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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 흔한 빚수저 인생 이야기-上-
게시물ID : gomin_15461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후룽후룽
추천 : 5
조회수 : 62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08 20:35:23

안녕하세요 요즘 흙수저분들이 트렌드인것 같아 미약하지만 저도 조금 용기를 내어 봅니다.


우리 부모님은 10살 차이나시는데 맞선으로 만나셧다고한다.


아버지는 시골 농부의 5남매중 둘째아들로 농사가 싫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천애고아 출신으로 입양간 집에서 버림받고 어릴때부터 전국을 떠도시며 성인이 될때까지

이집저집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해오셧다고 한다.(경상도,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사투리를 섞어서 구사하다가 아버지를 만나 전라도 추가요 ㅋㅋㅋ)


처음에 두분은 모두 근면성실하신 성품으로 주변사람들이 노총각이었던 우리아버지를 장가 보내기 위해

당시 폐품 처리장에서 마스크도 쓰지않은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시는 어머니를 좋게보신 주변분들의 소개로 결혼을 하게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어머니가 그때나이 20살쯤 되었는데 식모살이가 한이 맺혀 독립하시고 살아가기위해 이일저일 안가리고 하셨을거다.

우리아버지 지금생각해보면 배운것도 기술도 돈도 없는 노총각인데 어머니 아니면 누가 시집오겠는가.

어머니가 워낙어리고 사회경험없이 처녀혼자 험한세상 살아가려니 가족이란것에대해 절실하셧을거라 생각한다.

본인은 개인적으로 우리어머니 소개시켜주신분 찾아가서 죽이고 싶음...


암튼 두분은 그렇게 결혼하시고 단칸방에서 시작해 3살위 누나를 낳으시고 살아가던중

나를 임신하시고 마침 아버지가 공장에 취직을 하셔서 전세대출을 하여 광주로 오게 되었음

이때부터 본인은 빚수저인생이 시작되었음ㅠ.ㅜ 누나처럼 처음은 무수저로 태어났다면  부모님 원망이라도 안했을지도...


본인의 유년기는 여느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과는 비슷하면서 흔치도 않은 인생이었다고 생각함

모두가 가난하지만 내집마련을 꿈꾸며 희망과 아이들의 미소로 정이있고 알뜰살뜰 살아가는 시대였음

본인이 본격적으로 가난이란걸 새기기 시작한것은

98년 IMF로인해 아버진 공장에서 잘리고 술만 드시러 나가고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러 다니셧을때임



이때부터 가정의 불화는 시작되었음 아버지는 돈을 못벌어 매일 술만 드시고 집에오면 어머니를 손찌검하게되었는데

우리어머니는 말했다시피 고아출신으로 산전수전 다겪은분이라 순진하긴 하셔도 지는 성격은 아니었음 어머니도 막 머리채잡고 싸우면서

집안분위기는 갈수록 안좋아졌음 누나랑 나는 부모님이 싸울때마다 세탁기안으로 들어가서 숨곤했음

- 왜 세탁기냐면 두분은 전형적인 집안파괴형 엘리전 양상의 싸움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닥치고 가전제품 밥상엎어러 마스터

어머니는 닥치고 손에잡히는 잡기,그릇 던져러 마스터였음.

- 참고로 이때 고장난 골드스타가 원래 컬려였단것을 알게된건 고치려고 수리센터에 가져가서 였음-_-ㅋ


본인은 초등학교5학년 이었는데 그전까지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다. 집안형편이 어려워지고 매일 술드시고 싸움만 하시는 부모님께

