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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군 복무 이야기
게시물ID : military_5957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숨탱이
추천 : 10
조회수 : 1192회
댓글수 : 14개
등록시간 : 2015/10/28 11: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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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대학교 1학년...친구들과 열심히 놀러 다니면서 대학생의 낭만을 즐기기는 개뿔...
학점 잘 받아 보겠다고 처음 생긴 과동아리에 들어가서 매일 9시에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날...
동아리 이름은 촌스러워서 말 못하겠고 우리끼리는 저녁 9시라고 불렀다. 이유는 매일 밤 9시에 끝나서...
 
남자라면 당연히 군대에 가야 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있다가 주변에 친구들이 하나씩 군대에
가는 것을 보면서 아...나도 군대를 가야 되니까 빨리 갔다 오자라는 생각에 빵판에 납땜질을 하고 있었다.
납땜 후 얼굴에 대고 문지르다가 피볼뻔 한건 함정....
 
그런데 희안하게 그 당시 우리과 애들이 모두 공군에 지원을 하게 되었고 나 역시 그냥 별 생각없이
공군에 지원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애들끼리 공군 특기병으로 지원해서 갔다오면 나중에 취업할 때 유리하다는
지금 내 사회생활을 보면 전혀 말 같지도 않은 이유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휴가도 2달 마다 2박 3일로 나올 수 있다고 서로 좋아 했던거 같다. 하지만 육군에 비해
복무 기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그 당시는 6개월이 더 길었다.
 
이때는 밖에서 6개월과 군대에서 6개월은 다르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아....
 
어쨋든 당시 성남 비행장으로 가서 면접을 봤던걸로 기억하는데 내 생애 첫 면접을 공군 아저씨와
보게 되었다. 계급이 상사인가 중사분 이였던걸로 기억이 하는데 잘 모르겠다.
통신병으로 지원을 하게 되서 통신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쩌지 하고 나름 떨고 있었는데
그런 질문 따위는 하지 않고 그냥 머 지원 동기와 잘 할수 있겠니? 이런 질문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선한 얼굴의 푸근한 아저씨 인상이였던 분으로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미지를 애들한테 심어주어
공군으로 데려가기 위한 꼼수(?)였지 않을까 싶다.
앞에 람보 같은 아저씨를 면접관으로 앉혀 놓았다고 생각해 봐라. 이상하자나.
 
어쨋든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서를 받고 나름 시한부 인생(?)으로 지내다가 사람들이랑
군대간다고 인사도 하고 술 마시고 펑펑 울어도 보고...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이불 킥!!
 
모든 공군 지원병은 진주에서 모인다. 육군은 대표적인 곳이 논산인가?? 난 육군이 아니라 잘 몰라서 패쓰.
입대시간이 되면 스님들이 하나둘씩 일반인들과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부사관들은 입대하는 가족들에게
훈련소와 잘 곳을 보여주면서 약을 판다. "요즘 시설이 많이 좋아 졌어요~ 우리 군대 시절 같지 않아요~" 이러면서
 
 입대시간이 되면 담당 부사관이 마이크로" 입대자들은 운동장에 모이세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이때 가족들과 같이 있던 입대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연병장에 집합한다. 가족들은 모두 울먹거리며 헤어지는데
나도 울고 하늘도 울고 아 슬프다~~ 랄랄랄라 랄라~ 랄랄랄라 랄라~ (어 이게 아닌데??)
 
입대자들이 다 모이면 가족들을 보고 경례를 하라고 시킨다. 배운적이 없는데 왜 시키는지 모르겠다. 우리 군인 아닌데?
경례 배운적도 없는데? 왜 경례하라고 시키는거야 대체.
그 뒤 다시 우리를 돌려 세우고는 가족들이 안보이는 곳으로 데려가는데 이때부터 시작이다.
가족들이 안 보이는 곳에 가면 그때부터 " 이 자식들아 빨리 빨리 안 뛰어!!" "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라는 소리가
이곳 저곳 터져 나온다.
 
내가 입대 할 때 하필이면 새로운 슬로건이 강한공군 정예육성이였다.
후에 조교한테 들은 얘기지만 이 슬로건이 우리 입대 부터 정해져서 니네부터는 훈련이 빡세졌어~
라는 소리를 들었다...아놔....덴장...
그리고 한가지 함정은 나는 2002년 6월 군번이라는거....그렇다...나는 우리나라가 한참 월드컵으로 뜨거울 때
입대했다. 왜 그랬냐고? 나도 입대날짜가 이 때 일줄 몰랐다. 통지서 받고 보니 이 날짜더라...6월 20일...
잊어버리지도 않아. 그냥 오래. 너 님 오세요. 6월 20일날. 월컴 투더 아미.
 
밖에서는 시청역이다 머다 빨간옷을 입고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열심히 구르고 있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원래 훈련병은 TV 시청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경기만은
시청하게 해 주었다는 것이다. 내무반에서 빡빡이들이 모두 미친듯이 응원을 했다.
꼭 이기라고 꼭 이겨서 우리 구르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여 달라고 이기면 또 시합을 할테니 그러면 우리는 또
TV 시청을 할 수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구르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우리의 염원이 통한 것인지 그 해 우리는 4강의 신화를 이루면서 우리는 TV 시청을 조금 더 할 수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승리하고 끝나면 밖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며 잔치를 벌였지만 우리는 시합이 끝나자마자 조교가 내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엎드려!! 이자식들아!!"
그렇다. 우리는 이긴 기쁨을 구르면서 온 몸으로 맛 보고 있었다. TV를 보고 애들이 헤이해 졌을 까봐 손수 챙겨주시는
고마운 빨간모자 조교들이였다.
 
훈령병 기간동안 조교들이 모두 빨간 모자를 쓰고 있는데 그 당시 피자집 이름 중에 빨간 모자라는
피자 집이 많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전역하면 빨간 모자 피자집에서는 절대 피자를 사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일하기 싫어서 그냥 쓰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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