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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자 게임
게시물ID : sisa_11174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작은방
추천 : 7
조회수 : 42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8/10/16 23: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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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게시판에 이런 글이 있는 것도 좋을 것같아 올려 봅니다. 최근에 제가 쓴 글입니다. 

최근 민주화에 대한 많은 영화들이 인기를 얻었다. 송강호가 출연한 변호인이 그렇고 택시 운전사가 그러하며 1987같은 영화도 모두 천만을 넘어선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이런 민주화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는 중요한 착각을 하기 쉽다. 그것은 민주화나 부당한 권력을 타도하는 길이 타인의 권력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런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부당한 권력은 구분되어져 있고 피지배층은 지배권력에게 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진정한 민주화는 타인의 부당한 권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에게도 저항하는 것에서 나온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에도 주목해야 하지 피해자 프레임에 젖어서 자신은 계속 지적하고 주장하고 요구하면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자명한 사실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실제로 실천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팔꿈치로 나를 치고 지나가면 맞은 사람은 그 사실을 아프게 느끼는데 때린 사람은 그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거나 알아도 사소한 일로 생각하는 경우는 많다. 우리는 그렇게 살려면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병장에게 부당하게 혼나고 와서 이병에게 화풀이 하는 상병처럼 될 수 있다. 상병은 자신을 부당하게 혼낸 병장이 미울 것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지금 이병에게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라는 자각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위선이라고 부른다. 저항은 반드시 용감한 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위선자들도 한다. 화염병을 던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을 자기가 타인에게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저항이 위선자들도 하는 것이라는 점은 지금 권력에게 아부해서 출세한 정치가들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위선이 꼭 보수진영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보수진영에서 활동하는 정치권 인사들 중에 진보진영이나 학생운동의 유명인사로 이름을 날린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망언으로 유명해서 혼수성태라는 별명을 얻은 자유한국당의 원내대표 김성태는 사우디 파견 건설노동자 출신으로 KT 노동조합의 간부에 한국노총 사무총장을 하던 사람이다. 도도맘과의 불륜의혹으로 유명한 강용석은 한때 참여연대에서 박원순과 함께 재벌개혁과 소액주주운동을 했었다. 요즘 정부 문서를 훔쳐서 말도 안되는 폭로전을 펼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심재철은 1980년 서울의 봄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다가 김대중의 지령을 받았다는 허위자백을 한 인물이다. 대표작을 표절한 걸로 유명한 전직 보수국회위원 전여옥은 이화여대 학보사 편집장출신으로 80년 서울의 봄때 학생궐기를 촉구하는 글을 썼었고 자칭 페미니스트로 책도 썼는데 성추행이 난무하는 보수정당의 입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런 목록은 따지고 보면 헤아릴수 없이 길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저항이 곧 민주화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위선에 신경써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위선자가 용납되는 통로는 하나가 아니지만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투덜거리는 사람이 우리 편일 때 그게 좋더라는 이유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어떤 사람은 물건값 흥정을 잘 못하지만 어떤 사람은 물건값을 사정없이 깍는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시장에 가면 물건을 싸게 많이 살 수 있어서 이득이 된다.

그런데 같은 사람이 장사를 한다고 해보자. 소비자가 와서 어느정도 싸게 달라고 하는 거야 인지상정이라고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뻔뻔함으로 물건값을 깍으려고 하는 손님을 만나면 곤란하기 짝이 없다. 이럴 때는 손님의 불평이나 요구에 잘 대처하거나 심지어 손님에게 같은 물건을 비싸고 많이 파는 사기꾼에 가까운 사람이 상술이 능한 사람이라면서 상점의 보물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이것이 현실이며 어차피 현실은 이렇게 깍아달라고 억지를 부리는 사람과 더 비싸게 팔겠다는 상술을 부리는 사람의 싸움속에서 균형을 잡는 거라고 이해한다면 그런 사람은 민주주의니 좋은 세상이니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 사람은 갑이 갑질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을이나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현실속에 젖어든다. 그래서 본인이 어떻게 사는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끊임없이 주변 사람에게 불평하고 피해자인척 굴면 사는 게 편해지니까 그렇게 살면서도 내가 무슨 잘못을 한다는 생각도 없는 것이다. 사람이 다 그런거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러니까 독재자가 들어서서 불법적 권력을 휘두를 때는 고개를 바짝 내리고 지금도 좋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 정말 시민들을 위해서 살겠다는 정치가가 나타나면 완전히 난장판을 만든다.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보면 마치 1끼 먹으면 배가 부른데 3끼 먹으면 배고파 죽겠는 것같은 상황처럼 보이게도 된다. 이것은 독재나 부패가 좋다는 것인가? 청와대 돈으로 비아그라사고 대통령이 근무는 안하고 계속 미용시술이나 받으며 처박혀 살면서 측근들이 설치던 시대가 좋다는 것인가? 문재인정부들어 사병대우가 좋아지니까 이번에는 최저시급계산해서 주지 않으면 군대 안가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는 건 뭔가. 그럼 옛날에는 어떻게 살았나?

