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시에 눈을 떴다. 입동이 지나선지 밖은 캄캄한 밤이었다. 대충 고양이 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걸친 후 길을 나섰다. 늦지 않게 서울에 닿으려면 일찍 서둘러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민중 총궐기' 행사에 참가하려는 이들이 십여만 명은 될 거라는 뉴스를 들은 터였다. 그들을 태운 버스가 가득 메울 고속도로를 감안하면 한참 지각을 한 셈이다.
해는 아직 멀고 여전히 달이 도드라진 새벽이었지만, 그 어둠을 열어젖힌 건 도로변에 늘어선 대형 버스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었다. 주차장을 낀 간선도로마다 버스들이 시동을 켠 채 줄지어 서있고, 그 곁은 경광등을 켠 경찰차들이 지키고 있었다. 하나같이 서울에서 만날 차들이다. 비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인지, 여느 때처럼 주말 등산 동호회 버스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버스 안도 만원이었다. 오후 1시에 대학로에서 있을 국정교과서 강행 저지를 위한 교사대회에 참여하려는 현직 교사들이었다. 잠이 덜 깬 채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이른 아침 서울행의 의미를 나누었다. 그들 중에는 부부가 함께 참여한 경우도 있고, 이미 은퇴한 원로 교사들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국정 세대'인 그들이 말하는 국정교과서 반대 이유는 울림이 더욱 컸다.
서울까지 대략 3시간 반이면 충분하지만, 이번 주말만큼은 하행선보다 상행선이 밀릴 것으로 예상했다. 더욱이 이들이 행사 시간에 맞춰 비슷한 시간대에 상경한다면, 고속도로가 주차장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듣자니까, 14일 행사 당일 이곳 광주광역시 관내 모든 관광버스가 동나 인근 도시의 업체들에까지 버스를 수소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11월 14일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경부고속도로에 합류해 경기도로 접어들자 일제히 모든 차들의 브레이크 등이 켜졌다. 아직 서울은 100킬로미터 가까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어느새 오전 11시를 훌쩍 넘어섰다. 여느 때 같으면 서울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서울에 닿고서 점심을 먹으려는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갔다. 다급하게 휴게소를 찾은 이유다.
점심 때는 아직 멀었지만, 다들 허기진 표정이었다. 대개 아침을 거른 채 버스에 탔기 때문이다. 버스에 타서 아이 주먹만한 시루떡 하나씩 나눠먹긴 했지만, 그로부터 이미 세 시간도 더 지난 즈음이었다. 휴게소에 들어가기 위해 차선을 바꾸는 것조차 녹록지 않았다. 이즈음 고속도로는 시나브로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전 11시 40분 상행선 안성 휴게소. 태어나 이렇게 북적이는 고속도로 휴게소는 처음 겪었다. 인산인해라는 말보다 차라리 '차산차해(車山車海)'라 바꿔 불러야 할 것 같았다. 주차 공간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고, 휴게소 입구부터 밀려드는 버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공간이 부족해 겹 주차도 예사인데다, 들고 나는 차들끼리 뒤엉켜 경적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인산인해 휴게소 화장실 30분을 기다려 '일'을 치렀다. 줄선 이들 대부분은 민중총궐기 대회 참가자였지만, 전국에서 동원된 군복 차림의 고엽제 전우회원들과 경찰들도 많이 보였다.
전국에서 모인 버스마다 수많은 사람들을 토해냈다. 휴게소의 식당과 편의점, 화장실 그 어디든 수백 명의 긴 줄이 늘어섰고, 버스와 버스 사이 비좁은 공간은 챙겨온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차지가 됐다. 너무 급한 나머지 줄지 않는 화장실 줄에서 이탈해 다른 곳에 숨어 '실례'하거나, 버릴 곳을 찾지 못한 쓰레기들이 곳곳에 더미를 이루는 등 흡사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때 아닌 '대목'을 맞았지만, 그렇듯 휴게소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주차된 버스 열에 아홉은 직종도, 출발지도 서로 달랐지만 모두 같은 서울행이다. 결국엔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에서 만날 살가운 이웃들인 셈이다. 그들이 걸친 옷마다 '노동개악 저지', '밥쌀 수입 반대', '재벌 세상을 뒤집자' 등의 비장한 구호들이 적혀있지만, 동네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에다 각양각색의 사투리들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다. 무엇이 그들을 '비장하게' 만들었을까.
