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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단편] 결말을 상상하는 일
게시물ID : readers_2258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께소
추천 : 12
조회수 : 66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5/11/10 19: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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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상상하는 일

 

다른 이들이죽고 싶다고 되뇌던 순간 나는죽이고 싶다고 되뇌었다. 하나, 죽고 싶지 않았다. , 내 주변엔 죽는 게 이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이 수두룩했다. ,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밖에 없다고 쳤을 때 누굴 죽일 것인지 오 년 전에 이미 정해 놨었다. 마지막으로, 그 죽일 놈은 아직 살아있었다. 나는 그놈을 꼭 죽일 것이다.

오 년 만에 놈을 진짜로 죽일 거라 작정하게 된 계기는 하나였다. 나는 한 달 뒤에 죽는다. 정확히 삼십 일이다. 이곳의 모든 사람은 언제나 삼십 일 전에 제 죽음을 통보받는다. 왜 삼십 일인지 그건 아무도 모르지만, 어쩌면 이 규칙을 처음으로 만든 자들은 그저 삼십 일을 짧지도 또 길지도 않은 적당한 시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통보를 받기 전에도 그리고 받고 난 후에도 말이다. 그리고 잔인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적당함 혹은 어중간함. 죽음을 앞둔 이에게 그보다 더 비참한 게 있을까. 아무튼, 죽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포기를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난 죽을 테니까, 라는 무책임한 생각에서 놈을 죽일 다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나는 놈을 죽일 생각을 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내게 남은 삼십 일을 그럭저럭 알차게 보낼 방법이 지금으로선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째서 오 년 전에 그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은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초등학생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른 금붕어가 지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 죽일 놈이고 뭐고 여기에서 가까운 애완동물점에 가 금붕어 한 마리와 어항을 산 후 삼십 일간 열심히 금붕어를 돌봤을 것이다. 이번에는 죽지 않게끔, 그것의 뒤집힌 배와 불투명한 눈을 보지 않게끔, 정성을 기울여서 말이다.

나는 서른 번째 날, 즉 나의 마지막 날에 놈을 죽이기로 했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상상 속에서 그를 죽이는 연습을 매일 되풀이했다.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지,’ 부모님의 말씀은 틀린 적이 없었다.

칼을 쓰기로 했다. 놈에게 사과를 직접 깎아서 준 적이 있었다는 게 문득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마음만 먹는다면 동그란 사과로든 하얀 접시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난생처음 깎는 사과의 껍질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툭툭 끊어졌다. 놈은 어설프게 깎아진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그때 분명 서로를 보며 웃었다.

 

나는 칼에 맞아 죽는 놈을 상상했다. 제일 먼저 놈의 배꼽에 칼을 쑤셔 박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어머니가 사용하시던 칼이었다. 날은 내 손뼘 만하고 상어의 지느러미처럼 반짝였다. 칼을 쑤셔 넣은 상태로 가로로 비틀고 주욱 뽑았다. 이렇게 해야 단순히 칼을 찌르고 그대로 뽑는 것보다 장기에 더 손상이 간다는 말을 어디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몰라 한 번 더 찔렀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식으로, 갈비뼈를 피해 심장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에 말이다. 하지만 칼이 심장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더 깊이, 힘껏 찔렀다. 칼은 심장까지 닿기에는 짧았다. 놈의 숨결이 한쪽 귀로 느껴졌다. 담배 연기 같은 숨결이었다. 놈은 칼을 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그의 두 손엔 밀쳐 내는 게 아닌 잡아당기는 힘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힘에 저절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상상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나는 다음번에는 조금 더 긴 칼을 상상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작은 동물조차 죽여본 적이 없다. 나는 어려서도 꽃을 꺾는 것을 싫어했고 줄을 지어 다니는 개미들을 밟지 않기 위해 바닥을 보며 걷고는 했다. 같은 반 친구를 괴롭혀본 적도 없고 반대로 괴롭힘을 당해본 적도 없다. 항상 함께 노는 친구가 서너 명 정도 있었다. 형제는 없고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셨지만, 외아들인 나를 많이 아끼셨다. 그러고 보니 놈에게도 형제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친형제가 부럽지 않을 만큼 붙어 다녔다. 누가 형이고 누가 동생인지를 결정하는 일로 수만 번 다투었다. 우리는 끝까지 그 문제에 대한 결정을 짓지 못했다.

