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고양이 카페에 처음 간 글씨.
게시물ID : humorstory_44206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꾸꾸다뜨
추천 : 2
조회수 : 713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5/11/14 13:45:40

나는 유독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뭐가 움직였다! 싶으면 일단 쪼르르 가서는 만지고 귀찮게 굴어야 직성이 풀렸는데 그 때마다 쪼그만 나를 얕잡아 본 동물들이 덤벼들어서 많이 울고는 했다.

 

몇 가지 일화를 들어보자면 시골 할머니 집에 있는 염소 옆에서 엎드린 채로 지푸라기를 같이 먹다가 들이 받혀서 엉엉 울었던 일, 병아리 만지다가 수탉한테 쪼여서 엉엉 울었던 일, 마루 밑에 뽀삐 밥먹는데 쳐다보다가 왕왕 하는거에 놀라서 엉엉 울었던 일 등이 있다.

 

시크한 동물친구들과 보낸 추억들이 모두 아픔으로 얼룩져 있음에도 나는 동물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됐고 특히 집에서 기르는 애완동물 중에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라 한다. (사정상 직접 기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좋아하기만 할 뿐이다.)

 

아무튼 간에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고양이 카페를 처음 가게 된 날의 회상이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내가 서울로 여행을 가게 된 것은 학교를 졸업 하고 서울로 대학교를 간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간만에 만난 친구들은 느글느글한 서울말을 쓰면서 교양을 떨었다.

 

 

왐마. 니들 둘이 서울사람 다 됬다이?”

 

?? 그래?? 나는 잘 모르겠는 걸?

 

저기요~ 저희 아브라카다브라이트 두개랑 아프리카엘리펀트 한 개 주세요

 

 

여리여리한 서울말과 함께 화려한 메뉴를 주문한 후 우리는 그간 못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대학생이 되고 난 직후라 지금처럼 반가움=술 이란 공식이 성립하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밥을 먹고 생과일쥬스를 하나 들고 거리를 산책하며 소화시키고 아이스크림 전문점에 앉아 다정하게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지금은 생각도 못할 징그러운 만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서울구경을 하던 도중에 고양이 탈을 쓴 사람이 홍보하는 고양이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헐떡이고 시야가 좁아지며 손발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가는 소리로 물었다.

 

이보시오.. 저 상점은 고양이가 있는 곳이오? 아니면 고양이 탈을 쓴 장사치들이 있는 곳이오?”

 

당신이 산야에서 올라왔음은 알고 있었으나 이토록 무지한 줄 알지 못하였소. 물론 고양이가 있소.”

 

그 말이 진정이라면 내 속히 저 집으로 가리다.”

 

마음을 서둘러 일을 그르치지 마시오. 저 곳에 고양이는 수 없이 많으나 하나같이 여물죽을 먹은 황소처럼 잠만 자고 게으르기 짝이 없으니, 털 난 자갈과 같음인데 어찌 향하려 하시오.”

 

“......닥치고 앞장 서

 

친구들의 강한 반대를 꺾어내고 결국 고양이 카페에 들어간 나는 코피를 한빠께쓰나 흘려야 했다.

 

그 곳엔 큰고양이, 아기고양이, 알록달록고양이, 짝짝눈고양이, 털고양이, 쭈글이고양이 등이 있었고 벽면에는 하나하나의 사진과 함께

 

얘는 누구인데 1인자에서 2인자로 밀려난 후 열심히 복수의 칼을 갈고 있어요

 

라던지

 

얘는 누구누구인데 잠이 많아서 항상 잠을 자고 어묵을 좋아해요

 

등의 너무 귀엽고 아기자기한 짤막한 소개가 붙어있어 심장을 사정없이 폭행했다.

 

 

 

 

비틀비틀 거리며 가장 쉬운 이름의 커피를 대충 주문하고 자리를 찾는 순간 멀었던 시력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몇 안되는 자리에는 대개 커플들이 산개포진하여 하하호호 웃으며 다정하게 앉아있었는데

 

남자 3명이 들어와서는 공기를 흐린데다가 하나는 헉헉거리며 여기저기 방방뛰고 산만하게 구는 것이 사랑짓거리에 방해가 됐었던 모양이다.

