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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노몽 老夢
게시물ID : readers_223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이유어른유
추천 : 3
조회수 : 4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6 20:43:37
노구의 신사가 잠에서 깨어난다.
 
'허억!'
 
그는 이불을 황급히 들춰본다. 틀니는 창가 컵에 담겨져있다. 뻐금뻐금 벙긋벙긋 뭐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기뻐보인다.
 
머리를 위로 쓸어올리며 다시금 본다.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돌아왔다. 모든것이 돌아왔다.
 
기쁘다. 옆에 자는 마누라를 깨운다. 마누라의 틀니는 화장대 컵에 담겨져있다. 졸린데 왜 깨우냐는 손짓을 한다.
 
그는 자신있게 손짓을 해보인다. 맙소사. 마누라는 뻐금뻐금 벙긋벙긋 놀라 횡설수설하는듯 하지만 역시 뭐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아닌 밤중에 벼락이치고 지진이 난듯하다. 곧 아랫집 부부의 단잠을 방해한다. 아랫집 이웃은 이해할 수 없다.
 
아침이 온다. 그는 깨어난다. 꿈이었을까. 너무 달콤한 꿈이었다. 꿈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한방울 또르르 떨어진다.
 
그는 채념과 함께 시선을 아랫도리로 옮긴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꿈이 아니다! 그래 이것은 꿈이 아니다. 그는 달려나가 방안에서 옷을 꺼내입는다. 마누라는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달레트 거리, 빠르왕뜨 거리를 지나 흰머리가 나풀거리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백화점으로 들어가 쓰지도 않던 카드를 꺼낸다. 쫙! 일시불로! 호탕하게 말하는 노신사의 박력에 종업원은 웃는다.
 
발걸음은 솜사탕 위를 걷는듯하다. 경쾌하고 가볍고 딴딴딴. 지나가는 여성들에게 추파를 날린다.
 
그 모습을 어제의 그가 보았다면, 혀를 찼으리라. 하지만 신사숙녀 여러분... 자신감찬 웃음에 여성들은 당황한다.
 
라틴계열 매력적인 웨이브를 넣은 검은 장발 여인이 내 옆으로 묘한 눈빛으로 다가온다.
 
나이는 30이 넘었을까. 노신사의 탄력없는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댄다. 그때만큼은 조금 부끄러웠고, 굉장히 짜릿했다.
 
라틴의 여자의 입에 물린 복숭아조각을 입으로 뺐는다. 달콤하고 부드럽다.
 
갑자기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지만 달랐다. 옷은 옷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젖는다. 인생의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샴페인처럼.
 
지금의 선과 선들은 다시는 만날일 없을 듯 했던 스쳐지나가던 평행선들이 아니었다. 두 개인듯 하나가 되어버린 선들.
 
복부에서 부터 올라와 굳게다문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넘어 굳게 포갠 위 아래의 두 입술로 차마 막지 못한 미세한 감정들이 빗소리에 묻힌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고 독 무대마냥 나비는 쌍으로 춤을 춘다. 날개 젖는줄 모르고 무아지경에 갇혀버린다.
 
마침내 그리운 땅에 하얀 꽃 한송이 피어나니, 마침내 구름은 개고 강렬한 햇빛만이 남는다.
 
산불이 번져 다 타버린 들판... 하지만 그 위로 어느때 보다 선명한 파란 하늘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찢겨진 날개 나비는 아래에서 위로 하늘을 본다. 
 
희미해지는 심박, 숨결 무거워지는 쌍커풀...
 
'허억!'
 
노구의 신사가 잠에서 깨어난다.
 
그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끔벅거리는 눈. 내려간 이불을 끌어 올리고 옆에 잠든 마누라를 덮어준다.
 
이불은 가지런하다. 조금 내려갔었던 것일 뿐. 자고일어났을 때 이불이 엉망이었을 적은 빛 바랜 일기장에나 있는 일이었다.
 
눈을 주름이 자글한 두 손으로 가린다.
 
복부에서 부터 올라와 굳게다문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넘어 굳게 포갠 위 아래의 두 입술로 차마 막지 못한 미세한 감정들이 창밖 빗소리에 묻힌다.
 
따닥따닥....
 
차마 막지못한 빗물이 노인의 뺨을 타고 내려온다.
 
깊은 어두운 밤이 다가올 나이.
 
새벽의 끝자락을 보기엔 무릎이 시린 나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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