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해 10월2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암살조에 의해 피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사건 직후부터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피살 자체를 부인하던 사우디 정부는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계획된 살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왕세자 개입 의혹은 부인했다.
이제 사건은 꼬리 자르기로 끝나는 모양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3일 사우디 검찰이 카슈끄지 살해사건에 관한 첫 재판에서 피의자 11명 중 5명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유엔 인권대표가 이끄는 인권고등판무관실(OHCHR)은 다음날인 4일 재판의 공정성을 평가하기 어렵다면서 (사우디에서 재판이 진행되면) 어떤 경우에라도 불충분하다며 국제사회의 조사를 거듭 촉구했다. 그렇지만 사건의 진상은 이대로 묻힐 가능성이 커졌다.
하나의 참혹한 언론인 피살 사건을 두고도 국제사회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카슈끄지 피살 사건 내내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카슈끄지 사망 가능성을 뒤늦게 인정하는가 하면,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선(先) 진상규명-후(後) 대응’ 기조 입장을 고수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빈 살만이 배후일 가능성이 크다는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최대 우방국이란 이유로 사우디에 대한 무기수출 중단 및 제재 요구를 거부했다. 미국에 있어 사우디는 핵심 산유국이자 주요 무기 구매처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가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는 ‘전략적 축’이라는 점도 미국에는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해 10월 “끔찍한 사건의 배경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카슈끄지 피살 사건이 완전히 규명되기 전까지 사우디에 무기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무기 수출이 2017년에 비해 23% 가까이 줄었다고 발표했다고 미 CNN방송이 17일 보도했다. 독일 경제부에 따르면 지난해 총 무기 수출액은 48억2000만유로(약 6조1600억원)다. 이는 2017년 62억4000만유로(약 8조원)에 비해 22.75% 감소한 수치다. 독일의 무기 수출은 2015년 78억6000만유로(약 10조500억원)로 정점을 찍은 뒤 줄곧 감소 추세다.
독일 경제부 대변인은 카슈끄지 피살 이후 메르켈 총리의 결정이 급격한 하락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대변인은 CNN에 제출한 성명에서 “메르켈 총리는 카슈끄지 피살 사건 직후 더 이상 사우디에 무기를 팔 근거가 없음을 연방정부에 분명히 했다”며 “현재 사우디에 대한 무기 수출은 허가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영국 시민단체인 ‘무기무역 반대 캠페인’(Campaign Against Arms Trade)의 앤드류 스미스는 “독일 정부가 사우디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한 것은 옳은 일이었다”며 “우리는 독일 정부의 사례가 유럽 내에서 무기를 거래하는 다른 정부들이 따라갈 수 있는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