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제 소개를 하자면, 나이는 스무살 후반에 본 회사 경력 3년차를 향해 달려가는 디자이너입니다.
제가 이 게임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땐 A라는 차기작을(줄여서 A프로젝트라고 하겠습니다) 개발하기 위해 한창 기획자나 디자이너 등의 사원들을 뽑기 시작한 시기였고, 그중 전 A프로젝트의 거희 초창기의 입사자로 취업이 된 상태였죠.
우리 A프로젝트 게임엔 다른 게임회사와 비슷하게 프로그램팀, 기획팀, 디자인팀이 있고 이를 총괄하는 PM(=Project Manager 프로젝트메니저, 이분은 기획자에서 진급)이 있습니다.
업무방식은 기획자가 기획을 창안하면 이를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에게 제시하고 서로의 합의점에 맞춰지면 디자인과 프로그램구현의 구상을 하는 식으로 일처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잘 지켜져서 좋았는데, 2년차가 넘어간 이후로 A프로젝트가 출시되고 나서는 어느세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체제가 되어버리더군요. 누군 야근안한다더라, 누군 주말에도 나오는데 쟤는 평생 안나온다더라, 등등.. 저는 일처리가 빠른 편이었기 때문에 야근을 안하는 편이었습니다.
여러 업무적인 트러블이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문제되고 있는 쪽이 기획쪽이었습니다. 솔직히 회사간 동료끼리 형동생 맺고 하는 건 좋다 이겁니다. 초반에 급작스럽게 프로그램팀이랑 기획팀이랑 술자리도 같이 하고 형동생을 맺더군요. 여기까지는 누가 봐도 별 문제가 없을거라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실 업무 쪽이더군요.
한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기획팀의 막내인 L모씨와 연출디자인담당인 저는 기획서가 나오면 그것에 따라 디자인을 하고 조언을 해주는 관계였습니다. 테스트서버에 구현된 연출에 문제가 있길레 제가 연출해야 할 부분을 기획담당하던 L모씨에게, "이쪽 연출은 제가 디자인 한 것이 프로그램 구현 할 때 잘못 구현되는거 같으니 수정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라고 말을 하면, 한 몇 초 어물쩡 거리다가 "함 물어는 보겠는데,, 아마 안될수도 있어요." 라고 대답하더군요.
이런 식으로 어물쩡 거리며 몇 번을 말해줘도 알았다고만 하고 나중에 돌아오는 대답은 이건 프로그램 쪽에서 구현해 줄 수 없는 문제니 디자인을 변경해서 해결해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게 그렇게 구현이 어려운가 의아해 하며 여러번 제가 힘들게 수작업으로 껴맞춰가서 수정해주고를 여러번 반복해 줬드랬죠. (솔직히 지금 생각해보면 디자인으로 수정하면 꽤 오래 걸릴 일이 프로그램으론 뚝딱 끝날 작업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도 수상해서 프로그램쪽에서 또 잘못 구현되어서 (예를 들면, 유도방식의 화살의 화살촉이 타겟을 잡은 몹의 방향을 향해 바라보고 날아가야하는데 그렇지 않는다더라 등의 지극히 사소한 문제들) L모씨에게 문제점을 말해주고 바로 그 사람이 어떻게 이 문제에 해결점을 찾는지 몰래 지켜봤습니다.
우선 자기 자리로 가서 한참 뭔가 고민하더니 프로그램팀쪽으로 가더군요. 그래서 저도 슬그머니 숨어서 몰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은 대충, 나이어린 기획자 L씨가 해당 문제 담당 프로그래머에게 문제를 말하면 그 프로그래머는 반 비아냥투로, "야 Lxx.(친한 동생처럼 이름석자를 부르더군요) 나 할 것 많아~ 이런 문제로 일일히 귀찮게 해야겠어~?"
L씨는 이렇게 대답을 딱 한 번 듣더니 ㅎㅎ 웃으며 자기자리로 돌아가더군요.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프로그래머들이 전부 기획자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형동생을 해오기 시작한 시점 부터 프로그래머들이 기획자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었더군요.
