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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위로 포탄이 굴러가는 소리....
게시물ID : humorbest_11139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oble6
추천 : 16
조회수 : 3987회
댓글수 : 7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15/08/28 23:41:41
원본글 작성시간 : 2015/08/28 14:36:34
잭 오브리 함장은 목공장과 언짢은 대화를 나눈 게 분명했다. 책상 위에는 볼트가 삐져나온 썩은 나무토막이 있었으며, 잭은 누구한테 얻어맞은 것처럼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는 어색하고 미심쩍고 당혹스러운 얼굴로 일어나 들보 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지만 면담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네. 내일 밤 배가 프랑스 연안에 도착할 때 반란이 일어날 것 같아. 목적은 배를 생발레리로 끌어가는 걸세."
 
스티븐 머투린이 말하자 잭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티븐의 말은 그의 상황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옛 소피 호 선원들의 풀 죽고 난감한 표정과 일반 선원들의 태도, 중간 당직 때 선반에서 떨어져 갑판에 굴러다니던 24파운드 포탄. 잭의 배는 발밑에서 분열되고 있었으며, 선원들은 각자의 임무와 충성심을 저버리고 있었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 : 포스트 캡틴 중에서
 
전 역사를 다룬 소설을 꽤 좋아하는데 그중 좋아하는 소설이 바로 이 마스터 앤드 커맨더 시리즈입니다. 패트릭 오브라이언이라는 걸출한 영국 작가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가 않지요.....게다가 현재 번역이 3편까지는 나왔는데 판매부수 부진으로 차후 소설들의 번역은 물건너갔다능....)가 쓴 해양 역사 소설로 유럽에서 벌어졌던 나폴레옹 전쟁 시대 당시 영국 해군 함장 잭 오브리와 의사이자 첩보원, 해군 군의관인 스티븐 머투린의 우정과 모험을 다룬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소설에서도 언급되었고 제목으로도 차용한 문장입니다만, 이 포탄이 굴러간다는 소리는 무엇일까요? 바로 반란의 조짐이었습니다. 당시 해군 함선은 선원들의 반란과 항명 위협에 늘 노출되곤 하였는데 이는 가혹한 군율 및 강제 징병으로 인한 선원들의 불만 누적이었지요.
 
press.jpg
 
(해군의 강제 징병과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
 
당시 영국 해군의 이 강제 징병은 현대의 징병제보다도 더 어처구니 없으면서도 폭압적인 것이었습니다.
 
해군 승무원들로 가장 선호되는 이들은 숙련된 선원이며 특히 지원하는 이들이었지요. 이들은 동기가 확실히 부여되어 있으며 숙련도가 높았기에 적절한 통제가 가능했고 가장 유능한 전투원이기도 했습니다. 허나 이러한 이들이 언제나 넘쳐나서 해군의 인력을 채워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해군을 구성하기엔 지원자들의 수는 너무나도 적었고, 때문에 해군은 함장들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바로 강제 징병권이었지요.
 
물론 먼저 대놓고 강제로 사람들을 병사로 끌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항구나 해안 도시에 정박한 해군 함장들은 먼저 징병대를 이끌고 나와 지원자들을 우선하여 모집했습니다. 지원자가 충분하여 인력을 충당하기에 만족스러운 상황이라면 다행이겠습니다만 늘 이렇지 않았기에 함장들은 때에 따라 이 강제 징병을 실시하였지요. 함장의 인솔 하에 징병대원들은 항구와 도시에서 사람들을 마구 끌고 갔고, 심지어는 높은 사람이라 재eh수가 없다면 예외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영국 한 시의회 의원이 이 징병대원들한테 끌려갔다가 시장의 탄원으로 간신히 빠져나왔을 정도였으니까요....
 
