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작을 지시한 것이 맞는가. 그리고 난자 개수가 틀린 것에 대한 해명은. ▲어느 일을 할 때 구체적인 사항까지 지시하는 성격이 아니다. 큰 틀만 정해주 고 거기서 나오는 최종 데이터만 받아보는 식이다. 어쩌면 과학자로서는 지적을 받 아야 하는 결점이 있는 성격일 수도 있다. 무엇을 가지고 DNA를 검사하라고 할 정도 로 모든 사안에 대해 꼼꼼히 챙겨오지 못했다. 대게 어떤 파트에서 일을 하면 그 내용을 받아보기만 했다. 2천여개의 난자가 공급됐다는 것은 보고서를 받아 보고 나서 알았다. 이를 총체적으로 파악한 바가 없 었다. 2002년부터 2004년 초반까지 사용된 난자 기록은 유영준 전 연구원이 모든 기 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논문에 나와있는 난자 사용개수와 다른 점은 총괄 책임자로서 내가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실험에 사용된 것보다 더 많은 난자는 예비 실험 단계에서 조건을 위해 사용되는 숫자가 많다. 김수 연구원이나 박선호 연구원 도 있지만 사람의 난자는 매우 독특한 성질이 있다. 어떤 난자는 세포질이나 핵 자 체가 빠져 나오지 않는다. 35개 난자를 받았을 때 난자 전체가 삶은 계란처럼 딱딱
해 단 한개의 세포질도 꺼내지 못한 경우도 있다. 가져온 난자 중에서 쓸 수 있는 것들은 일정 부분 한정돼 있다. 2천개 난자 중 실제 사용된 난자는 논문에서 나온 난자의 두 세배는 아닐 것이다. (김수 연구원) 논문의 데이터는 속인 것이 아니고 논문에는 의미있는 데이터를 넣는 것이다. 여러가지 환경이나 팩터 등에 의해서 데 이터를 통계처리를 하게 된다. 2005년의 난자 185개는 숫자가 맞다. 거기서 유래된 배반포로 실험을 하게 된 것이 정확하게 맞다. 난자를 공여해준 분들의 건강 상태 등에 따라 난자의 상태가 다르다. --지금 미즈메디 연구원이 바꿔치기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배반포를 만들었다 고 했는데 그 난자를 어떻게 구했고 줄기세포 수립되기까지의 시간은 ▲왜 이런 행위를 했는지,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 지 모르겠다. 배양이 안됐다면 안됐다고 하면 될 것이다. 전 대한민국을 수치로 몰아놓고 큰 파문을 불러일으킨 행 위를 왜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만약의 경우 저 혼자 그 수많은 밤잠을 모르면서 제 가 왜 이랬을까 갖은 가설을 다 그려봤다. 이 분들은 혹시 수정란 줄기세포를 배양 해본 분명한 경험이 있어 이 복제 배반포에서 유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체내
자존심의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만약 이것이 모두 사실이었다면 김선종 연구원은 저희에게 논문의 제 2저자를 요구했었다. 물론 노 이사장은 저에게 2005년 논문의 교신저자를 원했다. 원래 논문 의 기여도가 섀튼 박사가 많아 섀튼에게 준다고 했더니 제 2저자를 자신에게 달라고 했다. 김선종 연구원에게 제 2저자를 약속해 난색을 표했더니 미즈메디 병원에 대한 위상 등으로 제 2저자가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김선종 연구원을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 연구원이 동의했다고 하면서 다시 2저자를 요구했다. 김 연구원은 이 에 매우 씁쓸해 하면서 `어쩔 수 없죠'라고 말했다. 제 2저자를 담당하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 섭섭함을 표시했다. 모두 진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논문의 제 2저자는 일 생의 보증수표가 됐을 것이다. 파트타임으로 사립병원 연구실에 있으면서 박사학위 를 한 사람인데 이 상황에서 제 2저자가 됐다면 그 가치는 컸을 것이다. 배반포는 계속 들어가는 데 성공을 하지 못했다면 배양기술 담당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꿨을 것이다. 국내에는 차 병원의 정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이 있다. 외국에서도 배양을 담당
하겠다는 많은 연구팀이 있었다. 사람의 면역 유전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무균돼지 맞춤형 줄기세포를 직접 배양한 바가 있다. 비슷한 비유로 적용한다면 101개를 이처 럼 바꿔치기나 폐기나 훼손시키지 않았다면 서너개의 줄기세포는 만들지 않았을까 통탄한다. --생명윤리법 발효 이후 매매에 의한 난자가 어렵다며 노 이사장이 특허지분을 더 요구했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냐 ▲ 노 이사장은 존경한다. 없던 일까지 만들어내며 폄하를 했지만 나는 그 분을 존경하며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그분 그런 적 전혀 없다. 다만 밝혀주고 싶은 것 은 항간에 저와 문 모 교수의 불화설, 저와 노 이사장의 불화설 등이 나온 것 알고 있다. 나 그렇게 모진 성격 갖고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2004년 말 판교 프로젝트를 몇번에 걸쳐 설명한 적이 있다. 판교 프로젝트는 잘 되면 세계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좋은 계획이다. 저에게 이 계획을 경기도 행정을 맡은 고위 인사에게 설명한 적 있다. 부지를 확보할 계획이 있는데 황 교수가 동행을 해주었으면 분위기가 좋을 수 있다면서 부탁했다. 나에게
협조 요청한 것이다. 이 때 노이사장에게 그 동안 우정에 감사하며 다 협조드릴 수 있으나 나 자신이 철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제 이름을 빌어서 하거나 연구결과를 이 용해 개인적 영업 이득도 취할 생각이 없으며 그런데 동원되고 싶지 않다고 얘기했 다. 이것이 혹시 서운한 계기가 됐는 지 모르겠다. 두번째 보유한 영광은 자신이 갖게 해줄 수 있냐고 노 이사장이 말해 오케이(OK) 한 뒤 연세대와 합동으로 IRB 통과, 서울대 수의과대 IRB 통과시켜 두명의 소아당뇨 환자 세포와 50여개의 난자를 보내 맞춤형 줄기세포를 만들어달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