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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노무현의 "진정성"과 문재인의 "attitude"의 시대정신
게시물ID : sisa_112144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OZ
추천 : 8/6
조회수 : 982회
댓글수 : 12개
등록시간 : 2018/11/25 08: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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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재명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 여러 사회/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 비슷한 시각을 가져왔던 사람들이 유독 이 사람을 둘러싼 이슈들에 대해서는 다른 방향의 의견을 가진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는 옛날 생각이 난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90년대 말, 한 인문학 교수가 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유교정신,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지나치게 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풍토를 비판한 책이었는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적잖은 관심을 끌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한국 사회에는 자신의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게 구시대의 그릇된 관성과 결합되어 거짓된 허위의식이 팽배했다. 겉으로는 돈에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뒤에선 온갖 탈법적, 편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모으려는 사람들, 평소 젊잖은 도덕군자인 척 굴면서 밤이면 룸싸롱에서 어린 여성들의 허벅지를 주물러대는 사람들…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앞에선 욕심없고 젊잖은 척 하면서, 뒤에서는 떳떳하지 않은 방식으로 욕망을 채우는 건 당시 기성세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이었다.

이러한 허위의식은 정치권에서 더 두드러져서,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마이크 앞에서는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하면서 커튼 뒤에선 권력을 탐하기 위해 떳떳하지 않은 일들을 하거나,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채우는 것에 더 관심을 가졌다. 두 차례의 대선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대법관 출신 정치인 이회창은 깨끗하고 고고한 원칙주의자의 이미지로 인기를 모았지만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런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실체가 드러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여당 주류였던 동교동의 지지를 받던 새천년민주당의 유력대권후보 이인제는 원칙을 헌신짝처럼 내던지는 일을 거듭하면서도, 입만 열면 “국민"을 들먹이며 영혼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정치의 이면을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민망함마저 느낄 정도였다.


겉으로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기성 정치권의 그런 모습에 환멸을 느끼고있던 대중들 가운데에는 2000년 총선에서 부산에서 낙선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주목하는 눈밝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2002년 민주당 경선과 대통령 선거를 거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눈여겨 보게 되었다.

노무현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젊잖은 ‘체면’이 중요했던 많은 사람들과 그는 일단 기질적으로 달랐다. 정치인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쁜게 아니라는 얘기를 나는 그 무렵 노무현에게서 처음 들었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 권력을 추구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선 듣기 어려웠던 말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정당한 욕망을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솔직함이었다.

하지만 기성 정치권 안에서 10년 넘게 정치활동을 해왔던 그 역시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당시에는 선거비용을 국가가 보전해주는 선거공영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이라, 검은 돈의 지원 없이는 선거를 치루고 정치활동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시대였고, 노무현 역시 당시의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하지만 구시대의 허위의식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 그는 상대적으로 훨씬 더 깨끗하고, 훨씬 더 정의로운 정치인이었고, 그게 지나칠 정도로 솔직한 그의 기질과 맞닿아 다른 정치인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커튼 뒤의 모습을 드러내어 앞모습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려는 그의 스타일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What vs. How

젊은 세대들은 그런 노무현의 스타일을 "진정성"이라고 불렀다. 대중들을 환호하게 한 그의 “진정성"은 그의 정치적인 노선이나 정책 방향(what)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국민을 대하고 정치를 하는지, 즉 방법이나 태도(how)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의 웹사이트 주소가 knowhow.or.kr 이었던 것이 과연 우연이었을까? (지금은 이 URL을 노무현재단이 이어받아 사용하고 있다.)

당시 하나의 “현상”이라고까지 불렸던 노사모 역시 특정한 정치 노선을 표방하는 정치집단이 아니라 ‘정치인의 팬클럽’이라는, 어찌보면 상당히 비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는 뉴욕에서 해외노사모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노사모 회원 중의 한 명이었는데, 대선을 앞두고 다른 회원이 노무현의 진보적인 정책을 강화하는데 힘을 보태자는 의견을 꺼냈을 때, 나는 노사모는 특정 정치노선을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팬클럽이고, 노무현이 진보와 보수 양쪽의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돕는게 팬클럽 회원의 올바른 자세라는 반론을 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세계 각지의 해외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을 알리는 몇 페이지짜리 PDF 파일을 만들어 공유하고, 각 나라에 있는 회원들이 그걸 프린트해서 저마다 자기 도시의 공항에 나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그 파일의 내용은 노무현의 정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고 겪은 시민들이 인터넷에 올린 미담들을 모아 추린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겉과 속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나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과 노사모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what보다는 how에 더 포커스를 두고 있었고, 그 how가 ‘허위의식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노무현은 젊은 세대와 만날 수 있었고, 그 해 대선은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표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거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치에 관심을 가져온 진보진영의 지식인들 중에는 여전히 기존의 틀로 정치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how보다는 what, 즉 정책방향이나 정치노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노무현을 두고 나이브하다고 깔보거나, 몇몇 정책들이 진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노무현을 공격했고, 결국 노무현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새 대통령의 낯선 스타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이전까지의 시대에서 대통령들은 좀처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고, 언론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어림짐작하는 “金心”이라는 표현을 이용해 기사를 썼다. 그렇게 “젊잖은" 대통령들의 모습에 길들여졌던 대중들은, 국민들 앞에 자신의 속생각을 소상히 밝히는 새 대통령의 스타일을 낯설어했고, 조중동의 “대통령 깜이 아니”라는 공격에 설득되어갔다.