이러한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영국 의회 및 해군성에서 어부 및 민간 선박 선원들이 징발되어 해운업에 지장을 초래되는 걸 방지하고자 면제 증명서를 발급해주곤 했습니다만 전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게 되면 의회의 면제 증명서를 빼곤 예외없이 모조리 강제 징발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부당한 강제 징병에 대하여 해군성이나 의회에 항의를 할수는 있었으나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지금처럼 통신이나 SNS가 발달되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과거로서는 함장이 국가에 부여받은 초법적인 권위가 멀고 먼 법보다 더 가깝고 무서웠기에 강제 징병 당한 이들은 변변한 항의조차 할 수 없었고 그냥 끌려가야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강제 징병에 사람들이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함장과 징병대원들이 강제 징병을 실시하게 되면 사람들은 몽둥이 등 무기를 들고 온 몸으로 저항했지요. 게다가 이러한 징병에서 가장 큰 먹잇감은 숙련된 민간 선박의 선원들이었습니다. 민간 선박의 함장들은 자신들의 소중한 인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들 역시 온갖 힘을 동원하여 강제 징병에 저항하곤 하였지요. 심지어는 이 강제 징병 대상은 민간인들 뿐만 아니라 중립국 혹은 적국 선원들도 그 대상이 되곤 하였습니다.
 
식민지에서 어엿한 독립국가가 된 신생국가 미국은 그 힘이 미약하였고, 이는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 해군은 사용하는 언어도 같고 게다가 숙련도도 높은 만만한 미국 선원들을 납치해서 끌고 가곤 했지요. 일례로 미 해군 소속 프리깃이었던 쳬셔피크 함은 영국 해군의 공격을 받고 수병까지 납치당합니다. 결국 이 사건은 영미 전쟁의 원인들 중 하나가 되기도 하지요.
 
어찌되었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인 선원들이었고,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을 다스리기 위하여 해군 간부들은 엄격한 군율로 이들을 다스렸습니다. 군율을 어기면 선원들은 자신들의 죄목과 형벌을 선고받고 갑판에서 채찍질을 당하였지요. 물론 이 형벌 부과의 이유가 정말 군율이 엄정하게 집행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선원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깔린 해군 간부들의 남용 또한 만만치 않게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저 상스러운 말 한마디, 조금 흐트러진 복장, 상관에 대한 가벼운 모독...... 이런 이유 하나하나가 죄가 되어 선원들에게 채찍질 혹은 가혹한 형벌이 부과되었지요.
 
Cat_o_nine.jpg
 
(당시 해군 선원들을 채찍질 하는데 쓰이던 채찍......Cat_o_nine이라고 하는데, 번역하자면 구승편이라고 합니다. 아홉 가닥으로 이루어진 이 채찍은 맞으면 그 상처가 영구히 남을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의외로 영국 육군이 자행하던 채찍찔의 채찍보단 고통이 덜했고, 때린다 하더라도 그 횟수가 수십회를 넘지 않으며 심지어는 나눠 맞았다고 하네요. 그래도 갑판에서 대놓고 이런걸 맞으면 망신도 그런 망신살이 없을 뿐더러 영구히 상처도 남으니 결코 가벼운 형벌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게다가 해군 선원들은 열악한 식사와 질병 위협에 시달리곤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식사라고는 질기디 질긴 소금에 절인 고기, 벌레가 있는 딱딱한 건빵과 말린 콩 등 장기간 보존에는 좋으나 식감과 영양상태는 최악인 음식물들이었죠. 물론 자비심 많은 함장들은 항구에서 선원들이 신선한 식료품을 사서 먹게 해주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경우도 극히 드물었으니......게다가 해군은 한 곳에만 있지 않고 배를 타고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는 순항 임무를 하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그 곳의 풍토병에 시달리곤 했지요. 특히 황열병과 말라리아는 해군 선원들에게 치명적인 병이었으며 장기간 항해로 신선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여 비타민 부족에서 오는 괴혈병 또한 선원들의 목숨을 심각하게 위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병과 형편없는 음식물 뿐만 아니라 거칠디 거친 해상의 환경은 선원들의 목숨을 위협하기 충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게 당시 선원들은 수영을 할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며 해군은 선원들의 탈주 위험을 우려하여 수영조차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배의 망루나 돛에서 작업을 하다 실수로 추락하여 바다에 빠지면 누가 구해주지 못한다면 그냥 죽어나가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즐겁게 군대 생활을 할수 있었을까요? 더군다나 간부를 잘 만나면 모를까 잘못만난다면 최악인 것이죠.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간부까지 잘못만나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반란이 바로 영국 해군 프리깃 헤르미오네의 반란입니다.
 
