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할때, 사실은 사람들이 정말로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제 어떻게 지냈어?' 같은 간단한 말조차도 그런데, 여기에 대답으로 '응, 어제 아침 7시에 일어나서 7시 20분에 세수하고 7시 40분에 아침 먹고...'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사실 '어제 어떻게 지냈어?' 라는 말 속에는, '어제 평범하지않은 무슨 특별한 일 없었냐' 라는 진짜 물음이 숨어있다. 이 배경지식이 있어야만 사람들은 '어제 완전 최악이었어!' 나 '별 일 없었는데..' 같은 정상적인 대답을 할 수가 있게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일반적이고 당연해보이는 상식은 태어날때부터 익혀지는게 아니다. 마치 모국어를 배우는 것 처럼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당연한 상식들을 배워가고, 그 후에는 모국어처럼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아간다.
군대에 관한 의미심장한 만화가 생각이 난다.
주인공이 있는 부대에 최악의 고문관이 한명 들어오는데, 하나 같이 머저리 같은 행동만해서 그 고문관은 '이기적' 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진저리가 난 주인공은 고문관을 구타하게 되고, 고문관은 자살시도를 한다. 결국 주인공은 영창에 가고, 다른 부대로 보내지게 된다.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주인공이 제대 하게 되는데, 가는 길에 우연히 그 고문관과 마주친다. 그리고 밑의 대화로 만화는 끝이 난다.
주인공 : .. 나 제대한다. .. 하나만 묻자. 너 이제 편하냐? .. 나 간다.. 잘 지내라.
고문관 : 주... 주인공 병장님 밑에 있을때 보다는..
결국 이 대화에 주인공 얼굴은 사색이 되고, 만화는 끝난다.
만화에서는 '이기적' 이라고 비난 받았던 고문관이지만 나에게는 분명하게 다른 것이 보이고있다... 바로 보통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머릿 속 이럴땐 이렇게 행동해라 사회의 상식 메뉴얼' 의 결핍이다.
마치 모국어를 배우는 것처럼 사람들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누구나 저 메뉴얼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잘못된 육아나 인간관계에서의 고립을 겪은 사람은 그 메뉴얼에 결핍이 생기게 된다.
그렇게 열악한 상태의 메뉴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위의 '평범한 환경'들에 낯설어 하고 도무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 결과 그런 찐따들은 늘 안절부절해하고, 긴장, 불안, 초조한 상태에 머물게 되는데, 그것때문에 더욱더 엉성하고 어설픈,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했을때, 즉 암묵적인 사회의 규칙을 무시했을때, 사람들은 그 대상에 불안함, 답답함, 짜증, 심지어는 분노까지도 느끼고 만다.
열악한 상태의 메뉴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바로 그것때문에 더욱 더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럼 결국 그 메뉴얼의 결핍을 채울 수도 없게 된다. 이 악순환이 찐따구덩이에서 사람을 벗어나올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문명과 격리된 곳에서 늑대에게 키워진 늑대소녀는 네 발로 걸었고 언어를 사용하지 못했다. 찐따들이란, 사실은 다름아닌 문명 속에 존재하는 늑대소녀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