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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1
게시물ID : freeboard_111820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돌싱
추천 : 0
조회수 : 50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0/21 21:20:21
저는 돌싱입니다.
아이가 둘 있었구요 많이 사랑했었습니다.

저의 이혼담을 들려드리고 싶어서 용기내어 글을 올려봅니다.
총 38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적당한 길이로 짤라서 여러번에 걸쳐 올리겠습니다.
이 글은 원래 저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이며,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 오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던 나의 아들 딸들아
나중에 커서 이 못난 애비를 이해해주고 용서해주렴... 미안하다.




1- 첫 만남

 

그녀와 나의 첫만남은 20017월이었다. 나는 그때 17살이었고 Westlake boys high school에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C양과 사귀고 있었다. 내 첫사랑이자 모든 첫경험을 그녀와 함께 하였다. 많이 사랑하였고 아직도 간간히 그때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는 M군과 사귀고 있었고, M군과 C양이 서로 친한 사이였다. 이 둘의 소개로 그녀와 나는 서로 알게 되었으며 매일 만나서 놀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유학생인 M군은 나와 동갑이며 영주권자인 그녀는 한 살 어리다. 그녀를 알게 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 M군은 그녀를 데리고 가출을 하였다. 이유는 그분(그녀의 생물학적 부)의 폭행 및 욕설에 지쳐서 가출했다고 했었다. 몇 주간 가출도 하고 어릴 적 하면 좋지 않은 행동들도 쉽게 하였다. 그들은 그녀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분의 돈도 훔치고 담배도 몇 보루씩 훔쳐 달아나는 등 즐거운 10대를 보냈었다. 그녀의 첫경험이 M군인것도 알고 있다. 얘네 돈 없어서 타카푸나 비치 앞 공중화장실에서 신문지 덮고 잔 적도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녀 때문에 양귀인가 량기인가 뭔가하는 놈을 불러내서 때린 적도 있다. 양귀인가 량기인가하는 놈이 그녀를 따먹었다고 6개월동안 소문내고 다녔다고 했다.. 그녀에겐 M군이 첫경험이었고 그놈 불러다가 얘기하다가 M군이 때리는데 이놈이 자꾸 피했다. 그래서 내가 가서 좀 줘팼는데 이 4개 빠졌다고 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다. 왜냐면 나중에 치료비 달라고 연락왔었는데 또 한참 후엔 삼촌이 이가 자라는 약을 개발해서 이 약 먹으면 이가 다시 난다고 했었다. ㅋㅋㅋㅋ 그 약 나도 좀 줬으면 좋겠는데.. 아는 동생 줘야하거든.. 이 일 때문에 20명한테 끌려가서 맞았었다. 그래서 내가 XX끼들아 한 명씩와라고 했는데 진짜 그 날 이후 주말마다 싸우자는 전화가 왔었다. 맞짱 4번인가 5번 떠서 한번도 안지고 다 이겼다. 물론 나 + 여자 4~5명이 같이 갔었고 상대는 남자 20명씩 왔었다. 암튼 뭐 그런 적도 있다고 얘기하는거다. 그녀 때문에 17살 뉴질랜드 인생이 참 파란만장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1년간 만나던 C양과 롱디로 인해 헤어지게 되었으며 M군과 그녀는 헤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였다. 이때마다 MSNMIRc로 연락하며 연애상담을 하였다. M군이 바람을 폈느니 어쨌느니.. 싸웠는데 뭐가 어쩌구 저쩌구.. 사소한 얘기부터 진지한 얘기까지 하였었다. M군은 실제로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고, 현재는 그 분과 결혼하여 딸 하나 낳고 잘 키우고 살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첫 사랑을 잃었다. 근데 난 M군 이해해.. ㅋㅋㅋ 그녀 성격이 좀받아주기 힘든 편이다. 들은 얘기로는 그녀는 2번정도..? 이런식으로 버림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성격이 좆같으면 만나는 남자마다 다 그 모양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 M군과 그녀 그리고 나를 헤어지게 만들었던 장본인 B군이 나를 격렬하게 꼬시기 시작하였다. 메이플스토리를 같이 하자고 어찌나 꼬셔대는지.. 어쩔 수 없이 게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때 그녀의 동생 C군을 알게 되었다. 이 땐 이 아이가 한국어를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몰랐었다. 여튼 이 녀석을 게임상에서 꾀나 챙겨줬었다. 해킹당했을 때마다 돈도 주고 캐시 아이템도 선물해줬던 기억이 난다. 이 아이가 나중에 마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마약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2우리 20대 초반 이야기

 

