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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계절, 나와 내 친구 둘은 배드민턴 라켓을 챙겨 들고 동네의 한 배드민턴 연습장으로 향했다. 일주일 뒤에 수행평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두 녀석은 다 나와 다른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한 녀석은 과일집 아들이요, 다른 한 녀석은 집에서 피아노 과외를 하는 집 아들이다.
중학교때 공부를 곧잘하던 나는 참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솟아 오르는 여름 날씨에도 친구 둘을 기여이 꼬셔다가 셔틀콕을 쳤다.
한 십분이나 쳤을까? 갑자기 입구 쪽을 향해 서 있던 과일집 친구가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그래. 배드민턴 치러 왔니?” 인사를 받은 중년 남자가 내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인사를 받은 그 대상이 과일 집 손님이며, ‘선생님’이란 표현은 그저 존칭으로 사용했겠거니 생각하며 그 자리에 눈을 끔뻑거리며 서 있을 뿐 이었다. 그러자 중년 남자는 멀뚱히 서 있는 나와 피아노집 친구를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흘기더니, 이내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그럴 수 있다는 듯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얘들아 안녕? 나는 이 근처 OO고등학교 사회 선생이야.” 남자가 말했다.
선생은 자신을 소개할 때 본인의 이름을 말하진 않았다. 그러나 우리 동네에서 OO고등학교는 근처 남자 중학생이라면 십중 팔구가 진학하는 학교였다. 때문에 그의 발언은 자신이 꽤나 높은 확률로 몇 년 사이에 마주칠 수 있는 존재임을 의미했고, 무엇보다 그의 표정은 우리에게 인사 예절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 나와 내 친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응 그래. 반갑다. 재밌게 치다 가라.” 그는 모호한 미소를 띄며 인사를 받았고, 이내 다른 코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것이 A선생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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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나는 당연한듯 OO 남자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것은 커다란 우연따위가 아니었다. 물론 2, 3지망은 다른 학교를 쓰긴 했지만, 그 동네 행정권에서 배정할 수 있는 학교는 OO 고등학교 뿐이었으니, 다른 지망은 그저 빈칸 채우기일 뿐 이었다. 과일집 친구와 피아노집 친구 역시 OO 고등학교 학생이었고, 나는 과일집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다. A선생의 존재는 2년 이라는 시간과 새로운 세계에서 강해보여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자연스럽게 희석됐다.
새 학교 새 반에서 얼마나 떠들었을까. 갑자기 교문이 드르륵 열렸다.
A선생 이었다. 선생은 배드민턴장에서 보았던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교단을 올랐다. 교단에 올라 스윽 한번 아이들을 훑는 선생. 아이들은 언제 그렇게 센척 했냐는 듯 선생의 눈길을 피했다. 그 시선이 앞자리에 앉은 내게로 날아왔다.
“어이, 소고? 이렇게 만날줄 몰랐지?” 그는 웃으며 공개적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A선생은 웃을때 개구진 소년 같았다. 눈빛은 반짝거렸고, 입은 정말로 행복하다는 듯 광대 끝에 올라가 걸려있었다. 교단에서 십여 년을 사내들과 해댄 세월이 가져다 준 여유였다. 그는 ‘니들이 3년 동안 무슨 상상, 무슨 짓을 해도 다 내 손바닥 안이다’라고 눈빛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손오공을 손바닥 위에 얹은 부처님의 미소가 이렇게 여유로울까. 나는 생각했다. 그는 긴장한 표정과 센척이 반반 섞여 있는 아이들의 눈빛에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A선생은 매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몸에 시퍼렇게 멍 자국이 들때까지 극악무도하게 학생을 채벌하는 선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본인의 다리 만큼 뚝 잘라낸 노란색 PVC 몽둥이(우리 학교에선 이 몽둥이를 단무지라 불렀다)를 분신처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을 훈육했다. 교과서는 놓고 다녀도 '단무지' 만큼은 분신처럼 그와 붙어 있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적게 맞은 친구가 50대 정도를 맞았던 것 같다. 그는 지각에도 매를 들었고, 수업 중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조는 친구에게도 단무지 맛을 선사했다.
그 세기가 딱 적당했기에 (물론 맞을땐 많이 따갑고 아프다) 아이들은 그것을 폭력이라 생각지 않았고, 어느 정도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 수긍하며 받아들이곤 했다. 무엇보다 그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그렇게 인식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공부를 잘하는 친구와 소위 말하는 '일진'들을 편애하며 훈육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진 친구도 지각하면 다섯 대. 전교에서 3등 안에 들던 우리 반 일등도 지각하면 다섯 대였다.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져서 매를 맞게 될 때에도, 그는 학생들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보다 떨어진 만큼만 엉덩이를 때렸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한 녀석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이 맞기 싫어서 부린 잔꾀든 그것이 아니든 간에, 그는 학생들이 약속한 자기의 모습을 벗어난 경우에만 단무지를 휘둘렀다.
그가 언젠가 종례시간에 담배를 피우는 녀석들 이름을 주루룩 읊었다.
“C, D, E 그리고 F. 니들 담배 피지?” A선생이 빙글빙글 웃으며 공개적으로 물었다.
녀석들은 서로 알듯 말듯한 눈빛을 교환하다가 해봐야 통하지 않는 거짓말임을 이내 눈치채곤 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자백했다.
“다른 선생 눈에 걸리지 말고, 성장기에 키 안크니까 적당히 해라. 종례 끝.”
