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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총집회 이후 알아보는 시위에 대한 11가지 사실
게시물ID : freeboard_116590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함수리
추천 : 1
조회수 : 337회
댓글수 : 6개
등록시간 : 2015/11/20 21:3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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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 우리나라는 시위신고제다. 그냥 시간이랑 장소 알려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10시부터는 불가능
(하지만 이번 민중총집회는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놔서 10시까지도 해산못함)

2. 시위대 폭력을 사용한 사람은 프락치(스파이)나 아니면 병신이거나 둘 중하나.
근데 애초부터 위헌결정난 차벽 설치하고 물대포 직사한 경찰. 3.1 운동때 평화시위대에 발포한 일본 헌병대가 생각나는건 나뿐인가?

3. 시위대가 요구하는건 11가지 그중 이석기 석방이 있기는 하지만,
시위대의 주된 요구는 세월호 진상 규명, 세월호 인양, 국정교과서 반대 3가지 뿐. 이석기 석방은 혼란속에 누군가가 외친 구호라고 함

4. 11월 5일 한국은 UN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시위 진압하지 말라고

5.  모든 집회는 10시까지 해산해야 함. 하지만 이번 민중총집회는 경찰이 차벽으로 막아놔서 10시까지도 해산못함

6. 물대포 사용으로 쓰러진 백 선생님은 곧 사망함.

7. 현재 시위대를 욕하는 인간들 대다수는 시위대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가장 이득 많이 볼 사람들.

8. 폭력시위없는 선진국은 북한. 그냥 시위 자체가 없거든

9. 광화문은 집회 금지 장소.
하지만 어버이연합은 그동안 광화문에서 헬소드마스터 업적도 찍으시고 국정교과서 찬성 시위도 하셨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편안히.
(광화문 집회 금지장소 판결도 위헌 판결 났다내요)

10. 1987년 6월 이한열 열사는 경찰이 직사하는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2015년 11월 백 선생님은 경찰이 직사하는 물대포에 맞아 사망 위기.

11. 1960년 4월 1980년 5월 1987년 6월
모두 시위대가 폭력을 사용했다.
1960년에는 시민들이 총을 사용해서 경찰들을 사살(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했고,
1980년에는 시민군을 만들었다(하지만 대머리독수리에게 처참하게 진압당한다)
1987년에는 30개 이상의 도시에서 100만명 규모의 시위대가 시청 경찰서 파출소 등을 파손시켰고,
부산역 - 서면에 이르는 도로를 6시간동안 점거했다.

이 폭력적인 시위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창작이에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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