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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되고싶지 않았습니다.
게시물ID : readers_111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sea_side
추천 : 3
조회수 : 231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4/01/20 15:00:18

"영웅이 되고싶지 않았습니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이 나라를 구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그녀의 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들은 말도 매우 충격적이었다.

"사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나라를 구한 영웅도. 성녀라는 칭호도 싫었습니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그러길 원해 만들어진 것뿐이에요. 저는."

이 전쟁을 앞장서서 끝내고 영웅으로서, 희대의 성녀로서 남은 그녀의 말. 비록 지금은 죄수로서 감옥에 있다지만 아직도 그녀를 옹호하는 세력이 아주 많아 그들이 듣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그녀의 고백. 나는 단지 영웅에서 죄수로 끌어내려진 그녀에게 기분을 물어봤을 뿐이지만, 그녀는 나에게 많은걸 이야기 해주었다.

"사실 아버지가 하시던 빵집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도 좋았겠죠. 하지만 전쟁에 나간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뛰쳐나온 것이 잘못이었어요."

그래.. 그녀가 전쟁에 뛰어든 건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동생을 찾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혼자 전쟁터를 헤매는 여자라는 사실에 병사들에게 겁탈당할뻔 하고 정말 운이 좋아 그들을 죽였던 것이 시작이었죠.."

전쟁터를 떠도는 여자들은 거의 비슷했다. 몸을 파는 창녀이거나 그녀처럼 사정이 있어 나왔다가 겁탈 당하게 되어 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남성에 비해 한없이 약하고 낮은 힘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병사들은 전쟁에 잔인해져 단지 쾌락의 도구가 될 뿐이었다.

"그리고 더욱 나쁜 사실은 제가 조금의 재능이 있었던 거죠. 싸울 줄 아는 재능. 이건 아버지를 닮아서일까요?"

그리곤 살짝 웃는다.

"아버지는 강한분이셧죠. 결국 전쟁이 끝나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원래는 빵집이 아닌 병사였다고 하셨어요. 사실 듣지 않았어도 그 강인한 팔과 고집스러운 눈을 보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을꺼에요."

날씨가 흐려 달도 보이지 않는 창살을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며 약간은 지쳤다는 표정을 보인다. 사람들은 못하게 팔다리의 힘줄을 끊고 눈을 멀게 한대다가 먹을 것조차 제대로 주지 않았다.

그녀가 도망가는 것도, 구출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단지 여성이 남성보다 큰 공을 새웠다는 이유로.

"살아남기 위해 방패를 들고, 적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들었어요. 횟수가 넘어가는 만큼 나는 강해졌습니다. 그렇게 살아남 가며 동생을 찾아다녔어요."

5년 가까이 전장을 헤맸던 그녀, 단지 동생을 찾기 위해 전장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던 그녀..

"결국 찾았던곳은 그 다리위에서 나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모습이었죠.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꺼라고 생각해요. 입고 있던 앞치마는 갑옷으로 바뀌었고 동생이 좋아하던 이 갈색머리는 피에 절어 붉게 변했었으니까요."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는 이 시대에는 적지 않은 일이었다. 단지 마을하나 차이로 파벌이 갈라지고 국가가 갈라지고. 단지 그녀의 동생은 그녀가 처음 죽였던 병사들의 편이었을 뿐이다.

"아 그리고 마침내 저는 동생의 목을 칼로.. 이손으로.. 하늘로 보내주었습니다. 반가웠는데. 정말로 반가워서 눈물이 다 났지만 동생이 휘두른 칼에 몸이 반응해서 움직였죠. 반갑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동생을 찾아 여자의 몸으로 전쟁터에 나와 결국 자기 손으로 동생을 죽이고 말았다. 그때였을까? 그녀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정말 미친 들개처럼 싸웠죠. 싸우고 싸우고 싸우기만 하는 나날이었어요. 싸움이 일어나면 가장 앞에서서 달려 나가고 가장 많은 수를 죽였습니다. 잊고 싶었어요. 내손으로 동생을 죽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없는 동생을 찾아다녔는지도 몰라요."

그 유명한 다리위의 혈투이후로 그녀의 이름이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저 나갔다. 나라를 지킬 영웅으로, 전쟁을 끝낼 성녀로서...

"아니면 그냥 죽이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전장에 있을 때만큼은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 자신도, 동생도, 다른 가족들도, 친구였던 사람들도, 모두를요.."

이젠 더 이상 죽이는 거밖에 모르게 되어버렸던 그녀. 누구를 증오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하게 되었던 그녀..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저는 영웅이 되어있었어요. 나라를 지킨 영웅.. 이젠 동생도 아버지도 없었지만 살아있었다면 자랑스러워 해줬을까요?"

