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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희대의 천재들 그 엇갈린 운명 (BGM)
게시물ID : humordata_6351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흑마
추천 : 19
조회수 : 1151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08/09 23:13:25

김웅용은 누구인가?
과거 한국에는 수많은 영재들이 있었다
그중 단연 돋보였던 인물은 IQ 210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던 세계 최고 천재 김웅용 씨였다
김웅용 씨는 1962년 서울에서 건국대 물리학과 교수인 김수선씨와 이화여대 의대 교수인 류명현씨
사이에서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5살때 4개 국어를 구사하고 6살 때는 일본 후지 TV에 출연해 미적분을 풀어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IQ 210으로 1980년판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지능 지수 보유자로 올랐다
그는 청강생으로 한양대에서 물리학 공부를 하다가 8살 때 미 우주항공국(NASA)의 초청으로 미국
으로 유학을 떠나 콜로라도 주립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대학원에 다니면서 74년부터 5년동안 NASA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맞이할 십대 초반 나이에 세계적 연구 기관의 연구원으로 활약하던 김웅용은 16세인
1978년 8년여의 미국 생활을 접고 NASA에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은 채 귀국을 한다
당시 김웅용 씨는 어린 나이에 자신의 지적 능력을 착취 당하다시피 했다 그가 NASA에서 한 일은
오늘날 컴퓨터가 대신하는 기계적인 계측 뿐이었다
사실상 NASA는 한국의 천재를 데려다가 자신들 목적에 따라 이용한 셈

김웅용 씨는 당시 NASA에서의 연구 생활을 지옥 같은 나날 이었다고 회상한다 김웅용 씨에 대한
지적 능력 착취는 비단 NASA에서 뿐이 아니었다 당시 한국의 언론과 방송은 연일 김웅용 씨의 천재
성을 볼거리로 삼았고 그는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볼거리 용으로 착취당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김웅용 씨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모든 학교 정규 과정을 건너 뛰었던 그에겐 초등학교 졸업장 조차 없었다
결국 검정고시 등으로 정규 과정을 대신한 그는 대학을 일부러 아무 연고가 없는 지방대(충북대)를
택해 들어갔다 그리고 약 25년이 흐른 지금 그는 국내 권위있는 토목공학계 연구원의 삶을 살고 있다
비록 대학 교수직을 얻는 것은 포기했지만 현재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위원으로 그리고 연세대와 충북대
등에서 강의를 하며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그간의 90여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국제인명사전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006년판에도 등재될 예정이다








야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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