그렇게 양쪽에서 스테레오로 그를 공격해대는 목소리들 사이에서 노무현 정부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시대정신이라는 큰 그림을 보지 못한 이들이 초래한 안타까운 결과였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를 공격하고 조롱했던 사람들은 비로소 노무현이 가졌던 가치를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때 우리는 이미 노무현을 잃은 뒤였다.


헬조선

세월이 지나, 한국사회의 다이내믹한 변동성은 커튼 뒤에 감추어 두었던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를 외치는 TV광고가 등장했고, 유권자들은 돈만 벌게 해준다면, 내 집값만 오르게 해준다면 뒤가 구린 사람이 나의 리더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한국은 “정직이 가훈"이라면서 다스는 자기 회사가 아니라던 대통령과, 물에 빠진 아이들이 죽어가는데 올림머리를 만들고 있던 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90년대의 거짓된 ‘허위의식’은 ‘내로남불’이라는 더 뻔뻔한 형태로 진화했다. 정치와 법과 언론은 자기편과 상대편에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댔고, ‘갑’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결코 겪게 하지 않을 법한 일들을 ‘을’들에게 강요했다. 정의가 결핍된 그 사회를 젊은이들은 “지옥"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촛불이 그런 세상의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했다.

촛불은 최순실이라는 기묘한 캐릭터의 등장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그 본질은 한국사회에 팽배해온 불공정성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였다.

그리고 그 대중들은 문재인을 새로운 세상을 이끌 리더로 선출했다.


Attitude is everything

문재인은 특이한 사람이었다. 자신에게만 유리한 이중잣대를 가진 많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오히려 자신에게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주택청약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라며 “우리는 집을 갖고 있으니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사람을 나는 내 주변 어른들 중에서 본 적이 없다. 그가 긴 삶의 궤적을 통해 보여준 수많은 일화들을 접한 대중들은 “파파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의 약속, 그의 주장에는 성자에 가까운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서나 느껴지는 무게가 있었다. 더구나 그가 말하는 정의는 속세를 떠난 자의 비현실적인 기도가 아니라 그 스스로 지저분한 현실 안에서 치열하게 실천해온 것이었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사회에서 그는 그걸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보여준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문파들은 문재인의 그런 모습을 두고 "attitude is everything"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감동하게 한 그의 “attitude”는, 오래전 노무현의 “진정성"이 그랬던 것처럼 what이 아니라 how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로남불’의 극복

촛불을 함께 들었던 사람들은 입을 모아 ‘적폐청산’을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과연 무엇이 적폐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생각이 달라서,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근혜를, 어떤 이들은 자한당을, 또 다른 이들은 삼성을 적폐라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한 적폐청산은 what이 아니라 how의 문제이고, 특정인물이나 집단에 대한 ‘인적청산’을 넘어 한국사회의 정의를 짓눌러온 불공정성 자체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성이란 결국 이중잣대를 버리고 ‘내 편과 상대편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폐청산의 다른 이름은 ‘내로남불의 극복'이고, 이것이 문재인이라는 인물을 리더로 가진 우리가 읽어내야 할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나는 믿는다.

오래전 화제가 되었던 안희정의 인터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2001년, 민주당 경선을 앞두고 안희정이 선거캠프로 쓸 사무실을 보여주며 노무현에게 대선 출마를 권하자, 노무현이 이런 물음을 던졌다고 한다. “만약 경선에서 지면 우리가 이인제 선거운동을 도와야 할텐데, 그럴 자신 있나?" 여기서 우리는 노무현의 “진정성"이 문재인의 “attitude”와 ‘내로남불의 극복'이라는 교집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불편함이나 불리함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도.


이재명이 우리편의 자산이라는 사람들,
문프에게 힘이 되는 김어준은 건드리지 말자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옛날 노무현 생각이 났다.

적폐를 청산하자는 우리가 이재명을 그대로 둔다면,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부르짖던, 그러나 “혜경궁김씨는 누구입니까"에는 침묵해온 김어준의 이중잣대를 우리가 비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우리 안의 ‘내로남불’이 하나둘씩 쌓여간다면,
오래전 노무현의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던 사람들이 결국 노무현을 잃게 한 것처럼,
오늘의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우리는 결국 문재인 시대의 빛을 잃게 만들 것이다.

되풀이하지 말자.





출처 http://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8/read/32673504?search_type=subject&search_key=%EB%85%B8%EB%AC%B4%ED%9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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