 

칼이 길어지니 심장에 닿는 게 더 수월했다. 분명 심장을 파고드는 칼끝을 느꼈다. 그것은 놈의 몸속보다 더욱 깊은 곳에 도달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칼을 비틀어 뽑으려는데 놈이 이번에도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칼이 자신과 멀어지는 걸 가만둘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끌어당겼다. 내 손마저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릴 듯했다. 눈을 번쩍 떴다. 어두운 천정이 보였다. 놈을 죽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서른 번째 날, 나는 놈의 퇴근 시간이 될 때까지 잠을 잤다. 꿈은 꾸지 않았고 깨어났을 때 머리는 아주 맑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준비해둔 칼을 품 안에 챙기고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놈의 집까지 걸어갔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과 가까웠다. 오 년 만에 온 놈의 집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몇 시간이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시계를 보니 벌써 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차분했다. 나는 오늘이 끝나기 전에 놈을 만날 거라 확신했다. 그것은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만큼 단호하고 명확한 확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쪽으로 걸어오는 놈의 모습이 보였다.

놈은 상상했던 것과 똑같았다. 그의 구두 굽 소리도 똑같았고 주머니에 넣은 손도 똑같았고 앞을 보며 당당히 걷는 모양도 똑같았다. 놈은 집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금방 내 얼굴을 알아봤다. 그의 입이 벌려졌다.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혹은 그 말을 삼키려는 듯이 말이다. 뻐끔거리는 그의 입은 금붕어를 생각나게 했다. 나를 향해 아주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하던 그가 끝에는 서둘러 뛰어왔다. 이제 그는 바로 내 앞에 서 있었다. 오 년 만에 만나는 우리의 키는 여전히 같았다. 정말 모든 게 상상한 대로였다.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 거짓된 인사를 나누지 않기 위해서였고 거짓된 미소를 짓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오 년 전부터 예정된 침묵이었다. 놈이 한 발자국 더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그에 맞춰 품 안에 있던 칼을 끄집어내 놈을 찔렀다.

심장에 닿았다거나 그렇지 않았다거나, 그런 건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무언가에 닿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그저 시간에 구멍을 내어 모든 것을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상 속에서 연습했던 것처럼 놈을 깊숙이 찔렀다. 놈은 내 어깨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어깨를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통해 어째서 그가 나를 밀쳐낼 수 없는지, 끌어당길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칼을 비틀어 뽑았다. 놈은 이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피에 젖은 손보다 놈이 기대어 있는 내 어깨가 더욱 뜨거웠다. 그리고 그때 피식하고 그가 웃는 소리를 들었다. 삼십 일 전부터 내 머릿속을 채우던 놈의 그 얼굴이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놈이 속삭였다. 죽어가는 사람치고는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였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오 년 전, 나와 녀석이 고등학교 삼 학년이었을 적에, 부모님께서 이혼을 하셨다. 그날은 졸업식이었다. 친구들이 졸업장과 꽃다발을 들고 가족들과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옥상에 숨어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부모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러고는 꺼낸 말씀이 앞으로 우리 세 가족은 따로 살 거다, 라는 것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는 내가 직장을 가질 때까지 두 분이 알아서 마련해 주실 거고, 나는 그저 이 집에서 계속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벌어진 상처 같은 주홍빛으로 물들었을 때쯤 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앉은 채로 놈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래도 오늘은 졸업식인데, 와주시면 안 돼요?’라고 묻자마자졸업식에 부모님이 오지 않는 애들도 요즘엔 많다던데.’라는 대답을 들은 아주 사소한 부분조차 말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말들을 탈탈 꺼내보아도 그 무엇 하나 전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깨닫자마자 여태껏 나오지 않던 눈물이 나왔다. 하늘이 더욱 붉어졌다.

