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일단 시장에 나오면 어떠한 방식으로 재 해석되던간에, 원작의 '품위'를 고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문화가 바로 팝컬쳐고 이러한 많은 문화들이 각기 다르게 재 해석됨에 따라 조금 더 풍부한 컨텍스트를 지닌 작품이 되기 마련입니다. 문학 또 한 마찬가지죠.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지 않고 문학을 해석하려 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주관적인 시선을 통해 해석되어야 하고, 애당초 그것을 재 해석하는데에 있어서 당연히 재 해석자의 생각이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어떠한 대상이던간에요.
누군가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고 어릴적의 상처를 치료 했을 수도 있고, 작가가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려 냈을 수 도 있죠. 그리고 그것을 출판 시키기 위하여 엄청난 고생을 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것이 문학이나 예술을 해석하고 재 창조함에 고려할 만한 항목에 들어가야 하냐? 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죠. 심지어 작가 그 자체도, 이미 시장에 나온 예술은 당연히 상관하지 않는게 맞는 겁니다.
그렇기에 이번 출판사의 제제에 대한 재 창작의 불만, 그리고 제제에 대한 변명은, 정말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적어도 출판사는 제제에게 입혀진 섹슈얼리티가 불편하다. 정도의 말은 할 수 있었다고 보지만, 교활함과 제제의 성격에 대한 해석의 제시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이죠. 작가가 그런 말을 해도 옳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출판사가 문학의 가이드를 제시하고 그것에 맞추어서 해석하지 않는것이 모두 다 '틀리다' 라고 말하는 상황인데요. 개인적으로는 제제에게 아이유가 말하고 있는 제제에게 씌어진 섹슈얼리티 또 한 비난받을 만한 항목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5살 짜리에게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말할 수 있냐.' 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제는 문학에서 상징이고 이 상징을 통해 다른 상징을 덧씌우는 건 필요에 따라서 섹슈얼리티 또 한 포함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자면 제제는 5살 짜리 꼬마가 아니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상징 체계이고, 섹슈얼리티는 단지 '야한 것, 외설적인것,' 이 아닌 섹슈얼리티가 가지는 상징의 덧씌움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롤리타, 혹은 문학의 롤리타가, 어떤 논쟁적인 이슈는 있을 수 있지만 문학과 예술로서 인정 받는 것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사태가 조금 과하다고 봅니다. 특히 아이유의 롤리타 컨셉은 대중문화 이긴 하지만 예술의 영역에 걸쳐있는 문화가 이정도 표현도 못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