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서울 변두리의 공립 중학교를 나왔어요.
1988년도에 입학했으니, 한 30년 전에 다녔네요.
저희 학교에는 지적 장애 학생들도 있었어요.
(지적 장애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이었냐하면, 한 반에 한두 명씩 장애 학생들이 있어요.
그 아이들도 일반 학생들처럼 우리반 학생인 거예요.
아침에 함께 등교하고, 담임 선생님이 출석도 불러요.
물론 수업도 같이 듣지요. 단, 오전 수업까지만 함께 들어요.
점심을 먹으면 그 아이들은 다른 반으로 가요.
특수교육 선생님이 지도하는 곳으로 가서 각자 장애의 정도에 맞게 교육을 받아요.
그러니까 그 친구들은 우리도 같은 반 친구고, 장애 학생반도 같은 반 친구가 되는 거예요.
저희 반에는 원희(가명)라는 친구가 있었어요.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가진 날씬한 친구였어요.
원희는 지적 장애를 가졌지만, 글을 읽을 수 있었어요.
물론 아주 천천히, 더듬거리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분명 읽을 수는 있었어요.
어느날 도덕 시간이었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늘 수업을 시작하면 책을 읽게 하셨어요.
배울 부분을 한 사람씩 일어나서 큰 소리로 읽게 하는 거죠.
그 날도 선생님은 주번인지, 반장인지, 그 날 날짜의 번호였는지 한 학생을 부르셨고,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다음 페이지가 되면 그 아이는 앉고 그 뒤의 아이가 읽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그 뒤뒤의 아이가 원희였던 거예요.
순서가 돌아와서, 원희의 차례가 되었어요.
원희는 일어났고 더듬거리며 읽기 시작했어요.
'"멀고 먼 이국땅에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스타가 된 하인스 워드는 힘들 때마다 어머니가 곁에서 용기를 주셨기 때문에 성공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예를들어 이런 구절이었다면, 보통의 중학생이 10초면 읽을 이 한 문장을 1-2분은 족히 걸려서 읽을 속도였죠.
저희는 숨을 죽이고 듣고 있었어요.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어요.
'원희는 글을 읽을 줄 아는데 ... 선생님이 잘 못 읽는다고 나무라시면 어떻게 하지? 조금만 기다리면 다 읽을 수 있는데 .. 원희야, 힘내!'
그리고 원희가 그 큰 글씨로 쓰여진 도덕책의 한 페이지를 오랜 시간이 걸려 다 읽었을 때, 우리 모두는 약속이나 한 듯이 소리를 질렀어요.
"와! 원희야 잘 했어!" 그리고 이어진 박수, 웃음꽃, 기다려주신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 ... 교실 안이 작은 기쁨으로 가득찼어요.
그 때, 선생님이 눈물을 보이셨어요.
선생님은 울먹이시면서 앞으로 너희들을 가르칠 동안 오늘의 이 장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거라고 하셨죠.
실은 선생님도 저희와 똑같은 마음이셨던 거였어요.
'저 아이는 장애를 가졌지만, 기다려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텐데 ... 다른 아이들이 짜증을 내거나 비웃으면 어쩌지. 아, 다른 아이들이 조금만 더 기다려 주었으면... 아이야, 힘내!'
그렇게 마음 졸이고 계셨는데, 원희가 그 페이지 읽는 것을 다 끝내자마자 저희 모두 다같이 기뻐하는 걸 보니 너무나 감동이 벅차올랐다고 ...
저희는 조금 어리둥절했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원희는 좀 모자란 아이라 저희랑 같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어울려 노는 친구는 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반 친구였거든요.
장애를 가졌다고해서 더 잘 해 주진 못해도, 같은 반 친구니까 기다려주고 기뻐하는건 당연한 건데 너무 감동하시니까 약간은 과분한 것도 같고, 자랑스러운 것도 같고 그랬어요.
그 때 우린 그랬어요.
처음부터 같은 반에 배정이 되니까 우리반에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는게 당연했어요.
마치 운동반이라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엔 운동을 하러가는 것처럼, 그 아이는 장애를 가졌으니까 오전엔 우리랑 같이 수업을 받아도 오후엔 필요한 공부를 하러가는 거 .. 그 뿐이었어요.
같이 어울려 놀지는 않았지만 함부로 괴롭히지도 않았고, 왕따 이지메 이런거 없었어요. 원희는 착한 아이였거든요
착한 사람 괴롭히면 안되는 거잖아요.
베오베에 장애 학생 학교와 관련하여 무릎을 꿇은 어머니들이 있다는 글을 읽고 기억이 나서 써봤어요.
거기에 댓글 달으셨던 분들 다 맞아요.
제가 기억하는 그 아이들 성적인 개념도 희박하고, 선악의 구분도 일반인들과는 좀 달라요.
세련된 에티켓을 배우지 못했기때문에 같은 곳에서 생활하기 불편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다같이 사는 사회가 더 큰 사회같아요.
어쩌면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우리 아이들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고맙고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해요.
공부 좀 더 하는 것보다, 돈 좀 더 버는 것보다 훌륭한 인격과, 큰 양보를 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 더 행복한 삶 아닐까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든 나보다 낫고,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내가 그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될 수 있어요.
모두가 돕고 살아야 행복한 사회에서, 베푸는 것은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선물을 받게 되는 신기한 일이죠.
지금도 저는 그 날의 도덕 시간을 기억해요.
울먹이며 말씀하시던 26살의 그 어렸던 여선생님도, 다함께 해맑게 웃으며 기쁨의 박수를 쳐주던 아이들의 그 따뜻한 여유로움도 기억하죠.
제가 별거 아닌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때의 기억이 들 때마다 제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합니다.
살면서 이런 자랑스러움은 그렇게 많이 오는게 아니니까요.
부모님들이 조금만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다 같이 사는 사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