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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유시민의 장관 취임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예전 일명 서울대 프락치 사건(학생 운동권의 민간인 고문 사건)에서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당했던 전기동이 "나를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을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은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을 돌려 보내며, 이 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당시 전기동의 주장은 "나는 (가짜 서울대생이였지) 프락치가 아님에도 여러 사람이 나에게 폭행을 가했고, 유시민은 폭행이 일어날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가 끝나고 나타나는 등, 교묘하게 뒤에서 지시하였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나를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폭행 가담자들에게 나를 돌려 보내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폭행을 뒤에서 조종한 자가 유시민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직접 폭행을 가한 사람은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덕분에 서로 할 말이 없어, 마타도어가 가장 난무하는 선거 때도 이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2.3.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허위 진술[편집]
심재철은 "김대중으로부터 20만원을 받아 시위에 사용했다"고 증언하였다. 이로 인해 김대중이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검찰이 기소하였고, 이 때문에 김대중은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에 심재철은 "내가 가장 심하게 고문을 받았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를 하였다.
2004년 기사중
당시 내란음모사건 공판에는 피고인 1명당 가족 2명과 풀제 취재진으로 내외신기자 2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다. 피고인 가족들의 '쪽지 통신'으로 위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분노 이전에 서글픔을 느꼈다.
이 일로 피고인의 가족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 보았는데, 아래와 같이 짤막한 말만 하고 더 이상 얘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당시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공판이 있고 나서 12시부터 점심시간이었는데, 심재철 학생 가족은 우리랑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의 진술을 듣고 가족이 어떻게 우리랑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었겠어요? 우리도 굳이 권하지 않았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출소한 뒤 출소한 뒤 그가 잠시 식당일에 관여했을 때 '감옥 동기'들이 매상을 올려주러 간다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다. 배기선 의원도 그 중 한 명이었다고 들었다.
학내시위 주동만 해도 '신세'를 망치던 시절에 그는 영어교사로 취직했다가 문화방송 기자로 취업하는 불가해한 '수완'을 발휘해 주변을 놀래켰다. 그가 민주당에 입당하고 싶어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식이 풍문으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신한국당 대변인이 되었다.
"이철우 의원이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는 시대착오적 발언을 한 '주성영 의원 파동' 정국에서 그가 "이념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민주투사로 위장하고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빚고 있다. 열린우리당 김현미 의원은 그에게 "가련한 가롯 유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25년 친구 유기홍 의원도 가세했다. 아마도 심재철 의원은 그 자신이(피고였지만) 검찰을 구해주었다는 '사실'을 듣고 심 의원을 검찰측 증인으로 나섰다고 말한 김현미 의원, 그리고 유기홍 의원에 대해 법정소송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모양이다.
망각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람들은 지나간 일들을 곧잘 잊어버린다. 어쩌면 심채철 의원은 '망각'에 기대어 '정치적 성과'를 얻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망각의 마술'로도 잊혀지게 할 수 없는 기억들이 있다.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불법 사찰 국정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단 1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고 방치하면서 월 600만원씩 1년 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이 2013년 8월에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아무런 반응도 안 하고 4개월 후, 특위 설립 16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특위 활동을 종료하기 위해 모여 5분만에 회의를 마치며 특위를 해산했다. 이에 중앙일보에서 "1년 반 동안 21분 회의하고 해산한 국회 민간인사찰특위"#라는 비판적 기사를 게재하자 뒤늦게 활동비 9천만 원을 반납했다고 주장했다.
박종운 김문수 하태경은 심재철에 비하면 얘교수준 이군요
작년에 문재인대통령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망언했는데
다음 총선에선 저 낮짝을 않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