뉴질랜드 유학을 다녀온 이유로 한국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하게 되었다. 흔히들 말하던 복학생이었다. 그땐 왜 그리 자존심이 쌨었는지.. 1년 어린 친구들과 같이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나도 창피했고 대우받고 싶어했었다. 그래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왕따였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내가 그냥 전교생을 왕따시킨거였다. 내가 안놀았거든!!!! 뭐 그러다보니 그닥 딱히 할게 없어서 공부 좀 하고 게임 좀 했었는데 2학년 1학기까지 평균 85~94정도 유지했었고 제일 잘 했을 때는 전교 30등까지 했었다. 이러면서 고320살이었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 방황을 하기 시작하였다. 늦은 사춘기가 19살에 왔다. 2 2학기부터 고3까지 열심히 놀았다. 전교 30등까지 했었는데 나중엔 480명중에 470등도 해봤다. 시험보러 첫날갔다가 하나도 몰라서 다음날부터 그냥 안갔다. 어차피 모르니까… -_-;

이렇게 방황을 하다가 20살 중순에 메이플스토리에서 Y양을 만나 4년간 사겼다. 군대 2년 다 기다려줬는데 미안하게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뭐 간단했다. 이 여자가 날 만나는게 돈 때문에 만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Y양이 말실수를 하게 되어 느낌이 확실해졌고,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으면서도 내 아이인척하고 병원도 같이 갔었기에.. 헤어졌다. 뭐 기다려준건 고마운데 지 할거 다 하면서 기다려주면 뭐.. 그닥.. 미안할건 없지 싶다. 많이 미안하고 사랑했었다. 내 애가 아닌거같은데라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냥 헤어지자고 했다. 그리고 집안형편이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Y양은 나에게만 기댈 뿐 스스로 아르바이트 하나 하지 않고 2년을 기다렸다. 4년을 만나면서 그녀가 쓴돈은 다합해서 158천원아마도 착오가 있을 수도 있긴한데 그래바야 몇만원 안할꺼다. 10만원 모텔비, 58천원은 밥 2번 사준 금액이다. 원래 이렇게 돈 가지고 째째하게 안구는데 얘가 돈이 너무 없다보니 몇 만원 쓰는게 감동이었던 시절이여서.. 다 기억한다.

나는 이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 전역까지 하게 되었다. 이 때 그녀는 한국에 있었다. 부모님께서 그녀 15살인가 16살쯔음에 이혼을 하셨고, 이 때부터 그분께선 이년저년 집에 막 데려와서 살게했다고 했다. 지금 사는 아줌마가 7번째 아줌마이다. 그러다가 3번째였나 4번째 아줌마랑 사이가 너무 틀어지다보니 그분과도 사이가 안좋아져서 중국에 계신 어머님께 갔다고 했다. 그러다가 동생들은 1년정도 있다가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가게 되었고 그녀는 한국에 외할머니댁에서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뭐 이때 양다리도 걸쳐보고 3다리까지 걸쳐봤다고 하던데.. 사실인진 모르겟다.

그녀가 한국에 와있을 때 나랑 전화통화 참 많이 했었다. 그냥 알고 지내던 동생인데 군에서 유일한 낙이었던 전화통화와 편지.. 여자친구와도 많이 즐겼지만, 그녀와도 간간히 주고받으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휴가나가면 한번 보자고 했었지만 Y양과 만나고 있었기에 그녀를 만나지 않았었다. 글구 딱히 이쁘지도 않아서.. 보고싶지도 않았었ㅋㅋㅋ

 

3유학결정

 

군 전역 후 세상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호주 미국 뉴질랜드 일본 5개국밖에 가보지 못하였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유럽. 혼자 100일 배낭여행을 하였다. 원래 수시로 대학을 입학했었고 2007425일 전역이라 1년 정도를 쉬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 사이에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하고 싶었다. 유럽 여행을 다녀온 후 간단히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부도 하며 두 달 정도를 쉬었다. 10월쯤이 되자 다시 여행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호주와 뉴질랜드였다. 원래 아프리카 여행을 하려고 했었는데 위험지역이라고 국가에서 정해놓은 곳이라 포기했다.

뉴질랜드엔 어릴 적 친구들이 아직 몇 남아있었고, 어릴 때라 오클랜드에서만 지냈었는데 안가본 곳들을 가보고싶었다. 우선 오클랜드에 도착하여 첫사랑인 C양을 먼저 만났고, 그 이후에 그녀를 만났다. 2장에서 얘기했던 Y양과는 전혀 달랐던 그녀는 더치페이를 하자고 했고, 이 곳 저 곳 여행을 할 때 필요할 거라며 이것저것 많이 챙겨주었다. 4년동안 누군가를 챙겨주기만 했고 내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여자와 헤어졌더니.. 나를 챙겨주던 그녀에게 호감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알던 내 친구의 전 여자친구가 아닌 그냥 여자로 보였나보다.

