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적인 혹은 폭력적인 시위는 효과적인가?
이것과 관련해선 백이면 백 모두 의견이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폭력은 답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많은 분들이 쓰신 역사적으로 비폭력 운동이 얼마나 무의미했었는지에 대한 글을 많이 읽어 보았고, 많은 부분 공감하는 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폭력이라는 수단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시위나 운동은 민중계층의 의사가 현존하는 사회 구조하에선 효과적으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투표나 정당 활동으로는 사회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중들의 의사가 사회적 혹은 정치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민중 총궐기의 진정한 의의는 민중의 실력 행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배계층에게 비제도권의 수단으로 우리가 이렇게 존재하고 큰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죠.
과연 여기서 폭력이라는 수단의 유무는 어떤 의미일까요?
사실 가장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폭력일 수도 있습니다. 당장 수십만의 시위대가 국회의사당을 점거하고, 청와대를 점거해서 한 목소리로 현 정권 퇴진을 외치면 그것만큼 확실한 실력 행사가 아닐 수 없죠. 그 정도의 무력이라면 사실상 경찰력이란 의미 없는 조그만 장애물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실력행사가 끝나고나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혹은 만약 대한민국 현 정권이 정신줄을 놓고 분노하는 민중과 치킨 게임을 시작하면, 그 핏값은 누가 치뤄야 할까요? 지금 현 대통령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이끈 그 말을 현실로 가져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민중은 그 폭력이라는 수단으로 또 다른 지배층의 불합리한 폭거 - 군대라는 도구에 의한 - 에 대항할 수 있을까요? 만약, 정말 만약, 그 폭거를 폭력으로 대항하여 승리 하려면 민중은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뤄야 하는 걸까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지난 역사를 뒤돌아보면 이와 같은 흐름은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제퍼슨은 민주주의의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마시고 자란다고 했습니다. (물론 18세기의 일이긴 합니다만.) 멀리 볼 것도 없이 대한민국 땅에서 몇십년 전에 있었던 일이죠. 다행히도 한명은 대학살을 공모하다 그 전에 충복의 배신으로 살해당했고, 다른 한명은 민중의 커져가는 목소리에 결국 무릎을 꿇었습니다.
과연 박정희와 전두환은 민중의 폭력이 두려워서 그런 결정을 내렸나요? 같이 개인적 공간에서 주색잡기를 나눌만큼 가까웠던 충복이 배신할만큼 당시 박정희는 모든 무력적 수단을 동원해서 잔인하게 민중을 억압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과연 당시 시위대의 돌팔매질이 청와대 안까지 닿을까 겁이나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요? 전두환 역시 그러합니다. 군인으로서 말보다는 무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던 그가 감히 자기 입으로도 아닌 그의 수하와 같은 노태우에게 대신하여 민중에 대한 항복문을 읽게 한 굴욕이 과연 시위대의 화염병이 두려워서였나요?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은 세계 어디에 내어놔도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교훈이 무엇인가요? 독제타도를 외치는 시위대가 최루탄을 쏘고 몽둥이를 휘두르는 전경과 백골단을 무력으로 제압했기 때문에 자랑스러운가요? 항상 두들겨 맞고, 철장에 갇히고, 매운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보다 강한 무력에 굴하지 않았기 때문 아닙니까?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는 전경버스가 부서지는 것도 아니고, 컨테이너 산성이 넘어가는 것도 아니며, 광장을 점거 당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단지 수단일 뿐이며 하나의 심볼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민중이 서로의 목소리를 모으고 그 커다란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단에 집착하다보면 목적을 잃기 쉽습니다. 경찰이 합법한 집회를 방해했다, 허가받은 집회를 과도하게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같은 의견도 물론 소중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에 대한 논의가 이번 민중 총궐기의 목적은 아닙니다. 또한 이러한 논의가 결국 폭력적인 수단의 정당성을 주어서도 안됩니다. 집회 과정에서 받은 정당하지 않은 것든은 법과 절차에 따라 처벌하는 동시에 우리는 민중의 목소리를 어떻게 좀 더 효과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 시위는 결국 민중의 의사를 비제도권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기 위한 도구다.
- 그 효과는 무력적인 탄압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되는 것에 달려 있다.
- 그럼으로 폭력적인 수단은 시위가 얼마나 효과적인 것과는 관계가 적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민중의 목소리를 분산시키고 반대 진영의 비난의 빌미가 될 수 있다.)
2. 이번 시위는 폭력 시위였나?
개인적으로는 폭력 시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여러번 앞서 동영상이나 사진이 올라 왔듯, 폭력적인 상황은 있었습니다. 시위대의 몇몇이 사다리로 전경 버스와 그 위의 전경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히 폭력입니다. 전경 버스의 창을 부수거나 전경을 부상당하게 하는 것은 시위대에게도 상대 진영에게도 딱히 득도 실도 없는 행동입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무리 시위대의 일원이 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위대 전체로 생각하자면, 상황은 좀 다릅니다. 시위대는 폭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폭력을 수단으로 삼을 것을 결의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낼 것만을 결의 했습니다. 시장통이나 큰 공연장만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면 다툼이 있을 수 있는데, 한 의견과 다른 의견이 정면으로 부딫이는 시위의 현장에서 폭력적 상황이 없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 아닐까요.
3. 그럼 경찰의 진압은 과잉 진압인가?
개인적으로는 과잉 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부상당한 백남기 옹의 경우만 봐도, 노골적으로 제압이 아닌 상해를 목적하고 있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흔히 시위대와 경찰은 서로 대립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경찰의 역활은 시위대가 신고하고 허가받은 본래 목적을 적법하게 이루는 것을 보조하는 것입니다. 소위 가스통 할배로 대표되는 극우세력이나 시위대를 이용해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단속하고,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시위가 진행되도록 해야 하죠.
하지만 현실은 어땠습니까? 청와대의 사병이라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만큼 경찰은 그들 대신 열과 성을 다해, 시위대와 싸웠습니다. 경찰 수뇌부는 정말 그 점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어떻게 물대포와 최루액으로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했느냐가 아닙니다. 왜 그들은 스스로를 권력자들의 개로 만들었는가 입니다.
4. 그 다음은?
누군가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은 민중이 싸우고자 했던 것과는 다른 주제로 잘잘못을 나누고 있고, 그와 반대로 이번 시위대의 반대 진영은 이미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을 찾아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다른 총궐기를 구상하는 것이 답일까요? 아님 지난 시위의 상처를 보듬고 득과 실을 따져보는 것이 답일까요?
사실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혼자로선 한없이 약하기만 할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민중들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과연 내 목소리를 좀 더 효과적으로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너무 길게 써 내려간 것 아닐까 싶네요. 졸문에 시간 내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