헤르미오네의 함장 휴 피코트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사소한 실수도 엄한 형벌로 다스려 선원들의 불만이 누적되던 상황이었지요. 그런 와중에 함선에서 작업하다가 시간 규정을 지키지 못한 선원들이 나오자 그 선원들에게 시간 엄수를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채찍형을 내립니다. 이 과정에서 3명이 목숨을 잃었고, 피고트 함장은 "저놈들을 바다에 던져버려라!" 는 모욕적인 명령을 내려 선원들의 항명 및 불만을 샀으나 그는 그냥 이들의 불만을 씹고 심지어는 불만을 표출한 이들에게도 채찍을 휘둘러댔습니다.
 
결국 여기에 폭발하고 만 선원들은 그날 밤 함장실을 습격하여 피고트 함장을 칼로 난자해서 죽여버리고 그대로 바다에 던져버리죠. 반란중에서도 최악의 반란 형태였습니다. 해군 간부를 죽이는 형태의 반란은 많은 반란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자 최후의 형태였거든요.
 
어찌보면 반란자들의 반란 동기는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상명하복의 군율 체계인 군대 내에서 반란 행위는 매우 심각하면서도 지대한 위협입니다. 영국 해군은 이 반란자들이 탈주하자 끝까지 추적하여 모두 잡아낸 다음 군법 재판에 회부하여 사형을 선고하지요. 결국 이들은 교수대에 매달려 반란에 대한 본보기로 삼아지게 됩니다.....
 
이러한 반란은 배 한척에서도 벌어지게 되기도 하지만 심지어는 집단 형태로 나타나기까지도 합니다. 그것도 무려 영국 해군 정박지인 스핏헤드 항에서 최대 규모로 일어나기도 했지요. 무려 16척의 배가 집단으로 반란을 일으켰는데, 반란을 일으키고 동조한 이들은 해군의 열악한 처우의 개선 및 사관들의 부당한 횡포 방지를 요구합니다. 뭐 해군 본부에서도 이정도면 들어줄만 했지만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이들이 프랑스와의 정전 협정까지 요구하자 해군 본부는 분노하게 됩니다. 처우 개선을 넘어 정치적 요구까지 한것은 선을 넘고 오만하다고 여긴 것이지요. 게다가 반란 당시는 프랑스와의 전쟁이 한창이었으니까요.....결국 반란은 해군의 진압으로 무력해지고 주모자들은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해군 선원들의 반란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라면 결국 이들이 받고 있는 열악한 처우에 대한 개선 요구라고 할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개선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렸고 개선이 있기 전까지 해군은 항상 선원들의 반란 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물론 선원들이라고 해서 자신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그 운명은 뻔한 것을 알고 있기에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의견을 사전에 표시하지요.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갑판 위에 포탄을 굴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분노가 차오를 때까지 차올랐으며, 이를 알았으면 알아서 잘 처신하라고 해군 간부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의미이기도 했지요. 때문에 해군 간부들은 잠을 자다가도 갑판 위에 구르는 포탄 소리가 들려올까 늘 노심초사하곤 했답니다.
 
당시 영국 해군뿐만 아니라도 현재 사회에서도 그 위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다양한 형태의 포탄 구르는 소리가 구르고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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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대한 추가 설명 및 보충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출처 마스터 앤드 커맨더 : 포스트 캡틴, 패트릭 오브라이언 저

전투함과 항해자의 해군사, 서상규/전윤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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