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개헌을 통한 연임이 추진될 것 같다.
음모론은 음모를 제안함으로서 그러한 음모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사전에 조소거리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해서 음모론은 틀릴 수록 좋다. (황당할수록 좋다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현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도 연임추진론을 얘기하면 상상도 못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도 사실 상상도 못했다. 다들 어서 빨리 끝나라는 생각 때문에 반쯤 정줄을 놓고 있는 것이 문제.
그러나 한번 그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모든 정황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 친박 계열은 현재 대선주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친박의 입장에서는 문재인은 물론이고 유승민도 적이며, 더 나아가 친이나 김무성도 적이다. 그들이 정권을 이어가게 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할 것임은 자명하다. 헌데, 어째서 이맘때쯤 자연스럽게 나와야 할 후계자 논의는 전혀 없는 것이며 후계구도에 대한 전략마저도 느낄 수가 없을까.
둘째, 개헌을 통한 연임을 반대할 수 있는 친박은 아무도 없다. 그것을 어떠한 관점으로 아무리 조심스럽게 반대하더라도 박정희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설령 친박이 모두 미쳐서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는 않을지라도, '지금 시대에 연임이라니 정신이 나가셨습니다' 라고 할 사람은 애당초 친박 진영에 서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말조차 못 꺼낼 분위기다. 자기부정이니까. 누군가 조심스레 연임을 얘기하면 모두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되어 있다.
박근혜 정권 이후 친박의 몰락은 자명하다. 이 정부의 컨셉은 5공때 억울하게 흩어지고 비겁하게 탄압당했던 친 박정희 세력의 재규합과 시대의 재조명이다. 나는 이런 컨셉에 어느 정도 교감을 해주고 싶다. 얼마나 억울했을꼬. 하지만 그게 뚜렷한 한계다. 김기춘 같은 인사가 중심이 되어 이념을 뛰어넘은 초특급 수구꼴통 회귀 세력들에게만 줄을 대줬고 그렇게 한바탕 해먹었다. 그 다음을 이을 대안마저도 전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렇게 한번 반짝하고 영원히 정치권에서 퇴출하겠다는 전략이었을까? 모두가 그렇게 기대하며 아무런 걱정을 안하고 있었지만, 한번 다시 생각하니 뭔가 묘하게 서운하다.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자명한 몰락을 앞두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대뽀 정책을 펼쳐가고 있는 이 정권. 독재자의 딸인것은 죄가 아니다 헌데, 독재자의 영광을 재조명하기 위한 세력의 향후 행보가 어쩌면 진정한 독재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닐런지 생각해보는 것이 지나친 생각은 아닐 것 같다.
나는 꽤 넓은 의미의 중도여서, 박정희 정권이 당대에 독재라는 수단을 선택하게 된 시대적 역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바가 있다. 그것이 불러온 피해를 떠나서, 분명한 목적성과 취하고자 하는 득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대에 그만한 리더도 없었다는 대내외의 평판에 힘입어 후진국 조국을 위해 조금 더 일을 하자는 생각이었을 수 있다. 헌데 지금 그의 반의반의 평가도 못받을 대통령이 수십배나 성장하고 민주화된 선진국을 상대로 아버지의 명예를 되살리고자 그런 선택을 한다면 재앙일 것이다. 근데 왠지 그런 현실이 찾아올 것 같아서 두렵다. 주위에 말릴 사람이 있는가 하는 의심은 굉장히 자연스럽다. 다른 이견의 여지가 있어도, 박근혜 주위에 충언이나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큼은 전국민이 아는 얘기가 아닌가.
어느 정도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를 영구히 영도해달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올 것이다.
오로지 평가절하 당한 아버지의 명예회복이 인생의 화두인 박근혜가 연임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는다면 아버지가 더욱 빛날 것이고, 나쁜 평가를 받는다면 '박정희는 연임할만 했네' 라는 평이라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면, 그게 이미 모든 주사위를 다 던진 현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패라면?
왠지 이런 음모를 생각하다보면 다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매우 울적하다.
아니기를 바라고, 이런 우스꽝스러운 의견도 잊혀지기를 바란다. 조롱되고 비판당해서 땅속 까지 파묻혀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데헤헷 그땐 내가 오버했지, 라며 민망하게 웃으며 다음 선거철에 투표하러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