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새벽이면 떠오르는 이야기
게시물ID : freeboard_113867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중구
추천 : 1
조회수 : 179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5/11/02 03:06:59



 살면서 언젠가 한 번쯤은 사랑이란 감정 때문에 지독하게 앓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성인이 되기 한참 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로맨스 소설과 드라마를 본 나는 그 안에서 보여주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믿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금방 사라졌지만 말이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나는 그 지난해부터 조금씩 힘들었다. 인간관계가 특히 그랬다. 당시 새해가 되던 날 부디 사람에게 받는 상처만큼은 다시는 받지 않기를 바랐다.
 조금은 예민한 상태로 개강을 맞았다. 별 탈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5월, 초여름의 날씨였던 그 달에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첫 눈에 반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그 사실을 알아채고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건 너무도 힘든 일인데 반한다는 것은 즉, 초면에 연애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람을 대하기 힘들어하는 내겐 말이다.

 그런데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다, 나는 저 사람에게 깊게 빠질 것이다―라는 사실이 가슴을 크게 울렸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기분 좋은 고동이 아니라 묵직하게 무언가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저 사람과 친해지지 않으면 인생을 걸고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벌벌 떨며 다가갔다.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그 사람과 웃고 떠들고 있었으니까. 같이 다녔던 동기들이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기에 내가 아닌 줄 알았다며 농담을 던졌다. 나도 당시엔 내가 아닌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그 사람에게 가진 감정은 무거워졌다. 사실 부인하려 했다. 오해일 것이다, 스치고 지나가는 감정일 것이다. 절대로 깊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에 있던 일들처럼 가볍게 지나갈 감정이다, 자신에게 세뇌를 해가며 감정을 부정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은 나를 매질하듯 매섭게 뛰었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심장의 고동이 몸 전체를 울릴 만큼 크게 들렸다.

 지나치게 깊게 빠진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로 예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을 하는 여자란 예뻐지기 마련이라는데 반해 나는 피폐해졌다. 가만히 있어도 명치 부근이 아파와 가슴에 손을 얹어두고 다독였다.
 더 이상 아픈 것이 싫어 차라리 고백을 하고 대차게 차인 후에 포기하는 쪽으로 결심을 했다. 방학동안 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은 편지를 썼다. 지우고, 또 지우고. 글자의 획 하나, 하나에 감정을 담는다는 생각으로 글씨를 썼다. 지금 때에 무슨 연애편지인가 싶겠지만 도무지 그 사람 앞에서 내 감정을 토로할 자신이 없었다.

 다시 개강을 했다. 개강 후에도 두 달을 그냥 보냈다. 그 두 달, 그에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난 학기보다 그는 내게 잘 대해줬다. 여름을 막 벗어난 초가을 날씨 치고는 기온이 찼던 날, 같이 걷고 있을 때 걸치고 있던 외투를 벗어 걸쳐주었던 거나, 그때 나누었던 이야기들은 흔히 말하는 썸 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미친 듯이 행복했다.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사소한 대화, 작은 친절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기대감이란 이름의 풍선은 점점 크기를 키워 터질 것처럼 위태위태해졌다.

 10월 말,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편지를 읽어주길 요청했다. 손이 벌벌 떨렸다. 벼랑 끝에 서있는 것처럼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가 묵묵히 편지를 읽던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마음으로는, 머리로는 거절을 당해도 괜찮다고 그렇게 계속 생각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천천히 파고들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은 듣지 않았지만 결과는 거절이었다. 그리고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나와 친하게 지내던 동기와의 연애를 시작했다.

 풍선은 터질 때 간혹 그 크기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내곤 한다. 내 기대감은 너무나도 큰 소리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다. 나는 웃는 낯으로 동기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내가 그에게 고백을 했다는 것은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으며 그들은 차마 내 앞에서 동기에게 축하의 말을 할 수 없었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나서야했다. 나는 그날 나를 아껴주던 선배 품에서 목 놓아 울었다.

 아직도 그와 있던 일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갑자기 떠오를 때에는 당혹스럽다. 다 잊었다, 정리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기억들이 머리를 스치면 명치가 아리다.
 고작 반 년 짝사랑에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7년 동안의 기나긴 짝사랑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반년의 감정소모가 너무 심했던 탓일까.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도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렸던 때의, 감정소모라는 것은 내가 각종 매체에서 봐왔던 정도보다 훨씬 심하다는 걸 알았다.

 원망도 많이 했지만 완전히 보내야 할 사람이다. 다만 그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당신을 이렇게까지 좋아했던,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지 하고 아주 가끔씩 생각을 해주기를 바란다. 만약 자신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왔을 때 나를 생각하며 당신은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힘들 때를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새벽바람에 문득 떠오른 사람이다. 꽤 된 이야기긴 해도 뒷이야기가 있긴 하다. 정말 오랜만에 그 사람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아니었나보다. 사랑했던 기억, 나 혼자 행복했었던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이 내게 얼른 잊으라고 말했다. 화가 났다. 몰라서 계속 끙끙 앓았던 게 아니다. 잊어야 한다는 건 내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고, 다른 사랑도 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던 것들만 계속 했다. 그런데 결국 다시 떠오르는 것을 어찌 하란말인가. 소식 전해주지나 말지, 내 기억 들춰내지나 말지. 병 주고 위로하고 또 병 주고.

 오늘따라 참 많이 춥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