휴게소엔 '아군'만 있는 건 아니었다. 경찰을 가득 실은 버스와 군복을 맞춰 입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을 태운 버스도 군데군데 끼어 있다. 비록 '목적'은 달라도 그들의 서울 가는 길 역시 만만치는 않을 터다. 그들 역시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할 모양이다.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주차장에서 선 채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또한 무슨 '죄'로 저 고생일까.
빳빳하게 다려진 군복을 차려입은 할아버지 한 분과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손자에게 하듯 느린 충청도 말씨로 대뜸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셨다. 나이 들어 서울 오가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며 가쁜 숨을 내쉬셨다. 충남 홍성에서 서울 가는 길이라는데, 대화 중에도 연신 주위를 둘러보며 점심 실은 차는 언제 오느냐며 일행에게 물었다.
가슴과 모자에 선명하게 박힌 'KAOVA' 글귀로 보아 할아버지는 '무시무시한' 고엽제 전우회 소속이 분명했다. 막상 서울에서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상대를 향해 악다구니를 써야 할 '적'이 될지도 모른다. 짐짓 모른 체 하며, 농사철 막바지인데 힘들게 멀리 서울 가는 이유를 여쭤보았다. 실은 그분이 타고 온 버스 앞에 붙여진 '교과서 국정화 지지' 팻말을 슬쩍 봐서다.
"'종북 세력' 때문에 대한민국이 큰 위기에 처했다는데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우리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천리를 마다 않고 달려 가야지. 요즘 같은 때에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밥이 나와 돈이 나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 북한을 추종하는 것이고, 그것은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다는 '단순명료한' 인식이다. 아울러 연세 지긋한 그분들을 수시로 동원하는 가장 중요한 힘은 '밥'이나 '돈'이라는 것도 말씀 중에 슬그머니 드러내셨다. 그런 그분들 앞에서 한국사 교사랍시고 국정교과서 강행의 의도와 폐해 운운하는 건 되레 긁어 부스럼을 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종종 걸음으로 화장실을 향해 사라졌다. 좀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의 살갑고 자상한 낯빛이 순간 일그러진 건 내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 때문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노란 리본은 피아를 구분 짓는 '기표'가 돼버렸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될 때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종북 세력'의 표지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고엽제 전우회 어르신들임에랴.
비 맞으며 도시락 먹는 농민과 경찰
▲ 기능이 마비된 휴게소 풍경 '차산차해'로 변한 휴게소에서 주변 공간은 식사 장소로 활용되었고, 야외 화장실(?)로 쓰이기도 했다.
여기에선 경찰들은 '적'이 아니라, '아들'이었고 '동생'이었다. 주차장에 서서 보슬비 맞아가며 도시락 까먹는 건 매한가지였다. 시위 현장이 아니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렇게 많은 경찰 버스를 본 것도 처음이었다. 도시락이 변변치 않아 보였는지, 농민회 소속으로 보이는 몇몇 아주머니들은 불과 몇 시간 뒤면 '적'으로 만날 그들에게 부러 반찬을 챙겨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장실에서 함께 줄서다 오랜만에 입대 동기를 만난 듯 앳된 얼굴의 두 경찰은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똑같은 '뒷담화'를 해댔다. 혹, 그들의 상관이 들었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 때문에 우리까지 '개고생'이다. 나이든 사람들이야 대통령을 잘못 뽑은 죄라지만,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은 뭐냐." 내심으론 다 같은 입장이었던 거다.
점심 먹는 데에는 20분이면 충분했지만, 오후 1시가 훌쩍 넘어서야 휴게소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도 휴게소에 진입하려는 차들이 이어졌다. 오후 들어 고속도로에는 버스가 승용차보다 더 많아 보였다. 버스전용차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차선에도 서울 가는 고속버스와 관광버스가 마치 기차처럼 줄지어 섰다. 이미 시작됐을 교사대회 참가는커녕, 오후 4시 민중 총궐기 대회에 때맞춰 도착할 수 있는지조차 걱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