울고 있는 내 옆에 놈이 와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녀석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불순한 마음 하나 서려 있지 않은 완벽한 미소였다. 진심으로 괜찮다고 위로하는 미소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무엇 하나 전해지지 않았다. 그의 손은 계속해서 내 어깨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닿아 있지 않은 다른 손엔 그의 책가방이 쥐어져 있었다. 반쯤 열린 지퍼 사이로 알록달록한 꽃들이 삐져나와 있는 게 보였다. 어느새 그친 눈물이 볼에서 바짝 말라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언제나처럼 하교했다. 언제나처럼 장난 서린 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항상 봐왔던 작별인사를 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그때까지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 주던 무언가가 죽어버린 걸 알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놈을 죽이고 싶었다.

 

놈은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누워 있었다. 두 다리는 비스듬히 접혀 있었고 한 손은 머리 옆에 또 다른 손은 허리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녀석답지 않게 반듯하지 못한 그 모양새가 어쩐지 낯이 익었다. 그래, 그때 그 사과 껍질이 이랬던 것 같다. 갈색으로 변색되고 비틀어져 있었다. 아니면 그 금붕어 시체가 그랬던가. 이해할 수 없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금붕어를 쓰레기봉투 안에 담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많아 봤자 오 분. 그리고 그 오 분이 지나면 예정된 대로 나의 숨은 멈출 것이다. 나는 어서 빨리 모든 기억이 없어지기를 바랐다. 내가 더는 놈의 집 앞에 서 있지 않기를, 바닥에 조용히 쓰러져 있는 놈의 모습이 더는 보이지 않기를, 놈이 마지막으로 던진 말이 더는 들리지 않기를 말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리고 다시 들이마시지 않았다. 다음이 마지막 숨이 될지 아닐지를 계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는 숨을 참을 수가 없었을 때, 나는 너무나 살고 싶다는 듯이 힘껏 숨을 들이마셨고 그 후로도 계속 내 숨은 멈추지 않았다.

 

 

00. 이상하게 들릴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확히는 한국을 떠났을 때부터)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미워질 때가 있었어요. 이유는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예상치 못한, 조금 뒤면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순간을 시작으로 그 사람이 너무 미운 거예요. 공통점이라면 그것뿐이에요. 상대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그런데 한없이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이라 아직도 이런 저랑 친구를 해 주고 있네요. 다행히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그런 일이 없었어요. 한편으론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 새로 생기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겠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참 헷갈리네요. 아니, 내가 변한 건가.

 

예전엔 제 이 몹쓸 행동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었어요. 이해하고 고쳐보려고요. 그런데 끝까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이해를 못 한다는 게 어쩌면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로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으니까. 그 중에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한 부분이 포함된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덜 슬프더라고요.

 

01. 인생을 바꿔준 소설을 대학교 2학년 2학기 때 읽게 됐어요. 그때까지 집에서 멀리 떨어져 하는 대학 생활이 그저 싫었거든요. 이리저리 계속 과를 바꾸다가 이제 막 영문학을 하기로 했던 학기였어요. 그리고 한 영문학 수업을 통해 그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이 멀리까지 와서 대학 다니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난 이 책 한 권을 만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구나, 라고요.

 

그 책 속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주인공이 길을 걷다가 모퉁이를 도는데, 어떤 하얀 꽃들이 주인공의 볼을 스쳐요. 그게 다예요. 그런데 전 그 장면이 계속 잊히지 않더라고요 (한동안 꽃 이름을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 하얀 꽃들을 생각하면서 쓴 게 이 단편이에요. 뭔가 이상한 결과가 나와버렸지만.

 

02.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이 문장이 원래 영어로 “But everything will be okay.” 였어요. 아마 글 쓰면서 가장 많이 고친 부분일 거예요.

 

03. 저는 사과 잘 깎아요. 그런데 껍질을 얇게 깎는다고 엄마가 뭐라 그러시더라고요. 아직 두껍게 깎는 건 잘 못 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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