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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써야할지 몰라서 그냥 꺼내 봄.
게시물ID : sisa_11220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빵구쟁이
추천 : 1/3
조회수 : 39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1/08/18 14:14:35
무상급식에 대한 단상


무상급식이니 주민투표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뉴스를 멍하니 보다 옛 생각에 쓴맛이 입에 돌아 글 한 자 적는다. 

20년 전. 
유상이든 무상이든 급식 따윈 있지도 않았던 1992년.
기술 교사 김 선생이 담임을 맡았던 중학교 2학년. 
명랑했던 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쩝. 

하여튼 2학기 초로 기억되는 어느 날, 담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외친다. 

"집에 비디오 없는 사람 손들어!" 

우렁찬 소리에 모두 주목했다. 
비디오… 비디오…. 비디오가 부의 상징은 아니었지만, 비디오 없는 가정은 가난의 상징 정도 되던 그 시절. 
WWF 프로레슬링, 특히 워리어와 호건의 레슬마니아 테이프가 늘어나도록 나돌던 그때. 
여기저기 빌려 달라며 아우성인 아이들 사이로 낙서에 매진하던 내 모습이 기억을 스쳤다. 

각설하고, 다시 한번 비디오 보유 여부를 묻던 담임은 1분단에서 4분단을 쓱- 쳐다보더니 
나무 몽둥이로 책상을 탁 치며 한 녀석의 코 앞에서 다시 물었다. 

"너희집 비디오 있어?" 
-"네. 있는데요."  
"선생님이 말이다. 형편이 어려운 녀석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한단 말이야. 집이 좀 어렵다 싶은 녀석 일단 손 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샤프를 꽉 쥐었다. 그리고 공책에 줄을 긋기 시작했다. 전화 받을 때 무심코 긋는 그런 줄. 
공책이 찢어져 너덜너덜했지만, 놓지 않고 더욱 꽉 쥐었다. 
그러자 한 녀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저요!!!" 

부반장 녀석이다. 엄마가 약사고, 연일 담임에게 비싸 보이는 드링크를 가져다 주는 녀석. 
담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야! 이거 지금 장난 아니거든!"  

아, 참. 부반장 생각하니 재밌는 일화가 떠올랐다. 
김 선생 주도하에 열렸던 학년 초 반장 선거. 
우리 반은 투표를 세 번 했다. 
지금의 부반장이 반장이 되었어야 했는데, 딴 놈이 최다득표를 했거든. 
담임은 웃으며 다시 하자고 했다.
하지만 또 반장에 낙선한 그 녀석이 인상을 썼고, 선생님은 멋쩍은 듯 웃으며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하자고 했다. 
그렇게 세 번을 했지만 여전히 그 녀석은 떨어지며 부반장에 만족해야 했다. 
처음 경험한 부정부패였고, "선은 언제나 승리한다."라는 진리의 영화 대사를 되내이며, 드러낼 수 없는 통쾌함에 가슴이 뻥 뚫렸다. 

다시 돌아가서, 여기저기 훑어보던 담임이 내게로 왔다. 
아이들의 시선도 그를 따라 내게 머물렀다. 

"야! 집에 비디오 있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웃으며 담임의 면전에 통쾌한 호기를 부렸다. 

"네!!! 있는데요." 

그러자 한 녀석이, 

"저번에 내가 sos 해상구조대 예약 녹화 좀 시켜달랬드만 너거집 비디오 없다매!" 

이 지랄 아니겠는가. 뭇 녀석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타고 들어와 가슴 한 구석에 꽂혔다. 
이어 담임은 

"전부 조용히 안 해!!! 너희집 비디오 있어, 없어??" 

다시 물었다. 그 당당하던 내 목소리는 개미과 곤충처럼 들리지도 않을 소리를 뱉었다.

"있..느.는..데요..." 

그러자 담임이 눈은 날 보고, 입은 모두를 향해 이야기했다. 

"아무도 없으면 그냥 부반장 준다? 내일 다시 조사할 테니까 전부 부모님께 확인해서 아침에 교무실로 와!" 

그리고 난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런 거 있으면 무조건 한다고 해야지!! 내일 가서 너 달라고 해!! 
돈 버는 게 쉬운 건줄 알어!! 그런 게 얼마나 집에 도움이 되는데...." 

눈물이 차올라 밥을 목으로 넘기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이튿날, 난 담임을 찾지 않았고, 집엔 다른 녀석이 먼저 받았다라는 거짓말을 했다. 
물론 아버지께 심한 꾸중을 들었지만,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친구들 데려 오는 것도 심하게 꺼리던 내가, 원만한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는 최선책이라 생각했었다. 
적어도 그땐 말이다.      

무상급식.
백번 양보해서 누구의 말이 옳고 그른지, 누구의 정책이 보편 타당한지 모른다 하더라도
그 수혜를 받는 건 우리 어린이들 아닌가?
일부 도둑놈들이 눈에 보이는 도둑질에 쓰는 세금엔 그리도 자비로우면서,
어찌 힘 없고, 약한 어린이들 작은 입에 들어가는 밥에 쓰는 세금엔 그리도 엄격한 잣대를 휘두르는가?
제도를 바꾸면 가능하다고?

강산이 두 번 변한 지금, 
이젠 술 자리에서의 안주거리도 되지 못하는 20년 전.
그때 그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난 김 선생을 찾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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