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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녘출판사를 지지하는 이유
게시물ID : star_32937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호로롤로
추천 : 4/7
조회수 : 56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5/11/07 15: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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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동녘출판사를 지지하는 이유

제제가 어린아이인 것만은 아니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이후에 제제가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 가는 후속 소설까지 다 읽은 독자라면, 어린 소년이 수염이 거뭇거뭇 나는 청년이 되어가는 이미지를 다 가지고 있을 테니까. 게다가 어린 소년이든 소녀이든 그들 안의 성적 욕망에 대한 어떤 것들을 굳이 모른 척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의 존재는 좀 다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에서 가장 무서웠던 장면은, 제제가 지친 아버지(그것도 자기를 툭하면 가죽 허리띠를 풀어서 때리는 아버지)를 측은하게 여겨서 아버지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나는 발가벗은 여자가 좋아.”

동네 형과 아저씨들이 부르던, 한참 인기있던 유행가를 불렀던 것. 가사의 뜻이나 알았겠나. 그 노래를 듣고 아버지는 제제를 때리면서 “다시 한번 불러봐”라고 했고, 제제는 “다시 한번 불러봐”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말을 따라 다시 부르고, 또 맞고, 부르고 맞고, 부르고 맞고..

그 장면을 읽다가 책 속에 들어가서 저 아버지를 죽이고 싶고, 나아가 이 책을 쓴 저자마저 더럽고 추악해보여 미칠 것 같았던 독자로서의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12살 여자애였다. 아버지에게 맞는 장면이 나올 수도 있는데, 하필 왜 저런 노래냐. 왜 저런 노래 가사냐. 그게 왜 그렇게 무서웠겠는가. 내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저 폭력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속에 숨은 성적 코드까지도.

그래, 똑같다. 제제는 좋아하는 누나가 망사 스타킹 신어보라고 했으면 신었을 거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든 모르든 상관 없다. 그게 아버지가 때린 것과 뭐가 다를까. 그걸 제제 어미가 봤으면 무슨 마음이었겠는가. 그때의 제제는 5살이 맞다.

아이유의 노래가 제재를 받거나 사과할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동녘출판사의 행동을 지지한다. 그게 서툴렀든, 차분하지 못했든, 그 자체로 또다른 문제가 있는 태도였다 해도 말이다. 적어도 출판사라면 그랬어야지. 적어도 그런 마음으로 자기 텍스트를 이해는 하고 있어야지.

그러니 동녘의 태도는 이래서 문제라는 식의 기사는 정말 아니다. 그리고 아이유가 사과했다. 사과는 매우 영리했고, 그게 최선이다. 제제를 문학 속의 것으로 분리시키고, 현실의 상황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다만 나는 이 사태를 통해 아동 인권에 대한 경계심이 좀 더 높아지길 바랄 뿐이다. 이제 겨우 자기 발로 걷는 자기 아들들을 군대 체험 보내는 아버지와 그걸 보고 귀엽다고 하는 사회에서. 스스로 성인들을 만족시키는 성애적인 연출로 스타가 되는 미성년자들을 만들어내는 사회에서, 심지어 그걸 부모가 지지하는 게 아이들의 미래의 꿈을 이해해주는 거라고 칭찬하는 사회에서.

온갖 성적 에너지는 넘쳐나나, 그것이 인간의 육체에 대한 건강함에 대한 자신감과 주체적인 욕망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신을 소비시켜주기를 바라는 형태의 것만 가르치는 사회에서. 예술의 자유와 도덕적 보수주의를 논할 공간이 어디 있나. 그 와중에 우리는 모두 무뎌져 간다.

출처 http://ppss.kr/archives/6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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