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을 이어가는데 꼭 필요한 노트북을 도난당한 고정민씨. ⓒ미디어다음 이성문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노트북을 찾습니다”
미 유학 준비 시각장애인, 도서관서 자료 담긴 노트북 도난 당해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유학을 준비 중이었던 한 시각장애인이 도서관에서 노트북을 도난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노트북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가의 소프트웨어와 석사 과정 동안 모은 자료 등이 저장돼 있었다.
지난 8일 시각장애인인 고정민(32, 인천 부평2동)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8시 40분쯤 부평도서관에 도착해 1층 장애우실에 자리를 잡았다. 가방을 의자에 놓고 차를 마시기 위해 10분 정도 자리를 비운 후 다시 돌아왔을 때 가방이 이전과 달리 너무 가벼웠다. 그 안에 있던 노트북 컴퓨터만 사라진 것이다. 직원들이 나서 도서관 전체를 뒤졌지만 허사였다.
“2년 넘게 미국에서 유학하며 어렵게 모아놓은 자료와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음성 프로그램이 들어 있었습니다. 미국 박사 과정 유학을 위해 GRE 시험을 준비하려면 그 노트북이 꼭 필요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시력을 잃은 고씨는 인천 맹아학교를 나와 95년 삼수 끝에 경희대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99년 졸업 후 복지관에서 일하며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2001년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미국 인디에나주 볼스테이트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석사 학위를 땄다.장학금을 받아 학비는 들지 않았고 학교에서 조교활동을 해 생활비를 직접 벌었다. 학교는 그에게 음성지원 소프트웨어를 무상으로 지원했다. 또 자원봉사자를 붙여줘 노트필기도 도왔다. 올해 3월 입국한 고씨는 다시 박사과정 유학을 위해 GRE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잃어버리고 처음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며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자료를 복구해 보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책 한 페이지를 읽기 위해서는 일반인과는 다른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책 자체를 일단 스캔해서 문서 파일로 전환한다. 그 과정에 표나 그림은 음성 프로그램이 인식할 수 있도록 별도로 편집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다. 편집된 파일은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고씨에게 읽어준다. 이런 과정을 거쳐 3년 동안 모아 놓은 자료가 그 노트북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노트북이 사라진 지금 그에게 미국 유학의 꿈은 아주 멀어질 수도 있다. 강단에 서겠다는 장래 희망도 언제 이룰지 모른다. 당장 12월 말에 치를 GRE 시험준비부터 난항이다.
“자료를 다시 그대로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겁니다. 아마 최대한 노력을 해도 1년 넘게 걸릴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피와 땀의 결실인 노트북 자료만 돌려준다면 절도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고 말했다. 11일 부평도서관 장애우실 그의 자리에는 GRE 점자책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오른쪽 스피커가 찌그러진 도시바 노트북을 보셨나요?”
고씨는 잃어버린 노트북의 모델명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미국 유학 기간 동안 현지에서 구입한 도시바 A35-S159 노트북. 모델명 자체가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면은 15인치다. 하드가 둘로 나누어져 한글 윈도우와 영문 윈도우가 모두 깔려 있다. 부팅할 때 이를 선택할 수 있는 것. 또 본체에 달려 있는 오른쪽 스피커가 조금 찌그러져 있다.
주요 소프트웨어로 영어를 읽어주는 윈도우아이즈(WiondowEyes) 프로그램과 스캔한 문서를 파일로 전환하는 커즈와일(Kurtzweil) 프로그램이 깔려 있다. 각각 100만 원이 넘는 고가로 국내에서 구하기조차 힘들다. 한글 음성지원 프로그램 센스 리더(Sense reade)도 저장돼 있다. 혹 중고시장을 통해서 구입하거나 우연히 이를 손에 넣은 사람은 부평도서관 열람봉사과(032-526-9301)로 연락하면 된다. 자료를 돌려준다면 법적인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 고씨가 도난당한 도시바 A35-S159 모델. 모델명이 우리나라에 출시된 제품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