 

황금 같은 주말 시간에 꼬장꼬장하게 고양이 카페에 들어온 3인의 무리를 쯧쯧 하며 연민과 한심함의 눈빛을 보내왔다.

 

그제야 민망함에 고개를 숙이며 친구들을 바라보자 친구 놈들은 진작부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돌려 애써 나를 모른 척 하고 있었다.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우리 셋은 커피 하나씩을 들고 쭈뼛쭈뼛 커플들 사이에 고립된 자리 속에 진영을 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자 고양이를 현혹하는 장남감이 많았다. 움직이는 쥐 인형, 강아지풀 같은 것, 낚시 줄 같은 것, 방울소리 나는 것 등이 있었는데 시골 고양이들이 야생에서 가지고 노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친구 말대로 고양이들은 장난감으로 재롱을 부리고 아무리 유혹해 봐도

 

업무시간 끝났으니까 다른 고양이 알아보쇼

 

하듯 잠으로 일관하거나 외면하거나 자리를 피하기 바빴다.

 

그런 고양이들의 생기롭지 못한 모습에 가슴이 아프면도, 고양이들과 놀고 교감하는 설정샷을 찍기 원하는 커플들에게 비협조적인 모습에 눈꼴 시린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어 내심 기뻤다.

 

 

 

 

그렇지만 고양이 털이 들어있는 커피만 마시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다.

만약 고양이 똥냄새와 방향제가 섞인 이상한 냄새만 맡다 고향에 내려간다면 가문의 수치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비장의 수를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주머니 속에 깊숙이 손을 넣어 커피 영수증을 꺼내는 순간까지는 아무도 나에게 눈길울 주지 않았다. 나는 굴하지 않고 영수증을 손에 쥔 후 온 힘을 다해 영수증을 구겼다.

 

바스라스사삭!!”

 

영수증에 주름이 접히며 생긴 마찰음은 날카로운 비도가 되어 카페에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바위 같던 고양이의 고개가 젖혀지며 시선이 쏟아졌다. 다음으로 나는 무심히 영수증을 둥그렇게 말아 바닥에 굴렸다.

 

그러자 한 마리가 그림자처럼 달려와서는 영수증을 채갔다. 나는 당연한 듯 웃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커플들은 내가 고양이를 움직였다는 사실에 놀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후훗... 이것이 바로 시골의 저력이다. 서울 고양이도 한낱 고양이일 뿐. 내 의지대로 움직이게 해주지.’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오늘 두 고추와 사용한 헛된 시간의 영수증을 모두 꺼내 공을 만들어 흩날려라 천본앵을 시전하였다.

 

순식간에 내 주위에는 10여 마리의 고양이들이 몰려들어 내 손가락이 튀기는 영수증의 은혜를 받기위해 아우성이었다.

 

커플들은 질투와 경의로움이 섞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커플들의 눈을 거만하게 응수하며

 

너희들 남친은 이런거 못하지?? 고양이도 이렇게 안달복달하게 만드는 내가. 여자친구가 없어서 얘들이랑 이 황금같은 주말에 고양이 카페에 왔겠니?? 나는 진정 고양이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인거야

 

라는 메세지의 눈빛을 보냈다.

 

나는 고양이들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였고 곧 카페 전체는 내 연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연주도 잠시. 이내 찢어지고 침에 젖어 힘이 빠진 영수증 공에 흥미를 잃은 고양이들은 하나 둘 자리로 돌아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 나의 공연에 커플들은 한 번의 박수 없이 다시 사랑짓거리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쓸쓸히 내려오는 막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떨궈 그제껏 혼자 남아있는 아기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작은 영수증을 쫒는 작은 고양이의 작은 앞발에 작은 눈물방울이 떨어져 적시었다.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