말도못하고 밥을 굶었음 당시 아무리 가난했어도 맨밥에 김치는 싸가지고는 다녔는데 본인은 어머니 걱정할까봐 급식한다 뻥치고

매일 수돗물을 마셨음 내또래세대중에서도 그런 경험을 가진사람은 찾지못했음


급식비라고 한달에 3만2천원(당시 중학생이었던 누나 급식비가3만5천)이었나? 그돈은 각종 학용품과 준비물을 사는데 보탰음 남으면 킵했다가

운동회나 소풍비등 필요할때씀

당시 같은 학교나온 누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집안사정을 아는 누나는 내가 집에서 용돈도 안타서쓰는데 학용품이나 준비물값 살돈을 요구하지않는걸보고 눈감아 줄수밖에 없었음

그러다 6학년때인가 그때부터는 진짜 급식을 시작함 근데 여전히 용돈은커녕 지우개 값도 없던 본인은 수돗물을 마시거나 친구들이 남긴 도시락 잔반처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던중 미술,음악,과학시간에는 아무래도 준비물이 돈이 꽤들어가서 항상 준비를 못했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담임이 다른 아이처럼 급식비와 준비물값을 삥땅치는것 아닌지 어머니에게 확인 전화를 한게 화근이되어

동네 동급생이었던 미숙이 엄마를 찾아가 넌지시 떠봤는데 미숙이년이 소문을 어떻게 내었는지 급식비삥땅쳐서(당시에는 진짜 급식을 하였으니)친구들과 노는데 쓴다고 말하는 바람에  나는 그날 내인생 근 30년 동안 최고로 진짜 먼지나게 처맞았던것 같음

나중에 하교한 누나가 자초지정을 설명하지 않았으면 본인은 그날밤 홀딱벗겨진채로 대문앞에서 노숙을하며 새벾이슬을 맞이했을꺼임

ㅠ.ㅜ

누나가 울면서 자기가 가끔 급식때 우유나 요구르트 남겨서 나줄때 자기도 먹고싶었다고하는데...아진짜 쓰면서 눈물나네ㅠ.ㅜ

정작나는 우유먹으면 설사해서 잘안먹었는데ㅠ.ㅜ 누나가 그때한이 맺혔는지 우유를 좋아하더라니...


암튼 어머니는 그렇게 빗자루로 내종아리를 사정없이 치시다 얘기를 전해듣고 눈물을 흘리시며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주저 앉으셨음

어머니가 숨도 못쉬시고 꺼억꺼억 서럽게우시는건 그때 처음으로 봄 나는 어린 마음에 아무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음


집주인 아주머니가 무슨일인데 이렇게 소란이냐며 찾아오실때까지 한 30분인가 어머니와 우리는 마당에 주저않은채로 계속 울었다고함

그날도 술에 얼큰하게 취하신 아버지가 부엌에서 소주를 사발채로 마시며 울고계신 어머니를 보시고 화를 내자 어머니가 얘기를하셧고

아버지는 그날밤새 마당에서 담배만 피우시며 조용히 우셧던것 같음 그날은 아버지 주정역사상 처음으로 두분이 싸우지 않았던 날로 기억함


그후부터 어머니는 내가 학교갈때마다 매일1~2천원을 주셨음 물론 나는 급식비를 내게되어 용돈이없으니 모아서 학용품사는데 보탬

아버지는 그후로 공사장 막일을 시작하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명절이나 장마철 겨울에만 잠깐씩 집에 들르셧음

근데 공사장 막일이란게 항상 월급밀리기는 일쑤고 떼이는건 다반사다보니 집에 가져오는돈은 미미했음 우리는 자꾸커가고 빚은 늘어만 가는데

아버지는 돈도 못벌면서 집에들어온다고 구박 당연 집에 머무르는 기간은 매일 나가서 술먹고옴 근데신기한건

두분이 예전처럼 집안을 파.괘.하.며 싸우진않음 여기서 더부시면 밥숟가락만 남는다는 위기감을 느끼신건지 ㅋㅋㅋㅋ암튼 매일 말로만싸우고

서로 모른체하며 집에서는 항상 술만드시는 나날로 중고등시절을 보냄


이야기하다보니 눈물도나고 배도고프니 밥먹고 와서 마져쓰겟음

출처 이번 生은 틀렷어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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