과 함께 UN군을 조직하여 공산군에 맞서 자유를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이승만의 결단으로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 효율적인 전쟁수행을 가능케 했다.


1960년 선거 절차상의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소요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는 일부 좌익세력의 선동으로 크게 확대되었고, 이승만은 더 이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하야했다. 국부의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퇴장이었다.


1961년 새로 집권한 민주당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심각한 사회혼란을 야기했고, 국민들은 경제를 일으켜 세울 강력한 리더십을 희망했다. 이러한 열망 속에 박정희를 지도자로 한 군부가 5.16 혁명을 일으켜 나라를 바로 세웠다. 박정희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높은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1972년 박정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배신과 정쟁으로 점철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선진 통일 조국을 만들기 위해 국력의 효율화가 절실하다’는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에 힘입어 10월 유신이 선포되었다. 유신은 투표를 통해 90% 넘는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이를 통해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천 달러 등 획기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있었다.


1979년 권력욕에 찌든 김재규의 패륜적인 배신행위로 인해 박정희가 서거하였다. 


김재규 부장.jpg 


1980년 광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북한의 지령을 받은 좌익 세력들이 준동하여 사회가 혼란하였으나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이 등장하여 수습할 수 있었다.


1987년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들의 불법 폭력시위가 빈발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집권세력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6.29 선언을 발표하여 국민통합과 사회적 대타협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노태우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1997년 도덕적 해이에 빠진 국민들의 과소비와 파업,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의 비협조로 인해 IMF 경제위기가 발생하였다. 끝내 좌파 세력이 집권하며 사회는 대혼란에 빠졌다.


2007년 좌파 정권 10년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열망하였다. 이는 박근혜의 아름다운 승복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었다.


2012년 종북 세력의 선전 선동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달라는 각계각층의 성원을 바탕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침몰사고 등을 비롯한 여러 위기에 맞서, 혼란을 부추긴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 노력하였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메르스 사태와 북한의 포격도발 등 여러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통하여 국민통합에 앞장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분명 역사학자 상당수의 견해는 아니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가 발행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이를 통해 교육받은 국민 대다수가 이런 사관을 정설로 믿게 되었다. 학부 1, 2학년 교양 수업에 들어가 보면 가관도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온 교과서 내용에, 종편과 일베를 통해 세뇌되다시피 한 학생들의 왜곡된 시각을 한두 학기 학부 수업으로 바로잡을 수는 없었다. 심지어 나쁜 학점을 받은 학생들은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들고 와 항의하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갑갑함을 느꼈다.


“자, 특별히 이의 없으시죠? 별 말씀들이 없으시면 이만 마치고 식사들 하시죠.”


위원장인 김 교수가 서둘러 회의를 마무리 짓는다. 조만간 교육부 총리로 영전하거나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한 이였다. 그냥 넘어가려다 학문적 양심이 목에 걸려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기, 다른 건 뭐 해석의 영역이니 그렇다 치고요. 박정희가 ‘비밀 독립군’이었다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해방 당시 일본군 중위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 교수, 그게 뭔 말이오? 그럼 박정희 각하가 친일이라도 했다는 게요?”


회의장이 웅성거렸다.


“냉정하게 이야기해서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간 게 아니라 혈서까지 쓰고 자원입대한 것은 친일이라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sample_image_2.jpg 


“뭐, 임마? 네까짓 게 뭘 안다고 우리 박정희 각하를 비난하고 지X이야! 우리 각하가 안 계셨으면 대한민국은 없어.”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역사학자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구더라? 아, 일베 운영진 중 한 사람이구나. 근데 저 자가 왜 여기 와있는 거지?


“당시엔 우리 군대가 없었으니 군인이 되려면 일본군에라도 입대해야 하지 않겠소. 그럼 당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 친일파란 말이오?”


점잖게 말하는 사람 앞쪽에 ‘어버이연합 상임고문’이란 명패가 놓여있다. 학자들 대신 이런 사람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각하는 완전무결한 반인반신이시다. 너 따위 듣보잡 학자 나부랭이가 함부로 입에 올릴 분이 아니야!”


‘박정희 기념사업회’ 기획실장이었다.


“자자, 진정들 하시고. 이 교수. 선배 학자로서 충고하는데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로 혹세무민하는 것은 국민통합을 위한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오. 아무리 학자라 해도 종북세력의 주장에 동조하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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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danzi.com/ddanziNews/4777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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