A선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아이들을 방관하거나 훈육을 귀찮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돌고 돌아 들은 소문에 의하면 담배를 피우던 친구가 시내에서 흡연을 하며 걷던 중 A선생을 만난 적이 있었단다. 고개를 얼른 돌렸지만 그는 빙글빙글 미소를 띄며 그 친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도망쳤지만, 며칠 뒤 A선생이 자신을 따로 부르더란다.
“맞고 싶은 대수를 말해.” A선생이 말했다.
그리고 담배피던 친구는 순순히 엉덩이를 댔다고. 몇 대를 맞았는지는 소문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체육복을 갈아입던 중, 그 친구의 허벅지 위로 새파랗게 주룩주룩 그어진 줄무늬를 보며, 우리는 그 소문이 사실임을 암암리에 확인했었다.
A선생은 공부를 하는 친구들에게도 무심하지 않았다. 사립 고등학교 교무실에는 으레 여러 학습지 외판원들이 샘플로 두고 간 공짜 문제집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런 문제집들 중 도움이 된다 싶은 녀석들을 추려 공부를 하는 모두에게 툭툭 던져주곤 했다. 여기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이란,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적은 조금 떨어지지만 노력을 멈추지 않는 성실한 아이들을 포함하는 말이다. 보통 지방 사립고 선생이란 실적때문에 성적이 어느 정도 되는 녀석들/ 부잣집 자식들을 뽑아 특히 예뻐하곤 하는데, 그는 잘하고 돈 많은 집 자식들보다는 노력하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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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한 수준의 에피소드인 것 같다.
몰론 그는 내게도 각별한 사람이었다. 내게 A선생은 지금까지도 담임선생님 또는 사회 선생님이라기보단 배드민턴을 치는 아저씨 이미지였다. 나는 그를 스승이라고 생각하기보단, 내 학습을 지도해주는 ‘동네 아저씨’정도로 그를 생각했었다. 이것이 '선생님'보다 가까운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아저씨는 내게 가까운 존재였으며, 가끔 몽둥이로 때리고, 니가 하는 일은 다 내 손바닥 안이지. 라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A 선생의 최근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스물 일곱 반창회- 치킨집에서였다.
OO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스물 일곱 사이에 나는 군대를 다녀왔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학교 근처에 살던 우리 가족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했고, 나는 서울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간간히 고향에 가곤 했으나, 고향집은 OO 고등학교를 지나치지 않을 곳에 위치로 이사를 했고, 고3 담임 선생과 한차례 진하게 성장통을 겪어낸 탓에 일부러 학교를 찾아간다는 것은 시간이 있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OO 고등학교와의 추억은 별로 없는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친구 입에서 예기치 않게 A선생의 소식을 들었다.
“그거 알아? A선생 학교 그만 뒀어.” 친구가 말했다.
“정말이야? 왜? 사고쳤어?”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우리 학교에서 선생이 학교를 그만둔다는 사실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낸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그 학교 선생이 되기 위해서 이사진들과 학교 발전기금 기부금을 조정하고, 정년이 지난 선생들 중 몇몇이 이사실을 들어갔다 오면 도서관 관리, 컴퓨터실 관리 등의 직책을 맡곤 했다. 그런데 이런 고등학교에서 정년도 까마득한 선생이 퇴직이라니. 무언가 이상했다.
“몰랐어? A 선생 학교 그만둔거 소문 꽤 크게 났었는데.” 다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진짜? 왜?”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그 선생. 자기 가정 버리고, 바람났다나봐.” 친구가 말했다.
처음 화두를 꺼냈던 친구가 앞의 말을 이어 받는다.
“듣기로는 한 학생 학부모랑 그랬다는데? 과부. 그러니까 편부모인 학생 어머니랑 그랬다고 하더라.”
나를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선생이다가 이제는 'A 아저씨’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그들에게 A '아저씨'는 지나가는 가십거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에게 수업을 듣지 않았거나 그와 인연이 별로 없던 친구들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바람을 피우는 사람' 그러니까 객관화된 삼자.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나는 그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런 사람은 사람 이하, 그러니까 ‘무슨무슨 동물의 새끼’라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파렴치한 존재라고 학습하며 자랐다. 주입식 사고에서 벗어나 내 사고로 대어 봐도, 그런 년/놈들은 가정을 파괴하는 천하의 파렴치범들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왜 스물 일곱의 청년 인생에 바람피다 인생을 망친 첫 지인이 A선생인 것일까.
아니, 한때 ‘선생’이라 불리던 A 아저씨가 그 대상이라니.
나는 스스로 돌아봐도 조금 놀랐던 것 같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시간이 많이 남아 고향에 내려가면 ‘그에게 만큼은 인사하러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나였다. 그런 내게 들린 소식은 그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이며, 그를 만나면 부정한 사람으로 소문이 날 수도 있다는 친구들의 조언이었다.
그와 보낸 나의 학창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불장난이 대체 뭐길래. 하긴, 그는 남자가봐도 매력적인 중년이긴 했다. 살면서 그런 유혹이 그를 빗겨갈거란 생각은 안드는 그런 아저씨였다. 다만 내가 그를 예단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유혹 앞에서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였다. 사건 이전에 누군가 내게 그에 대해 이러한 물음을 던졌더라면, 나는 아마도 '그는 바람을 피지 않을거야.' 또는 '그는 바람을 필 거야.’ 사이에서 답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선택이 바람으로 드러난 것을 인지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느라 '스스로 놀랐다'고 생각한 것 같다.
마침내 A 아저씨가 바람을 피운다는 선택을 했고, 그것이 이 자리의 5분짜리 가십으로 마무리 되었음을 마침내 받아들였을 때,
나는 그를 마음속에서 영영 떠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