슬픈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아마 동생을 찾으로 나갔던 것을 후회하는지도 몰랐다. 나가지 않았다면 전쟁이 끝난 후 동생은 돌아오고 아버지도 죽지 않아 그대로 빵집을 물려받아 평범한 생활이 가능 했을까?

"전쟁이 끝난 후 여기저기서 혼담이 들어왔어요. 비록 가진 것 없는 천한 것이지만 나라는 영웅과 결혼해서 자신을 내보이려던 멍청이들 이었겠죠. 그 모든 혼담을 거절했던 것이 아마 제가 여기 있는 이유일꺼에요.."

전쟁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마녀로 매도되었다. 나라를 지킨 영웅이 아니라 그냥 피에 미친 마녀로, 교회에서 그녀를 가두고 재판을 여는 도중. 도주가 염려된다는 구실로 그녀를 폐인으로 만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감옥에 들어온 후에 가장 먼저 병사들에게 겁탈당했죠. 아 당신도 그중 한분이셧던가요? 사실 겁이 많이났어요. 앞에서 저를 죽이려 달려오는 병사들보다 그들이 더 무서웠던건 왜일까요.."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싶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 할수가 없었다. 결국 나도 그녀가 죽을날까지 이 앞을 지킬 병사이니까. 누군가가 그녀를 구하려 해도 그것을 저지할 병사이니까..

"재판을 받을때 처녀가 아니고 매독이 걸려있다는 이유로 음탕한 창녀취급을 받을땐 이미 아무런 힘도 없어 뭐라고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했죠. 그렇게 영웅에서 마녀로.. 동생이나 아버지가 살아있었으면 정말 화를 많이 냈을꺼에요."

마녀판정. 그것은 그냥 화형으로 이어지는 길. 살아남을 방법은 결코없다. 교회의 재판에 반항해봐야 돌아가는건 동료취급으로 같이 화형을 당할 뿐이니까..

"지금 달은 밝게 떠있나요? 다시한번 보고싶어요. 마지막으로 봤던 달이 어떤 모양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걸요..."

나는 밝게 떠있는 보름달이라고 대답했다. 사실 비가 내려올듯 흐린 날씨이지만 사실대로 말할수가 없었다. 단지 이제 비가 내리지 않기를 빌뿐이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정말로 밝은 달이었으면 좋겠군요. 아직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죽는날도 밝은 달이 떠줬으면 해요.."

이 말을 끝으로 더이상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죽기전 유언을 남기듯. 그녀가 화형에 처해지는 날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않았다.

그녀가 화형에 처해지는날 문앞을 지키던 내가 그녀를 대리고 나와 말뚝에 묵고 장작과 짚을 쌓아 올렸다. 남들 모르게 최대한 조심스래 끌고나와 그녀가 말뚝에 매달리지 않고 서 있을수 있게 묵었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사제가 와 불을 붙이기만 하면 돼는 때에 나는 작지만, 그녀에게 들리길 바라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밝은 보름달이 떠있군요. 정말 멋진날이에요!"

아마 들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녀는 그 순간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에게만 보일정도로 미소를 지었으니까.

불을 붙이고 이윽고 그녀는 커다란 비명을 질러댔다. 아마 어마어마한 고통이 그녀를 감싸고 있겠지. 견딜수 없는 고통에 벗어날수 없는 고통에 참을수 없이 비명을 지르는 거겠지.

발이 불타오르고 이윽고 뱀처럼 올라가는 불꽃은 그녀의 상반신을 태우고. 마지막으로 머리카락 하나. 피부 한조각까지도 전부 태웠다.

그리고 난 볼수 있었다. 모든것이 불타오르기전. 마지막 비명을 내지른 직후. 그녀의 얼굴은 분명 웃고있었다.

이제 동생과 아버지를 만날수 있다고 생각되어 웃은것일까?

아니면 밝은 달이 떠있어 자신을 비춰주고 있어서 웃은것일까..

아마 영원이 알수 없을것이다.

그녀의 몸이 전부 불타오르고 이윽고 모든 불씨가 꺼졌을때는 이미 근처에 나 말고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불탄 몸을 나무에서 때어내고 조심스레 준비했던 천으로 감싸 교외로 나가 그녀의 몸을 묻어주었다.

마지막 길에 그 어떤 기도도 받지 못한 그녀는 천국에 갈수 있었을까?

무덤조차 가지질 못하고 그 흔한 표식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녀는 미련없이 이 세상을 떠날수 있었을까?

나는 그녀가 죽어서만큼은 행복하기를. 영원히 행복한 꿈만 꾸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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