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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이 저지른 잔혹한 성폭력 범죄 일부가 국가에 의해 공식 확인됐다.
그동안 보도된 계엄군에 의한 성폭행과 성고문 등으로 '승려가 된 열일곱살 여고생'과 '짓밟힌 스물세살 대학생' 사연 등의 사례가 모두 인정됐다.
31일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80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의 성폭행 범죄는 17건이다.
조사단은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5월 5·18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증언과 보도 내용 등이 모두 포함됐다"고 밝혔다.
뉴스1은 80년 당시 광주 J여고 학생이던 A양(당시 17세)과 K여고 3학년이던 B양(당시 18세), 회사원 C씨, 30대 초·중반의 여성 2명, 그리고 계엄군에 붙잡혀 고문 후 성폭행 당한 김선옥씨 등의 사연을 공개했다.
여고생 A양은 80년 5월19일 오후 4시쯤 광주 남구 백운동 인근 야산에서 계엄군 3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A양의 사례는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보관 중인 광주지검의 진술조서에 나와 있다. 진술조서는 1996년 1월6일 '5·18 진상규명 공동대책위'가 A양의 얘기를 전해 듣고 광주지검에 공식 수사를 요청해 나온 자료다.
자료를 보면 A양은 5월19일 오후 2시쯤 학교에서 조기 하교한 뒤 집으로 걸어가던 중 북구 유동 삼거리 인근에서 군인 3명에 의해 군용차량에 강제로 태워졌다.
현장에 함께 있던 30대 초·중반 여성 2명도 같이 끌려갔다. A양 등은 "내려 달라"고 울며 애원했지만 계엄군들은 총을 들이대고 "조용히 하라"며 겁박했다.
군인들은 차량 덮개를 씌운 뒤 1시간 가량 이동해 남구 백운동 인근 야산으로 끌고가 성폭행했다. 피해 여성들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돌아온 것은 계엄군들의 무차별 발길질과 주먹질이었다.
A양과 여성 2명은 계엄군이 떠나자 각자 흩어져 하산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A양은 자신이 당한 피해를 어머니에게 알렸고 어머니는 대성통곡하며 A양을 돌봤다고 진술서에 적혀있다.
하지만 A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집 주변 인근 야산을 홀로 오가며 잠을 자고 오는 등 정신분열증세를 보이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정수만 전 유족회장은 "A양은 불안공포증이 심해져 정신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다 나중에 절에 들어가 여승이 됐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A양과 함께 끌려갔던 30대 초중반의 여성 2명에 대한 행방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K여고 B양은 80년 5월19일 광주 동구 서석동 조선대 부근에서 친척을 찾으러 나섰다가 계엄군에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B양은 성폭행을 당한 후 정신분열증세를 보여 1985년 전남의 모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듬해 퇴원했으나 끝내 분신 자살했다.
당시 B양의 어머니는 딸의 사연을 전하며 "강간 당한 여자의 처녀막을 회복할 수 있느냐. 악마가 짓밟았다"고 한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80년 당시 회사원이었던 C씨는 5월21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붙잡혀 계엄군에게 심한 구타와 함께 성폭행을 당했다.
C씨는 '5월 광주'와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발작 증세를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병사했다.
B양과 회사원 C씨의 사례는 정 전 유족회장이 1980년대 중반부터 광주를 비롯해 전국의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여성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5·18 피해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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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네이버 댓글에 딸린 저 많은 추천수는 결코 자연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추천수 조작이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