그녀와 함께 여러 곳을 함께 여행하였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오래된 추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녀가 나는 좋았다. 동생이 둘이다보니 남 챙기는 것을 잘하나 싶었고 참 고마웠다. 배려라는 것을 느껴본것이 처음인 것 같았다. 3주 정도 같이 지내다보니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생겼었고, 사귀자고 하였지만 그녀는 처음에 거절하였다. 뭐 어차피 한국에 돌아갈 사람인데 왜 사귀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땐 이미 섹스를 한 이후였고, 그녀의 집에서 자다가 그분께 걸려서 곤란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를 놓히기 싫어서 그녀에게 말했다. 한국에 돌아가면 오클랜드 대학교 입학 할 준비를 해서 최대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하였다. 그러니 믿어달라고.. 너 하나만 보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결국 그녀는 나를 받아주었고인연이자 악연의 시작이 되었던 시점인 것 같다. 그 후 2주간 남섬 여행을 하고, 호주로 넘어갔다. 그녀가 너무 보고싶었고 호주여행도중에 무작정 뉴질랜드행 비행기 티켓과 선물을 준비하였다. 10여일간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었고, 열정적이였으며 격렬했었다. 누가 보아도 뜨거운 사랑을 했었던 것 같다. 이 때 그녀의 친구들도 몇 보게 되었다. 이 때 알게 되었던 J양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뉴질랜드 최고의 정신병자는 그녀이고, 그녀가 가장 좋아한다던 두번째 또라이였다. J양의 일화는 나중에 얘기하겠다. 이년 정말 미친년이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서 유학원을 돌아다녔고, 3주동안 공부한 끝에 ACG 입학 허가를 받게 되었다. 많이 기뻤다.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기에 했던 약간은 무모해 보였던 약속을 지키게 되었고 어릴 적에 꿈꿔왔던 오클랜드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너무나도 설래였다.

 

4술버릇

 

나는 뉴질랜드에 가기 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었다. 맛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술을 왜 먹는지 이해가 안됐다. 그녀와 처음 소주를 마신 날 나는 필름이 끊겨서 테이블에 엎드려 잤다. 알바니 어디선가 밥을 먹으며 소주를 시켰는데 둘이 2병을 다 먹기전에 나는 필름이 끊겨서 잠을 자버렸고, 그녀는 혼자서 소주 한 병 더 시켜서 마셨다고 했다. 내 주량은 소주 한병도 안됐었다.

유학결정이 난 이후에 처음 지내게 될 곳을 그녀가 알아봐주어서 쉽게 정착 할 수 있었다. 그녀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땐 친구도 없었고, 입학 전이여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ACG에서 파운데이션 코스를 다니는 동안 술을 참 많이 마셨다. 그녀의 아는 오빠들이었던 사람들은 나와 쉽게 친해졌고, 일주일에 7번정도는 술을 마셨다. 술을 싫어하던 내가 술을 마신 이유는 단 하나였다. 항상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던 내가 혼자 지내려니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술을 많이 마시면 아무런 기억없이 잠들수 있어서.. 술에 많이 기대었었다. 외로워서 잠을 못자니까.. 술을 그렇게 퍼마셨다. 몇 달이 지나자 알코올 의존도가 너무 높아져서 알코올중독 초기증상을 느꼈었다.

친구들과 마시며 술을 배웠고 술에 취하면 그자리에서 뻗어 자버리거나 계산하고 몰래 집에 가버리곤 했다. 내 주사는 정말 아름다울정도로 깨끗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술버릇이었다. 술만 마시면 여기저기 토해대고 걸어가다가 오줌싸버리고 나한테 욕설은 쉽게 했던 그녀의 술버릇이 너무나도 지긋지긋했다. 너무취해서 자취방에 데려와서 같이 잘 땐 2번중 1번은 침대에서 토를 하던 오줌을 싸던.. 역겨운 술버릇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미안해할 것 같아서 티 내지 않고, 혼자 다 치우고 싯기곤 했다. 술취해서 하는 말들 또한 나를 너무 힘들게 했었고, 나를 무시하는 말투와 구속하려는 그녀가 너무나도 싫어졌다.

그래서 약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다. 어느날 내가 말했다. 너 오늘 술마시지마 나 혼자 취할 테니까 너도 한번 겪어봐. 평소에 필름 끊길때까지 술을 안마시던 내가 그날은 정말 많이 취했고, 이 날 이후로 매일 술을 마신 것 같다. 잠을 쉽게 자더라고.. 기억없이.. ㅎㅎ 암튼 그날 꼬장부린다고 일부러 술마셨는데 뭔 꼬장을 부렸는지 기억도 안나고.. 그냥 얌전히 집에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일부러 폭음을 하고 일부러 실수를 하려했었다. 그녀의 술버릇에 맞불을 놓아 고쳐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 술버릇이 너무나도 안좋다…. 최악이다.. ㅠㅠㅠ

암튼 나의 고약한 술버릇은 그녀의 술버릇을 고치려 시도했다가 내 술버릇이 그녀와 닮아져버렸다 ㅋㅋㅋㅋㅋ 젠장.. 그냥 이 때 헤어졌어야했는데굳이 희망을 갖고 고쳐보겠다고 까불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 내인생이 꼬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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