그리곤 몇분있다가 제 자리로 오더니 역시나 이것도 디자인쪽으로 우회해서 작업이 들어가야 될 것 같다고 말을 하더군요.
지금 한 이야기는 극히 일부분이고요.
또 다른 일화를 살펴보면, (최근 사건임) 다음 패치때 반드시 들어가야하는 작업물인데, 작업량을 대충 산출해보면 '기획서가 나오고 나서 바로 준비 땅 하면 2달만에 끝날 작업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L모씨한테 기획서 달라고 하니 아직 기획이 떠오르지 않아서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 그런가보다. 하고 기다렸죠. 그리곤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계속 질문했지만 똑같은 대답만 할 뿐이었고, 결국 구현되어야 할 시기가 4주 반밖에 안남은 시점이 와도 말 한마디없길레, "도대체 언제 기획서 줄꺼에요!? 4주 반밖에 안남았다고요! 이거 2달 작업해도 빠듯해요." 이랬더니 L모씨가 하는 말, "도저히 기획이 안나와서요.. 혹시나 좋은 기획 생각나시면 말씀해주시고요. 제가 다다음주부터 일주일간 휴가를 가니 그 전에는 나올거에요.." "아놔.. 그럼 대충 2주 반 정도 남는데.. 그걸 어떻게 예정된 날까지 맞춰서 작업합니까...?(이때까찌는 스팀이 조금만 받은 상태였음)" "음... ㅁㅁ씨(제이름), 이제 야근을 하셔야 할 것 같아요.^^(웃으면서 말했음!)"
이 말 듣는 순간 스팀이 머리끝까지 터져서 결국 큰소리 치고야 말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업무속도가 좀 빠른 편이라 할 거 다 떨어져가던 차에 반드시 게임상에 구현되어 들어가야 하는 2달짜리 작업물을 한창 적절한 때에 받았으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던 일이었는데, 기획자라는 놈들이 자기 머릿속에 기획이 떠오르지 않아, 4주밖에 남지 않는 시간동안 수수방관만 하다가 문제가 코앞에 닥치니까 야근하라뇨?!?! 제가 뭔 죄가 있습니까? 게다가 기획짠다고 2주를 달래요! --.....허허허..
솔직히 기획자가 디자인할 기획서를 전혀 주지 않아, 할게 없어서 실장님께 보고하고 저랑 같은 연출쪽을 하는 분의 일까지 나눠서 하던 차였습니다. 그리고 한참 기다려줬더니 이제와서 하는 말이, "솔직히 우리 게임 오픈베타를 좀 무리하게 일찍 열어서 부족한 컨텐츠 짜느라 연출기획할 시간이 없었네요. 지금부터 짜기 시작할거에요. 그래서 저희도 주말에 나오는 거고요.(주말에 나온다는 말을 좀 크게 말했음)"
이 사람들아! 컨텐츠 그럼 기획자가 짜지 누가 짜냐!? 게다가 제가 맡은 두달분의 작업물은 해당 패치때 구현되지 않으면 유저들에게 반드시 욕먹는 연출이었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 돌아가는 꼴이, 운영자가 컨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획자가 게임상에 패치사항 제차 확인 안하고 본섭에 올려버려서 몇몇 치명적 버그문제를 일으켜 유저가 하는 욕 운영자가 다 받아드시면서 수습하고 계십니다. 운영자분들 보면 내가 다 안쓰러워진다고요ㅠㅠ
게다가 이 L모씨가 게임기획을 어린이를 타겟층으로 잡은 게임인데 난이도를 와우하드모드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이거 너무 어렵잖아요, 애들이 할 수 있겠슴?" 이러고 물으니 "게임은 어려워야 재밌죠" 라네요? 보스한테 한대맞으면 즉사하게 만들거다라는 말에 식겁해서 "님하.. 애들 게임임...자제혀..." 이래서 간신히 말렸고요.. 참고로 이 L모 기획자, 와우 하드모드도 손쉽게 깨는 사람입니다..(저 주관적인 놈을 봤나!) 하여튼 기획 초짜라 그런지 너무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막상 내세운 고집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주관적이기만 하며, 그런 강한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막상 프로그래머들한테는 꼬리만 내리는 쥐며느리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