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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평화롭게 대응해야 한다는 사람들에게
게시물ID : phil_1262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맥주거품
추천 : 2
조회수 : 47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0/30 09:24:15
  " 쉬슈팔(Shishupal)왕이 크리슈나에게 999회의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참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그 다음의 욕설을 퍼부었을 때, 그는 바퀴 같은 무기인 그의 차크라로 왕을 죽였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크리슈나는 관용의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깊은 곳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입니까?"


  우리 모두는 오직 피부 깊이의 관용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만약 내가 나에 대한 네 번째 욕설에 화를 낸다면, 그것은 내가 바로 첫 번째 것에서 화를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것들의 세 번을 참았으며, 네 번째가 오자마자 나의 진실한 색깔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것이 일어날 수 있다. 크리슈나가 그 반대이다. 그는 우리와는 다르다. 그는 이러한 일반성에 예외였다는 모든 가능성이 있다.
  크리슈나의 관용은 999회의 욕설만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999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수의 욕설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번을 더 못 참겠는가? 그것은 믿기가 정말로 어렵다. 크리슈나 앞에 놓인 진정한 문제는 자신의 관용이 바닥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 있는 그 사람이 그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크리슈나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한계를 정말로 초월했다. 더 참는 것은 크리슈나의 인내를 소모시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마 악에게 이익을 주게 될 것이다. 더 참는다는 것은 불의를 더 강화시킬 것이다. 999회의 욕설로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어떤 제자가 예수에게 물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한 번 때린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가 그에게 말한다. "참아라."  
  그러자 제자는 묻는다. "만약 그가 나를 일곱 번 때린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에 대해 예수는 말한다. "너는 일곱 번을 참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일흔 일곱 번도 참아야 한다."
  그 제자는 만약 그가 일흔 여덟 번을 맞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시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가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 제자가 이 질문을 했다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흔 일곱 번을 맞은 후에는 그것을 고요히 받아들이지 말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너는 너의 참음도 돌보아야 하지만 너는 또한 불의가 약해지지 않고 있음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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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쇼 라즈니쉬 명상록입니다. 시사게에 '그래도 폭력은 정당화될수 없다'라는 댓글에 이 글이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밑줄 친 부분 때문에 시사게에 올리고 싶었지만 이 글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에 철학게에 올립니다.


출처 도서 : 지금 여기의 신 크리슈나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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