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황우석 교수 의혹조사 최종발표를 지켜본 생명과학자들이 논문 조작 외에 무릎을 치며 안타까워한 일이 있다. 황 교수팀이 처녀생식으로 1번 줄기세포를 만들어 놓고도 조작 논문만을 남겼다는 점이다.
조사위에 따르면 황 교수팀은 이것이 처녀생식인지를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한 적이 없고, 그래서 처녀생식인 줄 몰랐다. 하지만 조사위는 논문에 안 나오는 다른 난자·체세포 공여자를 찾아내 결국 처녀생식임을 밝혀냈다.
만약 이 검증과정이 황 교수팀이 수행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했다면, 그야말로 ‘사이언스 논문감’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최초의 인간 처녀생식 줄기세포
처녀생식(단성생식)이란 난자만으로 하나의 개체가 발생하는 것이다. 벌이나 진딧물 물벼룩 등 하등동물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고등동물에서는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 인위적으로 유발하기도 어렵다.
2004년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와 일본 공동연구팀이 난자만으로 쥐를 탄생시킨 연구는 ‘포유류도 처녀생식이 가능하다’는 신기원을 열어 크게 주목 받았다.
2004년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공저자이자 처녀생식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는 호세 시벨리 박사는 2003년 원숭이에서 처녀생식으로 줄기세포를 만들어 이 연구결과를 미국 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었다.
포유류 수준의 고등동물의 처녀생식은 한 개 난자에서 스스로 분열을 시작하는 처녀생식과는 다르다. 서 교수팀은 미성숙 난자의 핵을 다른 난자에 ‘수정’시켜 처녀생식 쥐를 만들어냈다. 황 교수팀의 1번 줄기세포도 난자와, 난자에서 분열된 극체세포가 결합한 처녀생식으로 추정된다.
과학적으로 흥미 진진
황 교수의 1번 줄기세포는 사람의 난자로 처녀생식을 일으켜 줄기세포를 만든 최초의 사례다. 조사위에 참여했던 한 생명과학 교수는 “황 교수팀이 처녀생식이었던 것만 제대로 검증해 논문만 썼어도 사이언스에 실릴만한 연구였다”고 말했다. 다만 복제된 것이 아니어서 치료용 줄기세포로서는 효용이 적다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관련 전공자들은 조사위의 처녀생식 규명과정을 살펴보면서 ‘사람의 처녀생식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이 끓어올랐다고 토로하고 있다.
세포분열 관련 연구를 하는 한 교수는 “암세포가 어떻게 분열하고 조절되는가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많은 반면 수정 과정에서의 세포 분열과 조절은 밝혀지지 않은 게 많아 1번 줄기세포의 생성 과정에 관심이 크다”며 “조사결과가 영문으로 공개되면 외국 학자들도 토론에 빠져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난자 공여자는 명백
조사위는 1번 줄기세포가 처녀생식이라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수많은 DNA검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쳤다. 먼저 미숙련 연구자가 핵치환을 연습하다가 1번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연구자의 진술이 난자 옆에 붙어있는 극체세포가 들어가 핵과 결합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 조사위원은 “난자의 핵이 극체세포가 있는 부분에 쏠려있기 때문에 핵을 빼내기 위해 구멍을 뚫다가 극체세포가 끌려들어갔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논문에 기술된 난자 공여자 A씨가 아니라 조사위가 찾아낸 난자 공여자 B씨의 난자가 1번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쓰였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B씨와 줄기세포의 미토콘드리아 DNA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핵이 아닌 세포질에 존재하는 만큼 난자 제공자의 신원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처녀생식의 DNA지문
문제는 세포 핵이다. 난자 공여자의 체세포가 이식된 것인지, 조사위 말대로 난자와 극체가 결합한 것(처녀생식)인지를 판단한 근거는 DNA지문이다. 보통 DNA피크는 한 개 부위(마커)에서 2개씩 검출된다. 세포 속에는 부모에게서 각각 한 벌씩 받은 2벌의 염색체가 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의 DNA지문은 48개 유전자 마커에서 40개가 B씨와 일치했고 8개 마커에서는 2개 중 하나만 나타났는데 그것이 B씨의 DNA 피크들 중 하나였다.
난자는 체세포와 달리 한 벌의 염색체가 들어있는데 이 염색체는 부모의 유전자가 섞여있는 상태다. 마찬가지의 극체세포가 난자와 결합하면 2벌의 염색체는 부모의 유전자가 모두 나타나는 부분도 있고, 부모 중 한쪽의 유전자만 나타나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빨간 카드 1~10(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 한 벌), 파란 카드 1~10(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염색체 한 벌)을 같은 숫자끼리 짝지어 몇 장만 색깔을 바꾼 뒤(유전자 교환) 1~10 카드를 한 벌만 추린다(감수분열). 이것이 바로 부모의 유전자가 섞인 난자의 염색체라고 할 수 있다.
똑 같은 과정을 거친 또 한 벌을 카드를 만들어 이 2벌을 서로 같은 숫자끼리 짝지어보자. 그러면 1, 4, 7번은 빨강-파랑 카드 짝이 될 수 있고 2번은 빨강-빨강 짝이 될 수 있으며 3坪?파랑-파랑 짝이 될 수 있다. 1, 4, 7번의 경우가 바로 DNA피크가 쌍으로 나타난 경우이고, 2, 3번은 피크가 둘 중 하나만 나타난 경우이다.
다른 가능성 없을까
처녀생식 과정을 명백히 알려면 핵형(核型·염색체 수와 형태)분석이나 각인 유전자(부 또는 모계로만 계승되는 유전자)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를 거치지 않아도 처녀생식이 아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결론이었다.
예컨대 체세포 복제였는데 8개 마커에서 DNA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은 1억분의1(마커마다 대략 10가지 DNA피크가 가능하다고 볼 때)에 불과하다. 전공자들은 알려진 게 거의 없던 사람 처녀생식의 신비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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