불평하는 위선은 이밖에도 무수한 문제를 만든다. 사회적 소통은 당연히 어려워 진다. 얼마전에 최순실이 검찰수사를 받으며 민주주의를 요구해서 화제가 된적이 있다. 최순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니 이 세상에 민주주의가 없어지는 것이다. 배고파서 죽겠다는 사람에게 나눠주려고 밥을 가지고 갔는데 너도 나도 나야 말로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 첫째로 진짜로 배고픈 사람이 밥을 받을 수가 없고 둘째로 어차피 모두가 거짓말을 하니 밥을 나눠주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해서 밥을 안나눠주겠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서로의 메세지를 해석할 수가 없다. 

불평하는 위선은 좀 더 작은 개인적 삶에서도 문제를 가진다. 세상에 대해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불평하는 것에만 익숙해지면 결국 자기 삶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만 하게 되기 쉽다. 우리 나라는 못난 나라고, 한국인은 못난 사람이다에서 시작해서 우리 집은 형편없고 내 자식이 형편없으며 내 남편도 형편없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3천만원짜리 차를 가지면 6천만원짜리 차를 가지고 싶고 3억짜리 집을 가지면 15억짜리 집이 아닌 것이 불만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의 탓인 것이다. 그 다른 사람은 가족의 구성원이나 친구에서 정부에까지 이른다. 

세상에는 이렇게 항의하고 남탓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같지만 앞에서 말한 바로 이런 단점들때문에 이런 주인의식없는 민주주의는 결국 무질서와 독재를 부른다. 독재자가 폭력을 행사해야 질서가 생긴다고 사람들이 믿게 만든다. 

우리는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나와 타인에게 같이 적용되는 상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위선이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윤리적인 비판을 할 때는 모두가 천사가 따로 없는데 자기 자신이나 자기 패거리에게 윤리적인 비판을 할 때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남자와 여자, 회사와 노동자, 시민과 시청, 선생님과 학생, 유권자와 정치가로 편을 갈라서 비판을 할 때보면 일관성이 너무 쉽게 실종된다. 사람들은 금새 모두가 전력을 다해 불평을 하면 저절로 시장의 균형이 생기는 그런 곳이 민주사회인것처럼 행동한다. 그런 곳은 지옥이다. 민주사회가 아니고. 그런 태도때문에 독재가 다시 오는 것이다. 

일전에 돌아가신 노회찬 의원만 해도 그렇다. 그를 수사하고 비판하던 세상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다른 사람에게는 무슨 조선시대 사대부가 예절 논쟁하듯이 끝없이 원론적으로 비판해도 될까? 언제까지 부자로 호화호식하는 정치가들이 피땀흘리며 가난하게 희생하며 봉사하는 정치가들에게 부패했다고 욕하는 시대를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필요한 것은 스스로의 권력을 자제하는 것이다. 의사단체는 의사 스스로 자기 이익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선생님은 선생님 스스로 자기 이익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하고 종교단체도 그렇고 여성단체도 노동단체도 그렇다. 여성이라고 해서 노동자라고해서 모두가 같은 여성이고 노동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강성발언을 하는 사람이 등장했을 때 그 사람을 여성이나 노동자가 말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억압이나 독재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언론들 하는 꼴을 보면 웃기지도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때에 정부 칭찬하기 바빴던 언론들이 새정부가 들어서면 거만하게 군다. 그런 태도를 기자가 스스로 비판하고 억압시키지 않고 타인이 하면 그건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되기 쉽다. 이 나라에 사는 많은 노동자가 고생을 하는데 노동단체가 비정규직을 차별하고 많은 소비자들이 고생하는데 자신들의 높은 임금만 정당화한다면 결국 모두와 모두가 싸우는 세상을 만들자는 말밖에는 안된다. 

우리는 흔히 이런 현실에 대해 권력자들의 탓을 한다. 그러니까 언론이나 정치가들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분명 일정부분 옳다. 더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위선적이니 세상에 위선이 가득 찬 것이다. 하지만 민중의 문화때문인 것도 있다. 다수파가되고 세를 얻으면 은글슬쩍 소수파를 눌러버리고 그런 일이 없는 척하는 둔감함 때문도 있다. 우리는 이런 위선자게임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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