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기민 기자, 박나영 기자] 검찰이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박병대ㆍ고영한 전 대법관 외에도 그들의 전임자인 차한성 전 대법관 역시 작성에 개입했다는 물증을 확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차 전 대법관은 애초 일제 강제징용 재판 지연에 관여한 혐의만 받아왔다. 이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이 2014년 이전부터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작성돼왔다는 사실을 새롭게 입증할 수 있는 것이라 주목을 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지난 13일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 등의 명단을 관리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법원행정처 인사관련 부서를 세 번째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지난달 6일과 30일에도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세 번째 수색에서 확보한 문건에는 2014년 이전 법관 부당 인사 등과 관련된 것들이 포함됐다. 검찰은 이 문건들에서 양승태 사법부 초기부터 법원행정처에서 법관 블랙리스트가 작성되고 이를 토대로 부당한 인사 조치 등이 있었다는 물증을 확보했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의 전임 행정처장인 차 전 대법관도 이에 깊숙히 개입한 것으로 보고 그를 추가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조사가 필요할 경우 비공개 소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1년 10월부터 2014년 2월까지 법원행정처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한 차 전 대법관은 청와대와 일제 강제징용 재판 지연 등을 논의한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를 받았다. 그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을 방문해 청와대 측과 논의해 재판을 지연시키는 데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앞선 압수수색에서 2015년 1월 작성된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보고서' 문건을 확보하고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법행정을 비판했던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규정하고 각종 인사 불이익을 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문건에는 세월호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글을 언론사에 기고한 문유석 부장판사, 원세훈 선거법 무죄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라고 비판한 김동진 부장판사 등 양 전 대법원장 사법부에 반발하는 글을 기고하거나 입장을 밝힌 법관들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4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후 이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수사에서 의혹을 뒷받침하는 문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조사결과 은폐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