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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백일장] 자격지심
게시물ID : readers_111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요리뽀이
추천 : 0
조회수 : 15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1/20 15:07:18
스물 한 살 때였나, 보드라운 바람이 맞잡은 손을 스치던 때.

캠퍼스에는 벚꽃이 만발했다. 수많은 나무의 가지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꽃들은 아름다웠다.


"누나."
"응?"
"...... 날씨 참 따뜻하다. 꽃도 예쁘고."
"응- 그렇네. 좋다."
"나들이라도 갈까?"
"나들이? 좋지. 김밥 싸 가지고."


그녀는 아름다웠다. 봄 가지에 만발한 꽃잎들이 떨어져 볼에 앉은 듯 발그레 상기된 얼굴 때문에 또 가슴이 요동친다. 그렇게 요동치는 가슴을, 나는 애써 누른다.

나는 못생겼다. 그리고, 빼빼 말랐다. 키만 멀뚱하니 크다. 우리 둘을 아는 학내의 몇몇 녀석들은, 나 모르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사실 내가 돈이 엄청 많은 집안 아들이 아니냐, 알고보니 밤일에 능숙한 남자인 거 아니냐, 뭐 그런 저급하고 더러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런 얘기들은 제발 나 모르게 해 줬으면 했었는데.


"주혁아?"
"... 어? 응."
"김밥, 괜찮지? 아니면 샌드위치가 좋을까, 역시?"
"아니야, 누나. 괜히 쌀 필요 없어. 사가면 되잖아."
"사가긴... 맛이 없잖아. 말 나온 김에, 내일 가자 내일! 괜찮지?"
"응... 좋아."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길, 잡생각들이 겹쳐 들어온다. 돈도 뭣도 없는 나같은 놈을, 왜 그렇게 잘 해주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녀의 웃음 뒤에는 분명 어떤 표정이 숨어있을 것만 같다. 

"......"

자취방 골목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둡고 무섭다. 어젯밤에 들어올 때 껌뻑대던 유일한 가로등이, 몇 번의 점멸을 거치더니 투욱 꺼져버린다. 나는 얼른 좁고 어두운 길을 빠져나와 자취방 쪽으로 내달렸다. 


"오빠, 고마워. 데려다줘서."
"어. 연락할께."
"응~"


익숙한 목소리가 내 뒤통수를 따라와 귀에 박힌다. 만개한 벚꽃잎이 세찬 바람에 확 갈라지듯, 가슴 속에서 무언가 일렁이는 것이 느껴졌다.


"주혁아, 전화 왜 안 받았어? 술 마셨어?"
"...... 누구야?"


그녀는 내 입김에서 뿜어져나오는 조금의 술냄새까지 알아챈다. 전혀 춥지 않은데도 시뻘개진 내 코끝을 걱정한다. 


"그 새끼, 누구냐고."
"...... 사촌 오빠야. 마침 이 쪽 올 일이 있다고 해서 차 좀 얻어탔어. 그러니까 왜 전화를 안 받어, 너 걱정돼서..."
"그만 해."
"주혁아... 오해야."
"그만 해...!"

  
나는 내 팔목을 붙든 그녀의 두 손을 세게 뿌리치고 뒤돌아선다. 그녀의 울먹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남자는 아마도, 진짜 그녀의 사촌 오빠일 것이다. 술 마시느라 전화를 받지 않은 내가 걱정되서, 이 시간에 집 앞까지 찾아온 것도 안다. 

나는 자취방 앞 구멍가게에서 소주 두 병을 더 사가지고 집으로 들어갔다. 전화기는 몇 번 울리더니 곧 울리지 않았다. 마땅한 안주도 없이 소주 두 병을 해치운 나는, 그날 밤 몇 번이고 토를 했다. 

괴로웠다. 씁쓸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기어올라왔기 때문에 괴로웠다. 그리고, 나같은 놈이 그녀를 괴롭게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웠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 

그만 두겠노라 다짐하고, 전화기를 부여잡았다. 전화기의 1번을 길게 눌러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간은 새벽 세 시였지만, 그녀는 통화 연결음이 두어 번 울리고 나자 냉큼 응답했다.


"주혁아..."
"누나, 누나..."
"술, 많이 마셨어?"
"우리, 헤어지자."
"...... 왜?"


울음 섞인 '왜?'라는 물음에 나는 더 이상 답할 수 없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한 거 있어? 말해 줘..."
"...... 헤어지자."
"박주혁...!"
"...... 헤어져. 제발, 제발 꺼져 줘...!"


술기운에 몇 마디 욕지기를 더 꺼내고, 그렇게 나는 그녀를 잃었다. 




그렇게 며칠간 술병을 앓던 내가 정신을 차린 건 어느 수요일 오전이었다. 창 밖의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길거리에 만발했던 꽃잎들은 이제 조금씩 떨어져 길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나는 떨어져 짓이겨진 꽃잎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생각한다. 사랑도 꽃잎과 같은 거야. 한 순간 아름다울 뿐이지, 금방 떨어져 더럽혀지고 마는 것이 사랑이라고.










어느덧 나는 예비군 4년차 백수가 되어 있었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던 버스 안에서 바라본 벚꽃들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꽃들은, 스물 한 살의 박주혁을 떠올리게 한다. 쓰잘데기 없는 생각에 젖어 사랑을 잃은 후에, 말도 안 되는 허세에 빠져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던 박주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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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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